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공개한 첫 컬러 이미지의 감동과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첫 데이터는 모두 수억 광년 거리에 놓인 먼 은하들과 은하단, 또는 수천 광년 거리에 놓인 성운과 외계행성의 관측 결과였다. 그렇다면 제임스 웹은 이렇게 아주 멀리 떨어진 우주에만 관심이 있는 걸까?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를 관측할 계획은 없을까?
제임스 웹이 공개한 데이터들이 전부 태양계를 훨씬 벗어난, 아주 먼 우주를 관측한 것들만 있다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오해를 하는 듯하다. 제임스 웹은 태양계처럼 비교적 가까운 우주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모두 결정된 이번 첫 관측 계획 Cycle 1 전체 기간 동안 태양계 관측 계획은 무려 7.9%나 차지한다. 우주 전체에 비해서 턱없이 작은 태양계의 스케일을 고려했을 때, 굉장히 많은 관측 시간이 할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먼 우주만 볼 것 같았던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태양계를 관측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제임스 웹은 앞으로 태양계에서 어떤 발견을 하게 될까? 먼 우주만 관측할 것 같았던 제임스 웹은 코앞에 놓인 태양계 천체는 왜 관측하려는 걸까? 지난 주 공개된 첫 관측 이미지에 푹 빠져 우리가 놓친, 제임스 웹의 또 다른 위대한 계획을 소개한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바라볼 태양계 계획
1. 화성의 행복했던 과거를 복원한다
우주 망원경 제임스 웹이 고작 코앞에 있는 화성이라니? 게다가 이미 화성은 그동안 가장 많은 인류의 탐사선이 날아가서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고 있는 세계가 아닌가? 뭔가 제임스 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화성도 제임스 웹이 관측해야 할 아주 중요한 곳이다.
화성에 직접 날아간 궤도선과 착륙선은 당장 바로 코앞에서 화성을 관측하기 때문에 당연히 멀찍이 떨어져서 화성을 바라봐야 하는 제임스 웹보다 훨씬 선명한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화성 궤도선, 착륙선에 비해 제임스 웹이 갖는 중요한 장점이 있다. 멀리서 화성을 조망하는 덕분에 한눈에 화성 전체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 궤도선, 착륙선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화성 표면 일부만 볼 수밖에 없다. 화성 전체의 표면, 대기권의 성분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행성 규모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계속 화성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고 훑어봐야 한다. 반면 제임스 웹은 한눈에 멀리서 화성 대기권의 전체 지도를 찍을 수 있다. 게다가 기존의 허블, 지상 망원경보다 더 선명하게!
우선 그간의 탐사를 통해 우리는 화성에도 가까운 과거까지 물과 바다가 있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화성의 물 흔적은 대부분 직접 화성 표면을 굴러다니는 탐사 로버에 의해 이곳저곳에 흩어진 착륙지 주변에서만 국지적으로 확인된 결과일 뿐이다. 화성 전역에 실제로 물 성분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세밀한 화성 물 지도는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화성 전역 어디어디에 고대 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를 파악해야, 과거 물이 채워져 있었을 당시 화성의 실제 모습을 복원할 수 있다. 또 현재도 화성 바깥으로 물 성분이 어떻게, 매년 얼마나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는지 그 흔적을 관측하면 정확히 언제까지 화성에 바다가 존재했는지, 언제쯤 모든 물이 사라지고 지금과 같은 붉은 사막 행성이 된 건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물은 제임스 웹이 관측하는 적외선 파장의 스펙트럼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성분이다. 첫 관측 데이터에서도 제임스 웹은 1000광년 거리에 놓인 외계행성의 대기권에서도 물 분자의 존재를 보여주었다. 1000광년 거리에 놓인 외계행성의 하늘에서까지 물 분자의 존재를 선명하게 확인할 만큼 제임스 웹의 성능은 아주 뛰어나다. 이런 놀라운 성능으로 화성을 관측하면 그간의 로봇 탐사선으로도 완벽히 그릴 수 없었던 화성의 진짜 전성기, 물이 가득했던 ‘리즈 시절’의 모습을 정확히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엔 또 다른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다. 화성 게일 크레이터를 탐사하는 큐리오시티 로버, 화성 곁을 맴도는 엑소마스 트레이스 가스(ExoMars Trace Gas) 궤도선은 화성 대기권에서 뚜렷한 메테인 성분을 검출했다. 외계생명체 탐색에서 메테인은 아주 중요한 단서다. 지구에 있는 메테인도 주로 미생물을 비롯한 거의 모든 생명체들의 신진대사, 생명활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가 매일 배불리 음식을 먹고 뀌는 방귀도 메테인가스다. 게다가 대기 중 메테인 함량이 화성의 계절에 따라 오르내리는 변화를 보였다. 더 따뜻한 화성의 여름이 오면 메테인 함량이 높아지고, 다시 추운 화성의 겨울이 오면 메테인 함량이 줄어든다. 이러한 계절성 변화는 어쩌면 화성에 아직까지 살아남아 꿋꿋하게 생명활동을 이어오며 메테인을 내뿜고 있는 미생물들의 활동성이 계절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놀라운 증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메테인이 꼭 생명활동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확실한 화성 생명체의 증거라고는 단언할 수는 없다.
