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매일 성장하는 우리의 뱃살처럼 블랙홀도 성장한다. 특히 은하 중심에 살고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들은 꾸준히 사방에서 유입되는 물질을 집어삼키며 자신을 불려나간다. 그런데 최근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폭풍 성장하는 블랙홀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과연 천문학자들은 블랙홀의 성장속도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엄청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는 블랙홀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천체 퀘이사가 왜 중요할까?
천문학자들은 남쪽 밤하늘을 바라보며 평범한 쌍성을 훑어보는 서베이 관측(SkyMapper Southern Sky Survey)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 다른 별들과 너무나 다른 이상한 천체 SMSS J114447.77-430859.3을 포착했다. 겉보기엔 분명 일반적인 별처럼 작은 점광원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파장이 짧고 푸른, 에너지가 강한 자외선과 엑스선 영역에서 밝게 빛나는 별이었다. 우리 은하에 살고 있는 일반적인 별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천문학자들은 남아프리카 천문대에 있는 1.9m 망원경과 사이딩 스프링 천문대에 있는 2.3m 호주 국립대학교 망원경을 동원해 수상한 천체에서 날아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관측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원소는 특정한 파장에서 빛을 방출한다. 천문학자들은 이 수상한 천체의 스펙트럼에서 수소, 마그네슘 등 여러 화학 성분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원소들의 방출선이 너무 지나치게 긴 파장으로 치우쳐 있었다. 이것은 이 천체가 굉장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주 먼 거리에서 빛이 날아오는 동안 우주의 팽창과 함께 빛의 파장 자체가 길게 늘어나는 적색편이를 겪으면서, 각 원소에서 방출된 빛의 파장 역시 함께 같은 비율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활용하면, 이 천체의 빛이 얼마나 긴 적색편이를 겪은 건지, 얼마나 먼 거리에 떨어진 천체인지를 알 수 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 천체는 지구에서 무려 70억 광년 거리나 떨어져 있었다! 지구의 하늘에서 보이는 이 천체의 겉보기 밝기에 말도 안 되게 먼 거리를 보정해주면, 이 천체가 실제로는 얼마나 밝은지 그 절대 밝기를 알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천체는 태양보다 100조 배나 더 밝게 빛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 천체가 우리 은하 안에 있는 평범한 별이 아니라 훨씬 먼 우주에서 아주 막대한 에너지를 토해내는 은하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 바로 퀘이사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대 70억 광년 정도의 비슷한 거리에서 발견된 퀘이사 중 가장 밝다.
그렇다면 이렇게나 밝은 퀘이사가 왜 진작 발견되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퀘이사가 보이는 방향이 우리 은하 원반에서 겨우 18도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두꺼운 우리 은하 속 수많은 별과 먼지 구름으로 인해 우리 은하 원반 너머 먼 우주의 시야가 가려진다. 그래서 밤하늘에서 은하수 주변 위아래로는 우주의 지도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관측 기술이 더 좋아지면서 까다로운 영역의 우주도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우주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그간 미처 보지 못했던 역대급 퀘이사가 우연히 포착된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거대 블랙홀의 질량도 잴 수 있다. 퀘이사 중심 거대한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붙잡힌 채 주변 물질이 아주 빠른 속도로 맴돌고 있다. 따라서 블랙홀에 붙잡혀 돌고 있는 물질이 얼마나 빠르게 돌고 있는지, 그 회전 속도만 재면 중심 괴물의 질량도 유추할 수 있다. 이때도 특정한 파장의 빛만 방출하는 원소들의 스펙트럼 방출선이 다시 한번 활용된다.
