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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증명] 삼성제약은 되고 삼성출판사는 안되는 까닭

대중에게 같은 상표·상품이라는 혼동 일으키지 않아야… 등록한 대로 사용 안하면 상표 소멸도 가능

2022.07.06(Wed) 11:13:45

[비즈한국] ‘핑크퐁’의 삼성출판사와 ‘까스명수’의 삼성제약은 삼성그룹과 관련된 기업일까. 제약업계나 출판업계 종사자라면 각각 관련 없는 회사라는 것을 잘 알겠지만, 일반인이라면 헷갈릴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삼성출판사나 삼성제약이 삼성그룹의 계열사라거나 삼성그룹과 연관이 있는 회사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출판사는 먼저 등록한 삼성그룹의 상표로 인해 서적(제16류)이나 전자 서적(제9류)에 관해 상표 등록에 실패했다. 사진=더핑크퐁컴퍼니 웹사이트

 

삼성출판사는 김봉규 명예회장이 1964년에 설립한 대한민국의 출판사다. 핑크퐁, 아기상어로 유명한 더핑크퐁컴퍼니의 지분 상당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더핑크퐁컴퍼니를 운영하는 김민석 대표가 김봉규 명예회장의 손주다. 삼성그룹과는 이름만 동일하고 전혀 무관한 회사다. 한자로도 삼성그룹의 삼성은 ‘三星’이고 삼성출판사의 삼성은 ‘三省’이다.

 

삼성제약도 삼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삼성그룹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삼성제약은 1929년에 설립된 대한민국의 제약회사다. 고 이병철 회장이 삼성상회를 설립한 1938년보다 무려 9년이나 앞선다. 즉 삼성제약은 삼성그룹보다 먼저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해 의약품을 제조해왔다. 대표 상품으로 까스명수, 쓸기담, 우황청심원, 에프킬라 등이 있다. 

 

이처럼 삼성출판사와 삼성제약 모두 삼성그룹과 무관하지만, 상표권 등록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판단을 받았다. 삼성그룹의 선행 상표로 인해 삼성출판사의 상표 등록은 거절됐지만 삼성제약의 상표는 등록된 것이다.

 

삼성출판사의 서적(제16류)이나 전자 서적(제9류)에 관한 상표 출원은 모두 선행 등록된 삼성그룹의 상표로 인해 등록이 거절됐다. 삼성출판사 상표를 등록해 사용하면 삼성그룹의 삼성 상표와 오인·혼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삼성제약은 의약품(제5류) 등에 대해 상표 등록받았다. 삼성제약은 2015년 의약품 등의 상표를 특허청에 신청했다. 심사과정에서 삼성그룹 측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 탓에 무려 3년에 가까운 시간을 소요했지만, 결국 2018년 최종 등록했다. 삼성그룹은 바이오제약 제조 사업을 위한 삼성 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하면서 삼성제약의 상표등록을 적극적으로 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등록 이후에도 삼성그룹 측은 삼성제약을 상대로 ▲저명한 삼성그룹의 상호를 포함해 구상표법 제7조 제1항 제6호에 해당함 ▲선 등록한 삼성그룹의 상표와 유사해 제7조 제1항 제7호에 해당함 등을 이유로 무효심판을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무효에 대한 기각심결을 취소하고자 특허법원에 심결 취소소송까지 제기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특허법원 2020. 9. 24. 선고 2020허35 판결).

 

삼성제약은 상표 등록에 성공하고 삼성출판사는 못 한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그룹의 삼성이 저명한 상호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삼성출판사와 달리 삼성제약은 삼성그룹보다 먼저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널리 상호를 알렸기 때문이다. 삼성제약은 의약품 분야에서 100년 가까이 삼성제약 명칭을 사용하면서, 이름을 나누거나 줄이지 않고 ‘삼성제약’ 일체로 사용해왔다. 이 덕분에 일반 소비자에게 ‘삼성’이 아닌 ‘삼성제약’으로서 널리 알려졌다는 점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따라서 삼성그룹의 삼성과 삼성제약은 소비자에게 오인·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다. 

 

삼성제약은 삼성그룹의 잦은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의약품 상표를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은 삼성제약의 주력 상품인 까스명수.

 

다만 삼성제약의 상표 등록 성공에도 주의할 점은 있다. 삼성제약이 아닌 삼성만의 약칭을 사용하는 경우 부정 사용에 의한 취소 및 불사용에 의한 취소의 대상이 돼 상표 등록이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표법 제73조 제1항 제2호는 상표권자가 고의로 지정상품에 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거나, 지정상품과 유사한 상품에 등록상표 또는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요자가 상품의 품질을 오인하거나 또는 타인의 상품과 혼동하게 될 경우 상표등록의 취소 사유로 규정하면서다. 상표권자가 자신의 등록상표를 사용권 범위를 넘어 부정하게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타인의 상표의 신용이나 명성에 편승하려는 행위를 방지해 거래자와 수요자의 이익 보호는, 물론 상표를 사용하는 사람의 신용과 권익도 보호하기 위해서다.

 

상표법 제73조 제1항 제3호는 상표권자·전용 사용권자 또는 통상 사용권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등록상표를 그 지정상품에 대해 심판청구일전 계속해서 3년 이상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상표등록의 취소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선출원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규정으로, 상표를 등록한 후에도 등록상표와 동일한 범위 내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를 취소할 수 있게 해 제삼자에게 상표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상표권자가 등록상표를 사용할 때는 등록한 형상대로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부 변형해 사용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에 대법원은 “등록상표를 지정상품에 사용하는 것은 등록상표와 동일한 상표를 사용할 때를 말하고, 동일한 상표라고 함은 등록상표 자체뿐만 아니라 거래 사회 통념상 등록상표와 동일하게 볼 수 있는 형태의 상표를 포함한다. 유사상표를 사용한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삼성제약이 상표를 등록한 형태가 아닌 ‘삼성’ 또는 ‘SAMSUNG’으로 줄여서 사용한다면 상표법에 의한 부정 사용 및 불사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제약의 손을 들어준 법원은 삼성제약이 삼성제약을 일체로 사용하는 때에만 등록을 허가한 것이지, 분리해서 사용하거나 삼성 또는 SAMSUNG만으로 약칭해서 사용하는 경우의 상표에 대한 등록을 허가한 것이 아니다.

 

한편 상표 등록에 실패한 삼성출판사는 회사의 상호로서도 삼성출판사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일까? 상호를 제품이나 서비스업의 상표로 사용한다면 등록된 선행상표를 침해하게 된다. 하지만 상호를 상표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일반 상호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선행 등록 상표의 효력이 제한된다. 따라서 삼성그룹의 선행하는 삼성 상표가 존재하더라도 삼성출판사가 보통 상호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상호를 사용하는 한 침해가 성립하지 않고, 삼성출판사는 회사의 상호로 삼성출판사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공우상 특허사무소 공앤유 변리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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