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동안 밀리터리 소재 영화가 뜸하다가, 최근 공중전과 미 해군 항공대를 소재로 한 톰 크루즈 주연의 ‘탑 건: 매버릭’이 오랜만에 대박을 쳤다. 36년 만에 등장한 ‘아재’들만 기억하던 작품의 후속작이 한국 극장가에서는 9일 연속 1위를 달성했고, 전 세계 흥행수익도 속칭 대박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10억 달러를 훌쩍 넘겼다.
시놉시스만 보면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할 특별한 요소가 없는 탑건의 흥행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주인공 톰 크루즈의 활약과 또 다른 주인공인 미 해군의 전투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탑건은 밀리터리 영화로서 완벽한 재미를 준다고 할 수 있을까.
진짜 전쟁의 실감 나는 재현을 선호하는 밀리터리 마니아의 관점에서 톰 크루즈는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장면들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GPS 재밍(Jamming) 때문에 스텔스 전투기인 F-35C가 작전하지 못하고, 그래서 비 스텔스 전투기인 F/A-18F 슈퍼 호넷이 투입된다는 것은 영화의 가장 큰 설정 오류다. 적이 작전지역에 강력한 GPS 재밍을 걸고 있다면 F-35C는 물론 영화에 등장한 슈퍼 호넷 역시 쉽게 침투할 수 없고, 영화 속에서의 크루즈 미사일 공격도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지금은 군용 장비는 물론 스마트폰과 온갖 제품에 GPS(Global Positioning System)가 들어가지만, GPS는 민간 영역뿐만 아니라 군사 영역에서 엄청난 의미를 가진 진정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였다. 모든 무기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야 적을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GPS의 도입 후 인류는 거의 모든 무기의 정확도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는 데 성공했고, 이것은 전쟁의 양상마저 바꿔버렸다.
이런 만큼 우리 군도 미국 주도의 GPS 시스템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반 보병부터 초정밀 유도무기, 이지스함과 잠수함까지 모두 GPS를 사용해서 적과 나의 위치를 찾고 작전지역을 향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GPS의 경우 엄연히 미 정부와 국방부의 자산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민수용 C/A 코드의 경우 누구나 수신할 수 있지만 정확도를 의도적으로 낮춰서 제공되고 있으며, 군용 P코드(신형 M코드도 존재)의 경우 암호화 되어 미국 정부가 엄격히 심사하여 통과된 무기나 장비에서만 P코드를 사용할 수 있다. 한국군이 운용하는 무기 중에서는 아직도 P코드 및 M코드와 같은 군용 코드를 사용하지 못해 민간용 GPS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민수용 GPS의 경우 아주 쉽게 적의 전자전(Electronic Warfare)에 의해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북한은 군사분계선 이남을 향해 GPS 교란 전파를 발사해서 300대 가까운 비행기가 GPS 교란 현상을 겪은 바 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와 국방부는 십여 년 전부터 한국의 독자적인 위성항법 시스템 구축을 모색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부터 KPS(Korea Positioning System)사업이 본격 궤도에 올랐다.
KPS 사업의 핵심은 한반도 주변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항법위성의 운용이다. 미국의 GPS가 30여 개의 위성을 중궤도에 띄워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사용할 수 있는 반면, KPS는 정지궤도 위성 3기, 경사궤도 위성 5기 총 8개의 위성으로 구성된다.
현재 위성 숫자가 제한되어 전 세계를 커버하지는 못하지만, 정밀도는 GPS보다 훨씬 뛰어나다. 한반도 근처에서는 항상 6기 이상의 항법위성으로부터 정밀 신호를 수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KPS 위성이 모두 개발 완료되는 2035년에는 불과 10cm 내외의 놀라운 정확도로 위치 오차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KPS가 완성되고 난 뒤 우리의 삶과 생활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우선 민간 부분에서 GPS의 낮은 정확도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UAM(Urban Air Mobility), 드론 등 미래교통수단 대부분이 위성항법 기술에 의존하는데, 센티미터 단위의 위치 정확도를 KPS위성으로 확보하게 된다면 초정밀 위치기록을 통해 자율주행 및 비행경로 오류를 크게 줄이고 비행하는 드론과 UAM비행체의 추적이 쉬워진다. 드론과 UAM비행체들의 경우 추락사고가 큰 인명사고로 번지거나 테러에 이용할 수 있어 엄격하게 비행경로를 추적하고 도시 주변에 넓은 비행금지 구역을 지정하는데, 매우 정밀하게 현재 위치를 알 수 있으니 사고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비행할 수 있는 구역도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민간 부분보다 더욱 기대되는 것은 KPS의 군사적 활용이다. 기존에 운용 중인 우리 군 무기체계도 자연스럽게 민수분야처럼 KPS의 혜택을 받게 된다. 가령 KPS를 항공기 항법 및 정밀접근 이착륙 등에 사용한다면 민간 항공기와 군용기기가 더 안전하게 뜨고 내릴 수 있고, 민간 분야에서의 UAM이 KPS를 사용해서 더 정밀하게 비행 가능하다면 이 기술이 군용 드론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센티미터 단위의 정확도를 KPS로 얻을 수 있으므로 여러 신개념 무기체계의 도전도 가능하다. 원래 유도무기는 기본적으로 GPS와 함께 INS(관성항법장비)라는 항법장비를 따로 장착해서 GPS의 정확도를 보정하는데, KPS만으로도 센티미터 단위를 얻을 수 있다면 기존 무기체계보다 훨씬 저렴하고 정확한 무기체계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KPS가 실용화되면 국방은 물론 민수분야에서도 엄청난 혁신이 기대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GPS위성을 그대로 사용하여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반대 여론도 존재한다. 하지만 신냉전시대에 들어선 지금, 개방된 무료 우주서비스가 영원히 공짜라는 점도 순진한 발상일 것이다. 우리 손으로 초정밀 위성항법, KPS가 너무나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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