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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 '변호사 우영우'처럼 법은 동물의 마음도 생각할까? '동물에게 다정한 법'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이 11개 동물 관련 사건을 통해 짚어본 대한민국 동물권의 현실

2022.07.26(Tue) 10:24:38

[비즈한국] “법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법은 마음보다 행위와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냉정한 법이 마음을 생각한다니. 그렇다면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동물의 마음도 헤아릴까.

 

말할 수 없는 동물을 대신해 모인 변호사들이 있다.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줄여서 ‘동변’이라 부르는 이들은 낮엔 각자의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이나 주말에 모여 동물 관련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동변이 실제 관여한 동물 관련 사건 11개를 ‘동물에게 다정한 법’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반려동물 에세이나 르포는 많았지만 동물 관련 법의 문제를 조명한 건 이 책이 처음이다.

 

동물에게 다정한 법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지음, 태학사 

200쪽, 1만 3500원

 

꽃마차를 모는 말부터 산천어축제, 동물 학대 동영상 등 이 책에는 최근 몇 년간 화제가 되었던 동물 관련 사건이 두루 담겼다. 특히 겨울 지역 축제로 인기가 많은 화천 산천어축제를 동물 학대로 고발한 사건은 많은 논란이 되었다. 물고기가 고통을 느끼냐는 물음부터 시작해, 먹는 물고기를 축제에 쓴 게 어떻게 동물 학대냐는 의견도 많았다. 동변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물고기들은 먹을거리로 잘 먹으면서 유독 산천어 축제만 비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지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다른 종을 희생시켜야 할 경우엔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죽음은 최대한 신속히, 고통을 덜 느끼는 방법으로 이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 존중 정신에 부합하는 행동이기 때문이지요. -33-34쪽

 

화천에 자생하지 않는 산천어를 오직 축제를 위해 키워서, 굶긴 채 데려와 사람들로 하여금 잡게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요행히 미끼를 물지 않아 살아남더라도 끝끝내 횟감으로 사라지거나 수온이 맞지 않아 죽는 등 200톤이나 되는 산천어가 우리의 한순간 즐거움을 위해 ‘몰살’되는 것이 정말 인간에게 이로운 일일까. 우리는 꼭 그 산천어를 먹어야만 할까.

 

물고기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가재나 문어 등도 죽이기 전에 반드시 의식을 잃게 하여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유희나 경쟁만을 목적으로 물고기를 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법문에 명시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검찰은 어류는 식용이며 동물보호법의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것은 또 다른 논쟁거리인 개고기 문제에서도 비슷하다. 개 수십 마리를 전기쇠꼬챙이로 감전시켜 죽인 개농장주가 동물 학대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개는 축산물 위생관리법에 정한 ‘가축’에 해당하지 않지만 개고기를 먹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 이 법을 적용하며, 전기쇠꼬챙이로 죽인 건 축산물 위생관리법에서 정한 ‘잔인한’ 도살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 2심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났다. 

 

다행히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잔인성’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며 ‘잔인한 방법’도 시대의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해당 동물에 대한 그 시대의 인식이 어떤지, 그 도살 방법이 국민 정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즉 개고기 식용이 줄고 반려인이 많이 늘어난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감안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4년을 끈 이 사건은 결국 개농장주가 벌금 100만 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 미미한 결과이지만 식용 목적의 개 도살을 사실상 금지했다는 의의가 있다.

 

책에는 우영우 변호사가 사랑하는 고래에 대한 슬픈 이야기도 담겼다. 수족관과 돌고래쇼를 운영하는 거제씨월드·장승포 고래생태체험관과 이를 용인한 울산시장을 고발한 사건이다. 거제씨월드는 방문객이 돌고래를 직접 만지게 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2013년에만 큰돌고래 9마리가 죽었다. 

 

고래는 평균 지능 지수가 80에 달하며 자의식과 언어 학습능력을 지닌 고등동물이다. 음파를 쏴서 의사소통하며 하루 최대 100~160킬로를 수영한다. 이런 동물을 작은 수족관을 가두고 사람들이 만져대니 유리에 머리를 박거나 몸에 상처를 내는 이상행동을 보였다. 수조 안 바닥에 혹은 물표면 위에 무기력하게 떠 있거나 원형으로 맴도는 등 야생에서라면 하지 않을 행동의 원인은 감금 상태로 인한 만성 스트레스와 고통이다. 

 

고래는 인간의 오락을 위해 가두어 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고유의 권리능력을 가지고 있는 ‘비인간 인격’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수족관 돌고래 죽음을 바라보는 동변의 핵심 관점이었습니다. -99쪽

 

하지만 수사기관은 이 역시 ‘무혐의’로 처분했고, 고래 체험 프로그램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가면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가 아기 돌고래들과 함께 헤엄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불법으로 포획되어 수족관에 갇힌 채 돌고래 쇼를 하다가 2013년 다시 고향 제주 바다로 돌아온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가 2022년 1월 1일 제주 앞바다에서 건강히 지내는 모습이다. 하지만 거제씨월드 등에는 여전히 감금되어 쇼에 동원되는 돌고래들이 있다. 사진=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인스타그램 캡처

 

책에는 이 외에도 동물 실험과 여전히 초중등학교에서 행하는 개구리 해부 실험의 비윤리성과 불필요함을 이야기하고, 반려동물 수만큼 늘어나는 유기 문제와 동물판 N번방 사건 등 점점 악랄해지는 학대 문제를 짚는다. 

 

명백한 동물 학대 사건임에도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발을 해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고, 어렵게 재판에 가도 법정형보다 훨씬 낮게 선고되기 일쑤다. 동물 관련 사건은 양형 기준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 책의 많은 이야기가 ‘안타깝게도’ ‘갈 길이 멀다’로 마무리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아쉬우나마 지난 4월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앞으로 양형 기준도 만들어져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더 나은 판단이 나오길 기대한다. 동물에게 다정한 세상이 곧 인간에게도 다정한 세상이다. 유기견, 유기묘를 여럿 입양한 ‘토리 아빠’가 대통령이 됐으니 최소한 5년은 동물에게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동물의 울음과 사람의 울음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옳음과 좋음의 사이가 멀면 또 얼마나 멀어질까. 한 울음과 다른 울음이 만날 때, 옳음과 좋음이 한데 뒤섞여 있을 때 우리는 누구나 아름답다 말한다. -박준 시인의 추천사 중에서

김남희 기자 namhee@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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