마침 제임스 웹이 관측하는 적외선 스펙트럼은 물 분자와 함께 메테인도 검출할 수 있다. 화성의 한 장소에만 머물고 있는 탐사선과 달리 제임스 웹은 멀리서 화성 전역의 메테인 지도를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화성의 여름과 겨울, 계절에 따라 화성 전역의 메테인 분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2020년 발견된 메테인의 계절성 변화가 단순히 탐사선이 머물고 있는 지역에서만 국지적으로 벌어진 사소한 변동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정말 화성 전역에 퍼져 숨어 있는 화성 미생물의 흔적이었는지 더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한편 제임스 웹의 화성 관측은 앞으로도 계속 화성에 가게 될 다음 탐사로봇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2004년 1월 화성에 도착한 이후 14년간 화성 곳곳을 누비고 다녔던 오퍼튜니티 탐사선은 지난 2018년 6월 화성에서의 긴 대장정을 갑작스럽게 마무리해야 했다. 갑자기 불어닥친 거대한 먼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태양판에 먼지가 수북히 쌓여버렸기 때문. 천문학자들은 다시 한번 강한 바람이 불면서 태양판에 쌓인 먼지가 다시 날아가주기를 바랬지만 그런 행운은 벌어지지 않았다. 결국 에너지가 모두 방전된 오퍼튜니티는 그대로 화성의 모래 언덕 한편에서 잠들었고, 2019년 2월 NASA는 오퍼튜니티 미션의 종료를 선언했다.
안타까운 것은, 오퍼튜니티가 먼지 폭풍에 휩쓸리기 직전까지 화성 곁을 맴돌고 있던 그 어떤 궤도선도 이런 거대한 먼지 폭풍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제임스 웹은 멀리서 화성을 한눈에 바라보며 먼지 폭풍 예보를 할 수 있다. 현재 화성에서 활발한 탐사를 하고 있는 큐리오시티, 퍼시비어런스뿐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이어질 유인 화성 탐사를 위해서도 화성 폭풍 모니터링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제임스 웹이 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2. 목성과 토성, 외계 생명체의 새로운 가능성
이 사진은 지난 2022년 7월 12일 공개된 제임스 웹의 목성 테스트 컷을 보정한 이미지다. 목성 오른쪽 아래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풍 대적점이 밝게 빛나고 있다. 실제로 앞서 목성에 날아갔던 많은 탐사선들은 목성의 대적점이 유독 주변에 비해 온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목성을 둥글게 휘감고 흐르는 구름층도 뚜렷하게 구분된다. 목성 주변에 희미하게 그려진 목성의 고리도 볼 수 있다. 거대한 고리를 두르고 있는 토성에 비하면 굉장히 희미하지만, 목성도 강한 중력으로 주변에 고리를 갖고 있다.
