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 주변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그 주변을 떠도는 전자로 이루어진 원자. 그런데 그 중에서 중성자는 아주 신기한 존재다. 원자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존재하는 중성자는 거의 없다. 원자 바깥으로 튀어나온 중성자는 길어야 15분 안에 다시 양성자와 전자로 붕괴하며 사라진다. 이처럼 양성자와 함께 반죽되어서 원자핵을 이루고 있지 않은 채, 홀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중성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양성자도 전자도 없는, 오직 아무런 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자만으로 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딱 하나,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무거운 별이 죽고 남긴 중성자별이다. 중성자별은 말 그대로 별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중성자라고 볼 수 있다. 너무 중력이 강해서 +를 띠는 양성자와 -를 띠는 전자가 따로 떨어져 나가지 못한다. 결국 양성자와 전자가 다시 모여 재결합을 하게 되고, 아무런 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자로 반죽된다.
그런데 최근 이 극단적인 중성자별에서나 가능한 일을 지구의 실험실에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찰나이긴 했지만, 오직 중성자 네 개만으로 이루어진 물질을 지구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물리학자 대부분이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그 존재를. 약간 과장하자면, 이 실험이 성공한 순간 우리 지구에는 아주 잠깐 중성자별의 작은 조각 하나가 존재했던 셈이다.
지구 위 실험실에서 중성자별과 같은 상태의 물질을 구현해냈다. 중성자별을 이해하는 전혀 다른 관점을 소개한다.
이 실험은 대한민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23개국 물리학자들이 함께 모여 진행했다. 양성자 하나를 타깃으로 아주 강력한 이온 빔을 발사하는 실험이었다. 이를 위해 액체 수소로 이루어진 타깃을 준비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헬륨보다 두 배가량 더 무거운 헬륨의 동위원소, He8로 이루어진 이온 빔을 발사했다. 보통 안정적인 헬륨의 원자핵은 양성자 두 개, 중성자 두 개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He8 동위원소의 핵은 여기에 중성자 네 개가 더 붙어서, 양성자 두 개, 중성자 여섯 개로 이루어져 있다. 물리학자들은 일반적인 헬륨에 비해 중성자가 훨씬 더 많이 붙은 헬륨의 동위원소 빔을 양성자를 향해 발사해서 둘을 빠르게 충돌시켰다.
충돌 직후 He8 이온 빔을 얻어맞은 양성자가 튕겨 날아갔다. 동시에 충돌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파편이 만들어지면서 빠르게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날아갔다. 이 새로 만들어진 파편은 양성자 두 개, 중성자 두 개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헬륨 원자의 핵, 알파 입자였다. 처음에 발사한 He8 이온은 양성자 두 개에 중성자가 여섯 개 모여 있었다. 그런데 그 중 양성자 두 개, 중성자 두 개가 따로 떨어져 나오면서 알파 입자가 튀어나왔다. 그렇다면 He8에서 알파 입자가 튀어나오고 남은 것은? 바로 중성자 네 개다!
물리학자들이 미시 세계에서 벌인 이 찰나의 당구 놀이를 통해 중성자 네 개만으로 이루어진 전설 속의 입자, 사중중성자(Tetraneutron)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사중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자만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바로 감지하기는 어렵다. 대신 전하를 띠고 있는 다른 파편 입자들의 궤적과 에너지를 측정하면 직접 측정할 수 없는 사중중성자의 존재를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다.
붕괴된 별의 중심부처럼 극단적으로 강한 중력 없이, 지구 위 실험실에서 찰나이나마 사중중성자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원자핵 속에 양성자와 함께 반죽된 상태가 아닌, 오직 중성자들만 모여 따로 떨어져 나온 상태로 말이다. 중성자별의 미니어처를 잠시나마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빼곡한 주기율표를 기억하는가? 1번 수소, 2번 헬륨, 수헬리벨붕탄질산플네…. 쭉 이어지는 원자들의 번호를 외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원자 번호는 각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 개수로 부여된다. 1번 수소의 원자핵은 양성자 하나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1번이 되었다. 2번 헬륨은 양성자 두 개, 중성자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원자 번호 2번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 봤을 때, 이번에 아주 잠깐이나마 존재한 사중중성자는 양성자가 하나도 없이 오직 중성자만으로 이루어진 존재였으니 양성자가 0개, 원자 번호가 0번인 새로운 원자의 핵을 만들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직 중성자만 두 개, 네 개, 심지어 10개, 20개까지 모여 있는, 원자 번호가 모두 0번이지만 원자핵의 질량은 각기 다른 수많은 0번 동위원소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오직 중성자만으로 채워진 거대한 별의 찌꺼기, 중성자별도 이런 우주에 숨어 있는 수많은 0번 동위원소 중 가장 무거운 축에 속하는 동위원소라고도 볼 수 있겠다!
특히 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기 때문에, 양성자나 전자에 비해 더 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대체 어떻게 전기적 인력도 없이, 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자들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모이는 걸까? 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자들이 뭉쳐 있게 하는 핵력의 근원은 대체 무엇일까?
이번 실험에서 진행한 충돌 순간 함께 튕겨 날아간 양성자 타깃과 알파 입자의 궤적을 보면, 이번 충돌을 통해 만들어진 사중중성자의 질량은 순수한 중성자 네 개의 질량을 따로 합한 것보다 약 0.05% 더 무거운 것으로 측정되었다. 이러한 미세한 질량의 변화는 오직 중성자들끼리 서로 결합할 때 어떤 방식으로 결합력이 발생하는지를 파악할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중중성자는 안정적으로 오래 존재하진 못했다. 무려 4×10^-22초밖에 안 되는 찰나에 곧바로 다시 양성자와 전자로 쪼개져 사라졌다.
중성자별은 강한 중력으로 인해 높은 밀도로 중성자들이 한데 모여 있는 상태다. 중성자별 티스푼 한 숟가락의 질량만 거의 30억~40억 톤에 달한다! 이처럼 말도 안 되게 높은 밀도와 중력 덕분에, 어지간해선 곧바로 양성자와 전자로 쪼개지며 붕괴해야 하는 중성자조차 쪼개지지 못한 채 그대로 중성자 상태로 뭉쳐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실험에서 재현했듯이 극단적인 밀도와 중력 없이 중성자만으로 이루어진 반죽 덩어리가 존재할 수 있다면, 어쩌면 우주 어딘가 중성자만으로 구성된 중성자 행성, 중성자 소행성, 중성자 고양이를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빠르게 붕괴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 다중 중성자 반죽 덩어리들의 존재 가능성을 통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암흑 물질과 같은 현대 우주론의 과제에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시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에서 거시 세계의 비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스케일을 초월하는 이 놀라운 연결 고리가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은가!
“인간은 원자에 비해 너무 크고, 별에 비해 너무 작다.” -물리학자 셸든 글래쇼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2-04827-6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037594749290635W?via%3Dihub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missing-neutrons-may-lead-a-secret-life-as-dark-matter/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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