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 직장인 A 씨(26)는 “열심히 일하다가도 회의감이 올 때가 많다. 아무리 계산해도 월급만으로 집을 사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생 월세로 살아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내 집 마련’은 꿈 같은 이야기가 됐다. 최근엔 금리인상이 계속되며 대출을 끼고 주택을 구매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자립한 청년이 부모 도움 없이 주택을 마련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국정과제에서 신혼부부·청년 지원 내용 빠져…주택 공급안도 추상적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해 ‘대출규제 완화’, ‘주택공급 확대’ 등을 약속했다. 주택금융제도로 주택구매와 주거 상향 이동이 가능한 ‘주거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목표였다.
주거 안정 공약의 큰 틀은 LTV(주택담보인정비율) 규제 완화와 250만 호 이상 주택 공급 계획이다. 이 공약들은 지난 5월 10일 발표된 국정과제에 반영됐다. LTV는 주택담보인정비율로, 은행이 주택을 담보로 대출해줄 때 적용하는 담보가치 대비 최대 대출 한도를 말한다.
먼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LTV 규제 개편’에 대한 내용은 큰 변동 없이 그대로 국정과제에 들어갔다. 다만 LTV 규제 완화는 대부분 생애최초 주택구입자로 제한됐다.
주택 공급은 내용이 대폭 축소됐다. 윤 대통령은 5년간 250만 호 이상을 공급하겠다며 △재건축·재개발 47만 호(수도권 30.5만 호) △도심·역세권 복합개발 20만 호(수도권 13만 호) △국공유지 및 차량기지 복합개발 18만 호(수도권 14만 호) △소규모 정비사업 10만 호(수도권 6.5만 호) △공공택지 142만 호(수도권 74만 호) △기타 13만 호(수도권 12만 호) 등 세부 사항을 명시했다. 그러나 국정과제에는 이 같은 내용이 모두 빠진 채로 ‘주택공급 확대 및 조기화’라는 내용으로 대체됐다.
대선 공약대로 LTV 규제 완화와 주택공급에 대한 내용은 국정과제에 포함됐지만, 세부 사항은 대폭 축소된 상황이다. 게다가 신혼부부와 청년에 대한 지원 방안은 모두 빠졌다. 당초 신혼부부에게는 4억 원까지 3년간 저리 금융지원 방안을, 청년과 신혼부부에게는 전세대출과 그 상환이자를 지원하는 방안 등을 약속했지만, 이에 대한 내용은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20일 국토교통부는 청년·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한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의 금리를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청년과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모기지 등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공약 이행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버팀목 전세자금은 기존에 있던 제도이며, 공약은 신혼부부에게 4억 원 한도에서 금융을 지원하고 생애최초 주택구매자에게 금융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청년·신혼부부 금융지원과 관련해 7월 11일 기획재정부는 ‘청년·신혼부부대상 초장기(50년) 모기지 출시 및 체증식 상환방식 활성화 등 원리금 상환부담 완화 지원’을 주요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7월 20일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는 “청년과 신혼부부에 대해서 전세대출 한도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황이다.
국정과제에 들어가지 않은 공약은 ‘폐기’된 걸까.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에 물었다. 금융위원회 대변인실 관계자는 “신혼부부와 생애최초 주택구매자에 대한 금융지원은 검토 중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LTV 상한 70% 단일화는 중장기 과제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250만 호 이상 신규 공급과 관련해 주택 공급 로드맵을 수립 중이다. 8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공약과 국정과제를 총체적으로 보고 논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계속되는데 LTV 규제 완화로 ‘내 집 마련’ 가능할까
20일 금융위원회는 LTV 규제 완화에 대한 개선안을 내놨다. 생애최초 주택구매자는 LTV 상한이 80%(최대 6억 원)로 완화되고, 규제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주택처분기간이 6개월에서 2년으로 늘어난다. 신규주택 전입 의무기간은 폐지되며, 긴급생계용도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최대 1억 5000만 원 한도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적용이 배제된다. 주택 준공 후 가격이 15억 원을 초과하더라도 중도금대출 범위 내에선 잔금대출 전환이 가능하다.
금융위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은행업·여신전문금융업 등 감독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8월 1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에선 최초 주택 구매 가구가 아닌 경우에도 LTV 상한을 70%로 단일화하겠다는 방안이나 청년이나 신혼부부에 금융을 지원하는 방안은 빠졌다.
정부는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관련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에 다소 회의적이다. LTV 규제 완화가 일부 개인 주택 구매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이 여전한 상황에서 현재 부동산 시장 흐름을 바꾸는 획기적인 조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최초 주택 구입자 중 자금력이 있는 사람들은 크게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대출이자 상환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혜택을 어느 정도 이용할 수 있더라도 이 같은 조치가 포괄적인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 역시 “입장을 바꿔보면 LTV 규제를 조금 완화해준다고 지금 집을 사겠느냐. 가계부채가 폭발하기 직전이고, 투자도 안 하고 있다. 당분간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구매를 원하더라도 지금이 아니라 향후 부동산 시장 흐름이 바뀌면 그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 LTV 규제 완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당장 주택이 필요한 실수요자가 아니면 지금 주택을 구매하러 나서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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