목성 주변 희미한 고리의 기원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2000년대 목성 곁을 맴돌았던 갈릴레오 탐사선의 관측에 따르면 목성 주변 작은 위성을 향해 수시로 운석들이 충돌하면서, 그때 흩어져 날아간 파편들이 목성 중력에 붙잡힌 결과 이런 희미한 고리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목성 바로 곁을 맴도는 궤도선이 아니고서야, 지구에 있는 기존의 망원경으로는 거의 확인하기 어려웠던 목성 주변 고리까지 볼 수 있다는 건 제임스 웹의 엄청난 성능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하지만 이 사진에서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 목성 오른쪽, 왼쪽에 찍힌 다양한 위성들이다. 목성 왼쪽에는 얼음 위성 유로파가 밝게 보인다. 제임스 웹 특유의 여섯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회절 잔상을 볼 수 있다. 유로파 위에는 또 다른 작은 위성 테베, 목성 오른쪽에는 메티스가 작게 찍혀 있다. 재밌게도 태양 빛을 가린 유로파의 그림자도 목성의 대적점 왼쪽에 검은 점처럼 찍혀 있다.
유로파는 목성 곁을 맴도는 얼음 위성이다. 그런데 앞서 허블 우주 망원경은 유로파의 갈라진 얼음 틈 사이로 많은 물이 우주 공간으로 뿜어져 나오는 장면을 포착했다. 유로파의 두꺼운 얼음 층 내부에는 거대한 지하 바다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로파의 크기는 지구의 달 정도로 훨씬 작지만, 유로파 내부에 매장된 물의 양은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바닷물의 전체 양보다 훨씬 많다! 게다가 허블은 목성의 또 다른 얼음 위성, 가니메데에서 많은 수증기를 머금고 있는 대기권의 존재도 확인했다.
이처럼 목성 자체는 외계생명체를 기대하기 어려운 거대한 가스 행성이지만, 그 주변을 맴도는 얼음 위성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는 새로운 후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가까운 미래, 아예 직접 유로파 얼음 표면 위로 탐사 로봇을 보내서, 얼음을 뚫고 그 지하 바다까지 탐사하는 유로파 클리퍼(Europa Clipper) 미션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전통적으로 외계 생명체의 첫 발견지가 될 거라 각광을 받았던 화성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유로파에서 진정한 첫 외계 생명체의 흔적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곧 진행될 유로파 지하 바다 탐사를 준비하며, 제임스 웹도 미리 중요한 관측을 이어갈 예정이다. 제임스 웹은 압도적인 분해능으로 유로파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의 스펙트럼을 분석하게 된다. 혹시 유로파의 물줄기 속에서 외계 플랑크톤의 존재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화학 성분이 검출될 수 있지 않을까? 제임스 웹의 유로파 관측은 곧 진행될 실제 유로파 착륙 미션을 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전 연구가 될 것이다.
목성뿐 아니라 토성 주변에도 외계 생명체를 기대해볼 수 있는 재밌는 곳들이 많다. 토성 주변 엔셀라두스 역시 유로파와 마찬가지로 표면이 모두 얼음으로 덮여있는 얼음 위성이다. 그리고 똑같이 얼음 밑에 아주 많은 양의 지하 바다를 품고 있다. 제임스 웹은 유로파와 마찬가지로 엔셀라두스의 물줄기도 분석할 예정이다.
토성 곁을 도는 가장 큰 위성 타이탄은 이미 오래전부터 두꺼운 메테인 대기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2005년에는 카시니 탐사선에서 분리된 하위헌스 착륙선이 직접 타이탄의 두꺼운 대기권을 뚫고 처음으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위성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하위헌스는 두꺼운 메테인 대기권 아래 숨어 있던, 타이탄 표면의 액체 호수의 존재까지 확인했다. 물론 타이탄처럼 지나치게 높은 메테인 함량은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지구와 같은 생태계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메테인은 생명활동의 간접적인 징후로도 해석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지표다. 그래서 제임스 웹은 타이탄의 대기권 성분도 정확하게 추가로 분석할 예정이다.
