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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당연하지만 귀한 보편적 가치들

우영우 외에도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가득…담백함이 선사하는 '충만한 힐링감'

2022.07.11(Mon) 15:07:08

[비즈한국] 지금 가장 뜨거운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변호사가 주인공인 데다, ENA라는 신생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등 성공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조건이 많았다. 결과는? 1화 0.9%로 시작한 시청률은 2화 1.8%, 3화 4%를 찍더니 4화에서 5.2%로 ENA 드라마 역대 최고 기록을 가뿐히 세웠다. 넷플릭스 국내 1위와 8개국 1위, 월드와이드 TV쇼 부문 10위에도 올랐다. 물론 시청률이 모든 것을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언더독의 반란’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짜릿한 쾌거인 건 확실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일등공신은 단연 박은빈. ‘청춘시대’로 이런 연기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박은빈은 ‘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모’에 이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30년 가까운 연기 내공을 마음껏 발산한다. 사진=ENA 제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이토록 좋은 반응을 얻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팔 할은 박은빈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오래 전부터 박은빈을 좋아했는데(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사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박은빈이 주연임에도 짧은 시놉시스를 보곤 바로 시청하기를 주저했던 작품이다. 장애와 질병은 물론 소수자 집단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가 어떤 식의 설정과 서사를 보이는지 예상될 것 같고, 이전에 존재했던 그런 설정과 서사에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은빈 역시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어느 하나 거슬리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두렵다’며 여러 번 캐스팅 제안을 고사했을 정도. 그럼에도 박은빈을 기다린 제작진의 선택과 뚝심은 빛을 발했다. 덕분에 나를 포함한 시청자들 또한 박은빈이 연기하는 우영우를 보면서 웃고 울고 있는 중이다.

 

한바다 로펌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은 장애를 대하는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출발하지만 무지와 편견을 걷어내며 알아가면 된다는 자세를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정명석을 연기한 배우 강기영에게 ‘인생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ENA 제공

 

모두가 우영우, 그리고 그를 연기한 박은빈을 칭찬하고 있으니 나는 다른 이들에 눈을 돌려 보겠다. 우영우를 제외하고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정명석(강기영)이다. 우영우가 근무하는 한바다 로펌의 시니어 변호사인 정명석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를 대하는 처음 반응은 대다수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클라이언트를 면담하고 재판장에 나서서 변론을 나서야 하는 변호사에게 평균 이상의 언변과 사회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영우를 뽑은 대표에게 “저와는 다르지 않습니까?”라며 우영우를 변호사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 것도 그의 입장에선 당연하다. 그러나 정명석은 자신의 무지와 편견을 그때그때 걷어낼 줄 아는 인물이다. 테스트용으로 맡긴 사건에서 본인이 놓친 점을 찾아낸 우영우에게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외부에서 피해자 만나는 게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라 말했다가(선한 의도지만) 이내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거 같다”라고 사과하는 인물이다. 잘못을 인지하면 사과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싶겠지만 그 당연함이 종종 당연하지 않아서 미덕으로 보일 만큼 귀한 사회가 되어서인지, 정명석의 모습은 귀하게 다가온다.

 

우영우와 팀을 이루는 한바다 로펌 동료들은 저마다 우영우를 취하는 태도가 다르다. 정명석부터 로스쿨 동료 최수연, 같은 신입 변호사 권민우, 송무팀 직원 이준호를 보면서 소수자라 불리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사진=ENA 제공

 

분식집을 운영하며 우영우를 키운 아버지 우광호(전배수)에게도 눈길이 간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지만 미혼부가 되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한 것으로 보이는 이 인물은 ‘자신의 자식을 자기가 책임진다’는 순리를 따른 인물이다. 그러나 그 순리는 결코 쉽지 않다. 미혼부만 해도 대단한 결심인데, 심지어 창창하게 펼쳐질 수 있는 자신의 미래를 접어두고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지간한 결심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우광호였다면?’ 혹은 ‘내 동생이 우광호였다면?’ 하고 되물어보면 알 수 있다.

