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김 아무개 씨(63)는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농업과 축산업을 하고 있다. 김 씨 옆집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거주한다. 이들은 인근 논밭에 나가 일손을 돕고 일당을 받아 생활한다. 예전에는 중국 출신이 대부분이었지만 4~5년 전부터는 베트남, 태국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졌다. 읍내와 시내에는 덩달아 베트남 음식점과 식료품점도 생겨났다.
이들이 일반적인 임대차계약을 맺고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김 씨는 “시세가 형성되지도 않는 집들이다. 버려지다시피 한 주택이니 집주인이 한 달에 10만 원씩 저렴하게 세를 놓거나, 관리나 해달라며 아예 맡기고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노인들마저 요양병원이나 자식 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늘자, 원주민의 일손을 대체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빈집에 살면서 마을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20년 전인 40대 때부터 마을이장과 청년회장을 도맡은 김 씨는 지역의 인구 감소 위기를 특히 체감하고 있다. 김 씨는 “우리 마을의 28호 중 4호가 빈집이다. 다른 곳도 다르지 않다. 평균적으로 20호 중 3호는 빈집이고 산에 닿아 있거나 교통이 안 좋은 곳은 더 비어 있다”며 “그나마 있던 젊은 사람들도 아이 교육을 이유로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는다. 교육, 일자리 어떤 것 하나 수지타산에 안 맞는데 누가 돌아오려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젊은이도 노인도 떠난다…인구 감소 막기 위한 첫 재정지원책
정부가 지방 인구 소멸을 막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투입한다. 매년 1조 원 규모의 재정이 총 10년간 인구 감소 지역의 인프라 개선에 활용될 예정이다. 지방 소멸 해소를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첫 재정지원 시행을 앞두고 인구 위기를 겪는 지자체들의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인구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청년층을 지방에 데려와 정착시킬 수 있는 중장기 대책이 병행돼야 하는데, 매년 1조 원씩을 여러 지자체가 ‘나눠먹기’ 하는 집행 방식으로는 한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앞에 이야기한 고창군의 인구는 지난해 기준 5만 3386명이다. 2018년(5만 7041명) 이후 3년 만에 전체 인구의 6.8%에 해당하는 3655명이 감소했다. 고창군은 지난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다. 정부는 지난해 인구 감소로 지방소멸 위기를 눈앞에 둔 전국 11개 시도 기초자치단체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이 지역들은 정부의 지방소멸대응기금 투입의 우선순위를 부여 받게 된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원래 전국 모든 지자체에 지원되는 예산이지만 정부는 이 기금의 상당액을 인구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 우선 배정하고, 국고보조사업을 선정할 때도 인구감소지역에는 가점을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예산의 두 배 몰렸다…실효성은?
행정안전부는 최근 전국 122개 지자체에서 기금 활용을 위한 투자계획을 받았다. 기금 요구 총액은 1조 3598억 2500만 원에 달한다. 사업 첫해인 올해 예산은 총 7500억 원이지만 전체 지자체가 신청한 규모는 배분 총액의 약 2배다. 올해 각 지역에 지원되는 상한선은 인구감소지역 120억 원, 인구관심지역 30억 원(2023년부터 각 160억 원, 40억 원)인데 지자체가 저마다 사업을 내세워 경쟁에 불이 붙은 것.
하지만 정부가 기금 운용을 인프라 개선에 치중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주로 문화 시설, 일자리, 주택 개·보수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행안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투자계획은 문화·관광, 산업·일자리, 주거 3개 분야가 사업 건수에서 70% 이상 비중을 차지했다. 실제로 고창, 강진 등 다수 지역들이 근로자를 위한 주택 및 커뮤니티 시설 조성, 창업 시설, 귀농·귀어인을 대상으로 한 주거 시설 등을 사업계획에 포함했다. 넉넉지 않은 지방 지자체 예산으로는 대도시보다 교통, 교육 등 적재적소에 인프라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청년층 인구 유출이 가속화됐다는 분석이 기금 도입의 배경이 된 만큼 인프라 정비가 주요 사업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보인다.
‘10년 시한부’ 정책이라는 점과 매년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투자계획을 심사받는 형식에서 오는 한계도 뚜렷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6월 30일 발간한 ‘지방소멸대응기금의 도입 및 향후과제’ 보고서를 통해 “한시적인 기금이므로 장기적인 인구 전략에 따른 중장기 사업을 발굴하기 어려울 수 있고 매년 기금 운용의 성과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인 정책보다는 근시안적인 단기 성과에 집중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성과가 도출되는 사업에 집중하게 되면 연간 1조 원의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연례적인 반복사업을 구조조정하고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유발하는 사업에 투자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데, 기금이 소규모 사업에 사용될 경우 지역발전 성과를 거두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책 구조상 필연적으로 ‘나눠먹기 게임’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형평성을 따져 작은 사업들을 배분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모아서 함께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이 가지고 있는 ‘양여금’의 성격도 근시안적인 사업을 양산할 수 있는 요건 중 하나다. 행안부는 이 기금을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수립하는 전략과 투자계획에 중앙부처가 지원하는 상향식 지원 정책”이라고 강조하지만 2022년 행안부 예산설명자료에서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의 명칭을 ‘지방소멸대응 특별양여금’이라고 표기했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재원이라기보다는 중앙정부가 용도를 지정해 교부하고 성과가 좋은 경우에만 다음해에 교부하는 양여금 성격이 강한 것이다.
이 교수는 “매년 기금 운용 사업에 대해 단기적 평가가 반복되면 지속성에도 한계가 있다. 지자체가 바로 보이는 성과에만 치중하게 되면 장기적인 성공 가능성에 대한 부분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어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아직 사업 시행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행정 전문가는 “양여금이라고해서 자율성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어떤 식으로 제도를 운영하는지다. 앞으로 사업이 보완을 거듭하며 지방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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