#3. 천왕성과 해왕성, 닮은 듯 다른 두 세계
태양계 끝자락 두 거대 얼음 행성, 천왕성과 해왕성은 가장 신비한 곳이다. 목성 곁엔 과거 갈릴레오, 그리고 지금은 주노 탐사선이 궤도를 돌며 바로 가까이서 탐사하고 있다. 2017년 9월 토성의 구름 속으로 최후의 다이빙을 하며 13년에 걸친 토성 탐사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기 직전까지 토성 곁엔 카시니 탐사선이 항상 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천왕성과 해왕성에는 계속 그 곁을 오랫동안 맴돌면서 가까이서 탐사를 하는 탐사선을 보낸 적이 없다. 각각 1986년과 1989년, 보이저 2호가 그 곁을 잠깐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단 며칠 동안 탐사한 것이 전부다. 지금껏 인류가 천왕성과 해왕성 바로 곁에 다가가서 실제 그 모습을 포착한 사진은 바로 이때 보이저 2호가 보내온 사진이 유일하다. 명왕성에 탐사선을 보낼 수 있는 지금까지 천왕성과 해왕성에는 그 어떤 탐사선도 가지 못해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다.
천왕성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자전축이 거의 누워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치 바닥 위에 공이 굴러가듯 궤도를 돈다. 보이저 2호가 천왕성 곁을 지나간 1986년 당시에는 천왕성의 한쪽 극이 정확히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워 있는 자전축이 정확히 태양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태양을 향한 절반은 자전을 하는 내내 계속 낮이었고, 태양을 등진 절반은 계속 밤이었다. 보이저 2호는 그렇게 뿌옇고 푸른 천왕성 위로 하루 종일 이어지는 낮과 밤이 공존하는 모습을 뒤로한 채 빠르게 더 먼 우주로 날아갔다.
천왕성은 약 84년을 주기로 태양 주변을 돈다. 보이저가 천왕성을 떠난 이후, 천왕성의 한 해의 4분에 1에 해당하는 약 2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변화가 벌어졌다. 원래는 누워 있는 천왕성의 한쪽 극을 비추던 태양 빛이 이제 천왕성의 적도를 정확히 비추기 시작했다. 원래는 아무리 자전을 해도 천왕성의 절반은 계속 낮, 나머지 절반은 밤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천왕성의 자전과 함께 행성 전체에 골고루 태양 빛이 비춰졌다. 극단적으로 추운 밤과 뜨거운 낮으로 나뉘어져 있던 행성이 서서히 골고루 데워졌고, 잠잠했던 행성 대기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5년과 2006년, 허블 우주 망원경은 처음으로 천왕성 표면에 등장한 하얀 얼룩과 검은 반점을 발견했다. 무언가 급격한 변화가 구름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보이저 2호가 지나가던 당시까지만 해도 천왕성은 표면에 아무런 특징도 없는 그저 밋밋한 민트색 행성이었다. 그런데 20년 사이 갑자기 표면 이곳저곳에서 하얗고 거뭇한 반점이 나타났다! 이건 천왕성 관측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천왕성이 점점 해왕성처럼 변하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인상적인 변화다. 하지만 어떻게 새로운 구름이 만들어졌는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다시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8년이 되면 이번엔 천왕성의 정반대쪽 절반으로 태양 빛이 비추게 된다. 보이저 2호가 천왕성 곁을 지나간 40년 전과 비교하면 완벽하게 낮과 밤의 방향이 뒤집히게 된다. 곧 제임스 웹은 다시 천왕성의 낮과 밤이 완벽하게 구분되기 시작하는 순간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구름 속 열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적외선 관측을 통해서 천왕성의 대기권에서 에너지 흐름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80년 주기의 기나긴 계절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먼 거리에서 165년 주기로 맴돌고 있는 해왕성도 최근 아주 당황스러운 미스터리를 보여주었다. 해왕성도 우리 지구나 화성처럼 살짝 기울어진 자전축 덕분에 계절 변화를 겪는다. 해왕성에선 한 계절이 약 40년이다. 해왕성은 2005년부터 남반구에 여름이 시작되었다. 천문학자들은 여름이 찾아온 해왕성 남반구가 당연히 뜨거워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벌어진 일은 정반대였다.
