[비즈한국] 정부가 7월 28일 경제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 1차 과제를 발표한 데 이어 8월 5일에는 여당과 환경·법무 분야 규제 혁신 방안을 논의하는 당정협의회를 개최하는 등 기업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한 규제 개혁에 시동을 걸고 나섰다. 정부는 경제규제혁신 TF 1차 과제를 통해 1조 6000억 원 규모의 기업 투자 걸림돌을 해소했다며 투자 확대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올해 6월 제조업 재고율이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6월 기준) 이래 2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고, 설비 투자의 선행지수인 기계설비 내수출하지수는 전기 대비 3.9% 감소해 기업들의 투자가 오히려 하반기에 더욱 감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중국 첨단 산업 공급망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역사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급격 인상 등 국내외 각종 불확실성에 상품 재고가 쌓이면서 기업들이 투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투자 둔화가 이어지면 성장률 하락은 물론 기업들의 고용 감소로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7월 2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제로 경제규제혁신 TF를 열고 50가지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TF는 대기업 현장 투자를 막고 있는 규제 불확실성 해소에 집중해, 조선소 등에 쓰이는 로봇의 안정성 기준 요건 간소화, 배달로봇 보도 자율 주행 허용, 이동식 전기차 충전기의 안전성 인증 기준 설정, 드론 안전성 인증 검사 기간 단축 등을 내놓았다. 추 부총리는 “규제 혁신을 쉼 없이 추진하고, 혁신 강도 역시 점차 높여 나가겠다”며 기업 투자 확대를 위한 규제개혁에 속도를 더욱 가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기업들의 움직임은 규제 개혁을 통해 투자 확대를 기대하는 정부의 바람과는 반대다. 기업들은 최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에 재고가 쌓이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원리금 부담마저 늘어나자 투자를 줄일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제조업 재고율이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재고가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제조업 재고율(재고/출하 비율)은 124.6%까지 치솟았다. 재고율이 100%를 넘는다는 의미는 상품의 출하보다 재고가 쌓이는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이러한 재고율(6월 기준)은 1998년 139.5%이래 최고치다. 기업들의 상품 재고가 쌓이면서 설비투자도 하락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설비투자 증가율(전기 대비)은 지난해 3분기 -3.0%를 기록한 이래 4분기 -0.2%, 올해 1분기 -3.9%, 2분기 -1.0%로 4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설비투자가 이처럼 4개 분기 연속 역성장을 한 것은 신흥국 재정위기가 벌어졌던 2012년 2분기~2013년 1분기, 그리고 외환위기였던 1997년 3분기~1998년 2분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재고가 급증하다 보니 기업들로서는 생산을 감소하는 조치에 들어갔고, 이에 따라 설비투자 자체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느끼는 위기감이 정부의 규제 개혁 정도로 해소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다.
문제는 이러한 기업들의 투자 감소세가 올 하반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향후 설비투자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선행지수인 기계설비 내수출하지수가 급감한 때문이다. 올 2분기 기계설비 내수출하지수는 전기 대비 3.9% 감소했다. 이는 2018년 4분기(-5.9%) 이래 3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률이다.
국내 기계설비 출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들이 설비투자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특성을 감안하면 설비투자 감소는 기업들이 올 하반기는 물론 내년 초에도 글로벌 경제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기업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규제 개혁도 매우 중요하지만 단기적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을 최대한 낮춰주는 조치들도 필요하다”며 “기업 투자 시 세제 혜택, 기업 대출 금리 우대 등을 통해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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