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입석 금지예요. 타면 안 돼요.” 출퇴근길 광역버스 승객과 기사의 실랑이가 반복되고 있다. 최근 몇몇 경기도 광역버스 노선이 입석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출근을 서두르는 일부 승객은 닫힌 버스 문을 두드리며 화를 내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버스를 타겠다며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앞 유리까지 입석 승객으로 가득 찬 버스 “기사들은 내내 긴장하며 운전”
광역버스의 입석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사고 위험 방지를 위해 정부는 광역버스의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하고 입석을 금지했다. 하지만 말뿐인 입석 금지였다. 입석을 허용하지 않고는 승객 수요를 맞추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몇 차례 단속을 통해 입석 금지를 시행하려 했지만, 승객 반발에 한두 달을 못 넘기고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정부, 지자체는 대책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광역버스의 입석을 암묵적으로 허용해왔다.
최근 시작된 입석 금지는 정부가 아닌 버스회사가 주도해 눈길을 끈다. 수원 및 화성에서 13개 노선을 운행하는 경진여객은 6일부터 입석승차를 금지했다. 경진여객 노조는 표준운송원가 상승을 주장하며 11일 하루 동안 총파업을 진행했고, 정상운행을 재개한 뒤에도 입석 금지를 이어가고 있다.
백찬국 경진여객운수지회 사무장은 “입석은 엄연한 불법운행이다. 승객과 기사 모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출퇴근 시간 입석을 허용하면 승객이 차량 계단까지 꽉 들어찬다. 앞유리에 딱 붙어 가는 승객도 많다. 이층 버스는 손잡이도 없는데 얼마나 불안한가. 고속도로에서 급브레이크라도 밟는다면 크게 다치는 승객이 상당수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 사무장은 “기사들이 입석 손님을 태우면 내내 긴장 상태로 운전할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승객들이 크게 다칠 수 있고, 기사들은 벌점을 받아 더는 버스 운행도 어렵다. 기사들의 안전한 운행 환경, 생존권을 위해 입석 금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돼 정상 출근이 많아지고, 고유가로 대중교통 이용객이 늘면서 입석 승객이 늘어 기사들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는 설명도 있다. 한 버스회사 관계자는 “71석 버스에 120명 이상 승객이 들어찬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때는 승객이 많이 줄었는데 최근 급격히 늘었다”고 밝혔다.
기사뿐 아니라 버스업체에게도 입석 승객은 달갑지 않다. 공공버스의 경우 운송수입금은 지자체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승객을 많이 태운다고 회사가 수익을 더 내는 구조가 아니다. 백찬국 사무장은 “오히려 승객을 많이 태우면 버스가 빨리 노후화되기 때문에 회사나 기사 모두 입석 승객을 원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입석 승차를 강요당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기사 근무 여건 개선, 과태료 부과 우려에 입석금지 확대 분위기
최근 경기도 내 다른 버스 업체들까지 입석 금지가 확대됐다. 수원에서 8개 노선의 입석을 금지한 용남고속 관계자는 “입석 탑승은 불법이었으나 승객 수요 문제로 지자체와 협의해 어쩔 수 없이 진행하던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근로자의 근로 환경, 근무 여건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입석을 금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승객과 지자체 눈치 보기에 지금껏 입석 승객의 승차를 거부하지 못했던 버스회사들의 태도가 바뀐 데는 과태료 부과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한 버스 업체 관계자는 “최근 입석 차량에 대한 경찰 고발이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해 입석을 금지하게 된 이유도 있다”고 밝혔다.
7월 초 버스기사들 사이에서 의왕청계영업소 환승 정류장 인근에서 입석 손님을 태운 버스를 사진 촬영하는 장면이 몇 차례 목격됐다. 의왕청계영업소 환승 정류장은 고속도로 요금소 옆 환승 정류장으로 이곳에서 입석 손님을 태우는 것은 고속도로 입석 금지 위반이며, 신고 시 버스 회사와 운전기사 모두 처벌을 받는다.
입석 금지 조치를 어긴 버스 업체는 영업정지(1차 10일, 2차 20일, 3차 30일) 또는 과징금(60만 원)이 부과되며, 버스 기사는 과태료(10만 원)와 운전자격 취소(1년간 4번 이상 과태료를 부과 받은 경우)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앞선 관계자는 “버스 기사들을 통해 입석 차량을 촬영한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고발 목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신고가 접수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입석은 엄연한 불법인 만큼 이 기회에 여러 회사가 입석을 함께 금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즈한국 취재 결과, 사진 촬영을 한 것은 입석 금지를 시작한 경진여객 측으로 확인됐다. 여러 버스 회사의 입석 금지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취지였다는 설명이다. 백찬국 경진여객운수지회 사무장은 “입석 버스를 촬영한 사실이 있다. 입석 금지를 시행하고 다른 버스 업체들도 동참해왔는데 일부 회사들이 입석을 여전히 허용하고 있더라”며 “시민연대 등에서 촬영을 했다. 아직 신고는 하지 않았고, 참고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진여객을 포함한 버스회사들은 추후 입석을 완전히 금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장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승객 몫이 됐다. 불법인 입석 운행을 암묵적으로 허용하며 수도권 교통문제를 방치했던 정부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12일 국토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는 ‘긴급 입석 대책’을 마련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광역버스 57개 노선의 출퇴근 시간대 운행 횟수를 확대하고, 이용객이 많은 노선에는 2층 전기버스, 전세·시외버스를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증차 외에는 입석 문제를 해결할 마땅한 방안이 없는 상태다. 기존에도 전세버스룰 투입해 입석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승객이 계속 늘다 보니 100% 충족하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대광위 계획에 따라 전세버스를 순차적으로 투입 중이며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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