2003년에서 2018년에 칠레에 있는 초거대 망원경(VLT, Very Large Telescope)과 스피처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한 해왕성의 적외선 이미지를 보면 놀랍게도 여름이 시작되면서 오히려 해왕성 전체 온도가 8도 가까이 뚝 떨어진다. 해왕성에선 겨울보다 여름이 더 추운 걸까? 무더위로 괴로운 이 지구에서 왠지 해왕성의 뒤죽박죽 날씨가 부럽게 느껴진다. 물론 초음속의 끔찍한 태풍은 빼고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또 벌어졌다. 2018년에서 2020년까지 추가 관측에선 다시 해왕성 전체 온도가 무려 11도 가까이 빠르게 올라갔다.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급격하게 차가워졌던 해왕성이 불과 2년 사이에 다시 뜨거워진 것이다. 해왕성은 태양으로부터 평균 45억 km 떨어져 있다. 그래서 평균 온도가 -220도로 아주 낮다. 이렇게 태양계 끝자락에서 165년이나 되는 긴 공전 주기로 아주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차가운 행성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굉장히 급격한 온도 변화가 벌어진 것이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11년 주기로 반복되는 태양 활동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마침 우연히 해왕성에 차가운 여름이 찾아온 시기에 태양은 한동안 많은 개수의 흑점을 보이는 태양 활동 극대기를 보냈다. 하지만 이 역시 그저 연관 없는 두 현상이 우연히 겹친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천문학자들은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을 밝히지 못했다. 해왕성을 지구에서 제대로 관측하기 시작한 것 자체가 2000년 이후다. 이번에 벌어진 급격한 온도 변화가 해왕성에서 한 해 동안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인지 아니면 이번이 이례적인 상황이었는지를 밝히려면 앞으로 제임스 웹이 바통을 이어받아 다음 10~20년간 계속 해왕성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특히 적외선 관측을 통해 푸른 해왕성의 구름 속 대체 어떤 열원이 해왕성의 온도 변화를 지배하고 있는지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역대급 우주 망원경으로 고작 태양계 천체를 봐야 하는 이유
마지막으로 역대급 우주 망원경이 태양계를 관측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가 태양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어떤 중요한 변화를 가져다줄지, 세 가지 관점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1. 더 멀리, 태양계 끝으로 가기 위한 길잡이가 된다
태양계 가장자리 카이퍼벨트를 탐사하는 데에도 우주 망원경은 아주 톡톡히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 허블 우주 망원경도 앞서 2015년 명왕성 곁을 스쳐간 뉴호라이즌스의 다음 타깃을 미리 탐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 덕분에 뉴호라이즌스의 여정은 명왕성만 탐사하고 끝나지 않았고, 뒤이어 2019년 새해 첫날 아로코스(Arrokoth)라는 이름의 카이퍼벨트 천체를 연이어 지나갔다. 36km 크기의 소천체 아로코스는 호떡 기계로 납작하게 짓누른 눈사람처럼 생겼다. 이렇게 뉴호라이즌스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명왕성보다도 더 멀리 있는 카이퍼벨트 천체를 탐사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뉴호라이즌스의 여정은 지금도 쭉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2030년경 신호가 완전히 끊길 때까지 천문학자들은 최대한 이 탐사선을 활용할 계획이다. 그리고 계속 다음 목표로 적당한 새로운 카이퍼벨트 천체를 뒤지고 있다. 물론 점점 더 거리가 먼 곳으로 날아가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허블 망원경만으로는 마땅한 다음 타깃을 찾기가 어렵다. 제임스 웹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 제임스 웹은 더 거대한 눈으로 멀어져가는 뉴호라이즌스의 여정을 내다보며 또 어떤 카이퍼벨트 소천체 곁을 우연히 지나갈 수 있을지 후보를 미리 찾아줄 것이다.