 

우영우에게 과한 경쟁의식을 갖고 있는 ‘권모술수’ 권민우. 친절하지 않고 언뜻 싸가지없어 보이긴 하지만 대놓고 무례하지 않은 권민우는 어떤 의미에서 우영우에게 가장 공평무사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진=ENA 제공

 

우영우와 한바다 로펌 동료인 최수연(하윤경)과 권민우(주종혁)는 어떤가. 최수연은 우영우와 로스쿨 동기로, 회전문 통과 같은 일상 앞에 당황하고 버벅거리는 우영우를 못 지나치고 도와주지만 항상 성적에서 앞서 나가는 우영우에게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홈페이지 인물 소개를 보면 ‘봄날의 햇살처럼 밝았던 그는 겨울의 바람처럼 냉혹한 경쟁의 세계에서 우영우를 만나 현실과 본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고 되어 있다. 현실에서 나와 경쟁하는 입장의 동료가 자신의 도움을 받는 부분과는 별개로 항상 자신보다 좋은 성과를 내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최수연은 미묘한 감정을 표출할지언정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야 한다’라는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지 않는다.

 

한바다 로펌 최고의 인기남이자 ‘인싸’인 송무팀 직원 이준호. 회전문을 통과 못하는 우영우에게 도움을 줄 때부터 편견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인물로, 우영우와 로맨스로 얽힐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ENA 제공

 

권민우는 독특하다. 로펌 동료들을 대놓고 견제하는 권민우는 모두가 우영우의 자폐를 주목할 때, 우영우의 이력서에 붙은 한바다 로펌 대표 한선영(백지원)의 ‘잘 부탁해요’라는 쪽지를 견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권민우는 과한 경쟁의식을 지녔기에 우영우를 가장 차별없이 대하는 인물이다. 우영우의 뛰어남을 과하게 인식하고 ‘누가 누굴 도와주느냐’며 최수연에게 핀잔을 주고, 사직서를 내고 출근하지 않은 우영우에게 페널티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정명석에게 항의한다. 그만큼 권민우에게 우영우는 일정 자격을 지닌 라이벌이다. 장애를 지닌 동료에게 배려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권민우는 냉정하고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영우가 송무팀 직원 이준호(강태오)와 있는 모습을 보곤 ‘오빠, 아직도 나누리 활동(장애인 봉사활동) 하는구나?’ 하곤 우영우에게 선한 웃음과 함께 ‘파이팅’을 던지고 가던 이준호의 후배를 생각해 보자. 때로는 차별만큼이나 소수자에 대한 (우월적 태도의) 과한 친절이나 동정이 쓰라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권민우는 최소한 경쟁이란 기준에서 우영우에게 공평무사한 인물이란 점이 재미나다. 

 

‘착한 드라마’ ‘힐링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으며 승승장구 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한 회에서 한 사건을 다루기에 지난하고 복잡해야 할 과정이 맥이 빠질 만큼 쉽게 해결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는 판타지 설정 등 핍진성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뜨거운 응원을 보내게 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미혼부, 성소수자 같은 인물을 그리면서도 과한 휴머니즘으로 빠지지 않고, 당연하다고 배웠으나 살면서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보편적 가치들을 그려내니까. 친구들의 괴롭힘을 당하던 고등학생 우영우가 괴롭힘을 피하고자 점심시간엔 경비실로 피신하는데, 이때 경비아저씨가 도시락을 먹는 우영우에게 말없이 김치통을 밀어주는 짧은 장면을 보며 우리가 이런 담백한 가치들을 잊고 산 건 아닌가 깨닫게 해주니까. 그것만으로 이 드라마는 충만하다. 당분간 수, 목요일 저녁에 약속은 없을 예정.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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