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에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니까 장관들은 물론 총리도 나선 것 아니겠냐.” (금융당국 관계자)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가 지난달 2일부터 임금 30% 인상, 상여금 100%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달 22일부터는 진수 중인 선박에서 고공 농성을 하며 점거에도 나섰다. 창원지방법원에서 “도크 점거를 멈추라”고 결정을 내렸지만, 노조는 요구 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퇴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도 나섰다. 40일 넘어가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에 대해 지난 14일 장관들이 나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브리핑을 열고 “어렵게 회복 중인 조선업의 대내외 신인도 저하로 돌이킬 수 없는 국가 경제의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고민’이 깊다. 하청업체의 파업은 ‘원청(대우조선해양)’이 해결하는 게 원칙적으로 맞기 때문. 불법 점거를 법원이 확인해준 탓에 공권력 투입도 가능하지만, 정부의 개입이 어디까지 적절한지 고심 중이다. 자연스레 파업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매일 커지는 피해, 법원은 ‘불법 점거’ 판단
정부에 따르면 이번 파업으로 발생한 피해는 5700억 원에 달한다. 이창양 장관은 “이번 파업으로 건조 중이던 선박 3척의 진수 또는 건조 작업이 중단됐다”며 “대우조선해양은 매일 259억 원의 매출 손실과 57억 원의 고정비 손실이 발생했고, 현재까지 약 5700억 원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또 납기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매달 130억 원의 지체 배상금이 발생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14일 “하청지회가 점거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면 정부도 적극 교섭을 지원하겠다”며 정부가 사안을 중대하게 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법원은 이미 ‘불법 점거’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민사2부는 16일 대우조선해양이 유최안 하청노조 부지회장을 상대로 낸 집회 및 시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하청지회 측의 점거 행위는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관련 법령에서 정한 정당한 쟁의 행위의 범위를 벗어났다”며 “이로 인해 대우조선해양 측에 상당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조합원이 퇴거하지 않을 경우 사측에 1일 300만 원씩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재계도 곧바로 ‘정부의 공권력 투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선고 다음날인 17일 “정부가 국민경제에 현저한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공권력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인상은 노사 자율 영역
하지만 정부는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의 파업은 일단 원청(대우조선해양)과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 특히 임금 인상과 같은 사안은 노사 자율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불법 점거에 대한 금전적 배상(하루 300만 원씩)을 감수하더라도 “요구 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퇴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규직 노조가 “점거부터 풀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들어 노동권 관련 사안으론 처음 주목을 받는 상황이어서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노총이 강경하게 나설 것이기에 더욱 나서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귀띔했다. 금융당국 관계자 역시 “최대주주인 산업은행 앞에서도 시위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 개입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며 “피해가 너무 크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지만, 재계에서 요구하는 공권력 투입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많다.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윤석열 정부에게 너무 큰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번 파업 문제에 속속 참전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23일 ‘희망버스’를 타고 파업 현장으로 이동해 파업에 대한 지지 입장을 낼 계획이다. 희망버스는 2010년 한진중공업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출범한 일종의 노동시민 연대체다. 민주당도 사실상 노조 편에서 “파업 사태 해결에 정부가 나서라”는 메시지를 냈다.
정부도 이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14일 정부 브리핑도 행정안전부 장관이 아니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했고, 브리핑 후 정부의 공권력 투입이나 긴급 조정 등을 검토 중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교섭 당사자는 하청업체 노사다. 이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공권력 투입 등 정부 개입보다는 ‘대화 촉구’ 수준에서 거리를 둔 셈이다.
앞선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단순한 조선업계 하청업체의 파업이 아니라 정치 쟁점화가 예상되는 ‘노동계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며 “1년 넘게 진통을 겪었던 한진중공업 파업처럼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측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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