2. 순간의 포착이 쌓이면 세월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10~20년 전의 관측과 탐사의 뒤를 이어, 제임스 웹이 계속 태양계 천체의 변화를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점이다. 태양계는 정적인 세계가 아니다. 모든 천체가 각자의 궤도를 돌고, 모든 행성과 위성에선 시간에 따른 다양한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가스 행성의 거대한 폭풍도, 얼음 위성의 물줄기도 모두 조금씩 모습이 달라진다. 이런 변화가 단순히 단발적인 이벤트였는지, 아니면 일정하게 반복되는 주기적인 현상인지를 파악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간 인류가 발견한 태양계의 변화에서 주기성을 파악하기엔 관측의 역사가 턱없이 짧다. 태양계 탐사선들이 날아가기 시작한 1970~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약 50년이 흘렀다. 벌써 반세기나 지났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태양계 외곽 천체들의 공전 주기는 수백 년을 넘는다. 명왕성의 공전 주기가 약 248년이다. 명왕성의 존재가 처음 발견된 게 1930년이니까, 명왕성은 인류에게 발견된 이후 지금껏 궤도 한 바퀴도 돌지 않았다. 2177년은 돼야 인류는 명왕성이 궤도를 한 바퀴 완주하는 순간을 기념할 수 있다.
우린 지금껏 태양계의 찰나만을 봤을 뿐이다. 하지만 찰나가 오랫동안 쌓이면 긴 세월의 역사를 담은 필름이 된다. 태양계의 서사가 담긴 영화를 온전하게 즐기려면 중간에 필름이 끊겨서는 안 된다. 특히 제임스 웹이 갓 올라간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다. 보이저와 뉴호라이즌스가 태양계를 떠났고, 토성 곁을 지켰던 카시니와 화성에 외롭게 남게 된 오퍼튜니티 등 1세대 태양계 탐사선들이 한꺼번에 은퇴하면서 태양계 탐사의 큰 공백기가 곧 시작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태양계 탐사의 전성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제임스 웹은 그 사이 벌어지는 태양계 다양한 천체들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모니터링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도 함께 해주어야 한다.
3. 그리고 어쩌면…?(희망회로)
2017년 태양계에서 갑자기 이상한 천체가 발견되면서 많은 SF 팬들을 설레게 했다. 바로 외계문명이 보낸 우주선이 아닐까 기대하게 만들었던 미지의 천체, 오우무아무아다. 아쉽게도 오우무아무아는 태양을 스쳐 태양계 바깥으로 떠나가기 시작할 때 처음 발견되었다. 겨우 10일 정도 빠르게 멀어져가는 오우무아무아의 뒤꽁무니만 관측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때 제임스 웹이 원래 계획대로 우주에 올라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 수수께끼의 존재를 더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언젠가 또다시 오우무아무아 같은 수상한 천체가 태양계로 날아온다면, 이번엔 더 선명하게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오우무아무아가 떠나고 2년 뒤 또 다른 성간 천체 보리소프가 태양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간 발견되지 않았을 뿐 성간 천체들이 꽤 자주 태양계를 우연히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보리소프가 떠난 지도 벌써 3년째. 조만간 이런 성간 손님이 또 날아와주지 않을까? 이번엔 제임스 웹으로 꼭 포착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한편 일부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이 카이퍼벨트를 관측하면서 아직까지도 천문학계 영원한 떡밥으로 남아 있는 진정한 아홉 번째 행성을 찾아주기를 기대한다. 과연 제임스 웹은 태양계에서도 이런 예상치 못한 우연한 발견을 해낼 수 있을까?
흔히 태양계라고 하면 훨씬 거대한 은하나 우주에 비해선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빅뱅을 이야기하고, 우주의 탄생과 종말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코딱지만 한 비좁은 태양계를 이야기하는 건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소행성이든, 은하든, 우주 전체든, 그 스케일에 상관없이 우주는 모두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작은 우주와 거대한 우주 모두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수많은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태양계에도 우리가 풀어야 할 비밀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참고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성능
https://blogs.nasa.gov/webb/2022/07/14/webb-images-of-jupiter-and-more-now-available-in-commissioning-data/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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