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세훈 서울시장의 핵심 주택 공급 정책인 ‘모아타운’이 강북구 번동에서 첫 삽을 뜬다. 번동 일대는 노후도가 87%에 달하지만 재개발 진행이 어렵던 지역이다. 신·구축 건물이 섞여 있고 무엇보다 호수 밀도가 낮았다. 서울시는 이들 구역에 ‘모아타운’이라는 생소한 주택 공급 방식을 제안했다.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여러 개의 소규모 주택이나 필지를 모아 신축하면서 지하 주차장을 확보하는 것이 골자다.
새로운 명칭이지만 뿌리는 기존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에 뒀다. 이 때문에 한계도 뚜렷하다. 재개발의 대안 격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재개발 사업과 달리 주거이전비 등 세입자 보호책이 부재한 탓이다. 상가주택 밀집지역에서는 사업 추진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매달 얻는 임대수익을 포기하고 재개발·재건축보다 수익성이 낮을 것으로 기대되는 소규모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모아타운 1호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강북구 번동 429-114번지 일대는 노후 주택과 신축 건물이 섞여 있다. 사진=강은경 기자
#가로주택정비사업 진행하던 번동, 시범사업지 발탁
지난달 모아타운 대상지 첫 공모에 21곳이 최종 선정됐다. 자치구별로 중랑구 4곳, 도봉·마포·양천·구로·송파·성동구 각 2곳, 종로·강북·노원·서대문·강서구에서 각 1곳씩 뽑혔다. 그중 강북구 번동 429-114번지(5만 5000㎡) 일대는 가장 빨리 착공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1호 시범사업지다.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는 “현재 사업 시행 인가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다. 10월 정도에 사업시행 인가가 되면 올해 이주를 시작하고 내년에 바로 착공이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4일 번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주차공간도 없고 집들이 노후했지만 재개발은 번번이 실패한 동네”라며 “오세훈 시장이 현장에 찾아와 사업추진을 약속하기도 했다. 가로주택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주차장이 있는 대단지로 조성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번동은 좁은 도로, 고질적인 주차난, 휴게시설 부족 등으로 생활환경이 열악했지만 재개발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그동안 정비가 이뤄지지 못한 곳이다. 기존에는 소규모 주택정비사업 중 하나인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추진되다가 중랑구 면목동(9만 7000㎡) 일대와 함께 모아타운 통합심의를 통과해 시범사업지로 선정됐다. 2020년 초 이미 가로주택 사업이 확정됐고 1구역부터 5구역까지 인근 구역 모두 가로주택 추진 절차를 밟고 있는 탓에 첫 번째 사업지를 찾던 서울시 눈에 든 것으로 보인다.
모아주택 1~5구역의 ‘가로주택정비사업시행계획안’에 따르면 하나로 묶인 다섯 구역은 용적률 299~308%를 적용해 지하 2층~지상 최고 35층, 13개동 규모의 아파트 단지로 조성된다. 기존 793가구를 철거하고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통해 1240가구의 아파트와 부대·복리시설이 세워질 예정이다. 1~3구역과 4~5구역은 각각 ‘건축협정’을 맺어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함께 사용한다. 부대·복리시설은 하나의 아파트 단지처럼 공동으로 이용·관리하는 구상이다.
모아타운 대상지로 선정된 마장동 457 일대는 축산물 유통 업체가 들어선 상가들과 노후 주택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강은경 기자
#소규모주택정비사업에 근거 “적용 가능한 이주대책조항 없다”
하지만 이 같은 ‘타운’ 조성 계획에 세입자 보상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모아타운의 경우 절차적으로 소규모주택정비법에 따른 소규모주택정비사업에 해당해 적용할 수 있는 이주대책조항이 없어서다.
모아타운은 기존의 소규모주택정비 사업이 1만㎡ 미만의 작은 규모로 정비하는 만큼 난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소규모주택 관리계획’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울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원을 한다는 차별점을 빼면 ‘미니 재개발’이라는 외관과는 달리 소규모주택정비 사업과 사실상 동일한 사업이다. 이 때문에 토지수용권이 있는 일반 재개발 사업과 다르게 대부분 토지수용권이 없다. 재개발 시 조합에서 지급하는 이주촉진비 명목의 ‘이사비’나 이주정착금인 ‘주거이전비’도 적용되지 않는다.
1구역 상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A 씨는 “세 들고 있는 가게에 대해서는 아직 나온 이야기가 없다. 다들 예전에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는데 맨손으로 나가게 생겼다. 가게도 이제 그냥 접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429-114번지에 해당하는 1구역 2개동 기준 임대 물량 30가구가 포함됐지만 기존 세입자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자신의 주택에서 거주하는 주민이기도 한 A 씨는 그래도 조합원 신분이라 진행 내용을 공유하고 있지만 세를 얻어 살고 있는 주민들의 답답함은 더욱 크다. 주민 B 씨는 “전세로 살고 있는데 어떻게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지 모른다.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만 듣고 대충 정비 사업이 진행된다는 것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모아타운 대상지 곳곳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마장동에서 거주 중인 세입자 C 씨는 “일을 다니니까 내가 전달을 못 받은 것인지 주변에 알아봤지만 어떤 안내도 없는 게 맞았다. 갑자기 아무 조건 없이 나가라고 한다면 어디로 가겠나 싶은 생각에 막막하다”라고 하소연했다.
마장동 457(6만 5800㎡) 일대에서는 수익성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마장동축산시장 서문 건너편 골목에 위치한 이 구역은 축산업 유통이 활발한 지역이다. 상가 1층에 세를 들어 영업하고 있는 상인들의 반대에 더해, 고정적인 월세 수입을 포기하고 얻는 게 많지 않다고 판단한 소유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곳은 지난해 4월 국토교통부 선도사업 1차 소규모주택정비관리계획 수립 후보지로 지정됐지만 진행이 더뎌 성동구청이 서울시에 공모 신청을 한 구역이다.
서울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는 시행자가 세입자에게 손실보상을 할 경우 해당 비용만큼 용적률을 완화해주는 내용을 담은 법령 개정안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상태다.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는 “재개발처럼 강제 수용을 통해 소유권을 확보하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세입자 손실 보장 기준을 적용할 수가 없다. 실제로 이주를 시작하면 세입자 보상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미흡한 게 사실이다. 세입자 손실 보상으로 발생하는 조합의 손해를 인센티브로 보전해주는 내용을 국토부에 개정 요청한 상태”라며 “현재 계획 수립 단계부터 세입자 대책 등을 고려해 계획을 수립하라는 관리 지침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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