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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유유히 흐르는 남강을 보며 논개를 생각하네, 진주성 산책

임진왜란 당시 벌어진 진주 대첩과 2차 전투의 슬픈 이야기까지

2022.07.20(Wed) 09:02:22

[비즈한국] 그림 같은 풍광의 촉석루가 자리한 진주성은 임진왜란 최대 격전지였다. ‘의로운 기생’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곳이 바로 촉석루다. 진주성 안의 국립진주박물관에서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손꼽히는 진주 대첩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아름다운 남강을 해자로 삼아 성을 쌓은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 대첩이 일어난 현장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남강을 품은 천혜의 요새

 

경상남도 함양군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은 진주를 에둘러 흐르다 낙동강과 합류한다. 아름다운 남강을 해자로 삼아 성을 쌓은 것은 일찍이 삼국시대의 일이었다. 원래 흙으로 쌓은 것을 고려 말 우왕 때 석성으로 개축했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된 진주성은 임진왜란 초기 육지에서 거둔 첫 대승인 진주 대첩의 현장이 되었다. 아름다운 남강이 그림처럼 흐르는 진주성은 역사의 현장이자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진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 권율의 행주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리는 진주 대첩을 이끈 이는 김시민이었다. 무과에 급제한 후 북방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김시민은 진주 목사로 진주성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의 활약으로 일본의 공격이 주춤거리는 틈을 타서 화약을 비축하고 조총을 마련하는 등 전투 준비를 착실히 했다. 당시 진주는 군량 보급지인 전라도를 지키는 길목이었기에 왜군의 공격은 시간 문제였다. 

 

아름다운 남강이 그림처럼 흐르는 진주성은 역사의 현장이자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진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마침내 임진년 초겨울, 왜군은 3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진주성을 공격했다. 그때 진주성을 지키는 병력은 김시민이 이끄는 관군과 곽재우의 의병 등을 모두 합해 3000명 정도. 적군의 10분의 1에 불과한 병력으로 성을 지킨 셈이었다. 김시민은 압도적 병력을 앞세운 적의 공격에 다양한 전술로 맞섰다. 비격진천뢰, 현자총통, 질려포 등의 신식무기뿐 아니라 돌을 던지고 끓는 물을 붓는 재래 전투 방법을 상황에 맞춰 활용했다. 또한 노약자와 부녀자에게 남장을 시키고 허수아비를 만드는 등 병력을 부풀렸다. 무엇보다 관군과 의병, 보통 백성들까지 하나가 되어 항전한 덕분에 열 배가 넘는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진주성에서 패배한 탓에 왜군은 임진왜란 초기 막대한 전략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던 왜군은 이듬해 여름 진주성을 다시 공격했다. 이번에는 무려 10만에 가까운 병력이었다. 김시민은 이미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뒤를 이어 진주성을 지키던 군인들은 용감히 싸웠으나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아름다운 촉석루에 담긴 슬픈 사연

 

의로운 기녀 논개의 사연은 제2차 진주성 전투가 끝난 뒤에 생겨났다. 진주목에 속한 관기 논개가 촉석루 아래 가파른 벼랑에서 왜장을 끌어안은 채 남강으로 뛰어내려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조선 시대 야사를 다룬 유몽인의 ‘어우야담’을 시작으로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성해응의 ‘연경재전집’ 등 다양한 책자에 남아 있다. 

 

논개의 이야기가 전하는 촉석루는 고려 후기에 건립된 진주성 안의 누각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건물도 아름답지만 남강이 유유히 흐르는 벼랑 위에 우뚝 선 모습이 장관이다. 촉석루는 미국 뉴스 전문 채널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 명소 50’에도 포함됐다. 이곳은 진주대첩 때는 전투를 지휘하는 본부로, 평화 시에는 과거시험을 보는 장소로 사용됐다.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0년에 재건한 것이다. 

 

논개의 이야기가 전하는 촉석루는 고려 후기에 건립된 진주성 안의 누각이다. 남강이 유유히 흐르는 벼랑 위에 우뚝 선 모습이 장관으로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 명소 50’에도 포함됐다. 사진=구완회 제공

 

촉석루 옆에는 논개를 모신 사당인 의기사가 있다. ‘의로운 기녀를 모신 사당’이란 뜻이다. 자그마한 사당 안에는 현대에 그려진 논개의 표준 영정이 보인다. 근래에 들어 논개는 원래 양인이었으나, 왜장을 죽이기 위해 일부러 기생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근거가 부족하다. 하지만 논개의 이야기는 임진왜란 이후 널리 퍼져 18세기에 들어서는 국가로부터 ‘의기’ 칭호를 받을 정도였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논개뿐 아니라 수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왜군을 막아낼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진주성을 지켰다. 진주 대첩의 소식을 들은 많은 백성들이 진주성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떻게 목숨을 걸고 진주성을 지켰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질 수밖에 없었는지는 진주성 안의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진주성 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진주성 안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정보>


진주성

△위치: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

△문의: 055-749-5171

△관람시간: 3~10월 05:00~23:00, 11~2월 05:00~22:00, 연중무휴

 

국립진주박물관

△위치: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35

△문의: 055-740-0698

△관람시간: 09:00~18:00, 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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