블랙홀 주변 물질이 빠르게 맴돌며 지구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이동할 때, 그 물질에서 날아오는 빛의 파장은 좀 더 긴 쪽으로 치우친다. 반면 블랙홀 주변 물질이 반 바퀴를 돌아 다시 지구로 다가오는 쪽으로 이동하게 되면, 이번엔 그 물질에서 날아오는 빛이 짧은 파장 쪽으로 치우친다. 시선 방향에 대해 멀어질 때는 파장이 길어지고, 가까이 다가올 때는 파장이 짧아지는 도플러 현상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 원소가 방출하는 원래의 파장보다 살짝 길거나 짧게 변한 파장의 빛도 함께 보게 된다. 그 결과, 지구에서 관측하는 각 원소의 방출선은 딱 특정한 파장에만 얇게 삐져나온 바늘 같은 모습이 아니라, 그보다 살짝 짧거나 긴 파장 범위에 걸쳐 펑퍼짐하게 퍼진 종 모양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효과를 스펙트럼 방출선의 폭이 더 넓어진다는 뜻에서 ‘선폭증가(Line broadening)’라고 부른다.
블랙홀이 더 무거워서, 주변 물질도 더 빠르게 맴돌면 그만큼 앞뒤로 벌어지는 도플러 효과도 더 커진다. 그 결과 각 원소 스펙트럼 방출선의 선폭도 더 넓어진다. 천문학자들은 퀘이사의 스펙트럼 곳곳에서 포착된 각 원소의 방출선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선폭 증가의 정도를 통해 블랙홀 주변을 맴도는 물질의 회전 속도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빠른 속도로 맴도는 물질을 붙잡고 있는 블랙홀 자체의 중력을 계산할 수 있다! 이렇게 추정된 퀘이사 중심 블랙홀의 질량은 무려 태양 질량의 26억 배 수준이다! 최근 그 실제 모습을 관측하는 데 성공한 우리 은하 중심의 궁수자리 A* 블랙홀보다도 무려 600배나 더 무겁다.
퀘이사의 밝기는 중심의 블랙홀이 얼마나 빠르게 주변 물질을 집어삼키며 폭풍 먹방을 찍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앞서 추정한 지나치게 밝은 퀘이사의 밝기를 보면, 그 중심의 블랙홀은 적어도 매년 태양 질량의 35배 이상이 되는 물질을 계속 집어삼키며 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게 얼마나 빠른 속도냐면, 대략 1초마다 지구 하나를 계속 집어삼키는 것이다. 정말 역대급 먹방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 엄청난 성장 속도는 거대한 블랙홀이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최대 허용치를 크게 벗어나는 값이다. 블랙홀은 강한 중력으로 주변 물질을 끌어당긴다. 그런데 블랙홀 주변에 빠른 속도로 물질이 맴돌고 끌려가면서 물질이 뜨겁게 달궈지고 강한 자외선과 엑스선 에너지를 바깥으로 방출하기 시작한다. 만약 이 방출되는 에너지가 중력을 압도할 만큼 너무 지나치게 밝고 강해지면, 블랙홀은 안정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곧바로 바깥으로 모든 에너지를 토해내며 외곽의 물질은 사방으로 모두 날아가버린다. 이렇게 자체 중력과 딱 균형을 이루고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최대 밝기, 최대 에너지의 허용치를 에딩턴 한계라고 한다. 따라서 블랙홀이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각 질량에 따라 최대로 가질 수 있는 성장 속도의 상한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확인한 이 퀘이사의 밝기는 이미 에딩턴 한계를 초월했다. 에딩턴 한계의 1.4배나 되는 지나치게 강한 밝기로 에너지를 토해내고 있다. 블랙홀 자체의 중력만으로도 버틸 수 없는 너무 지나치게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조금 잔인하지만 이해를 위해 비유하자면, 뼈가 너무 빠르게 성장해서 피부를 뚫고 나올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퀘이사의 목숨을 건 폭풍 성장은 두 가지 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이 초거대 블랙홀이 다른 평범한 블랙홀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자전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질량에 비해 알 수 없는 이유로 훨씬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블랙홀이라면 지나치게 밝은 밝기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다른 가능성은, 이 퀘이사가 비교적 최근에 두 개의 작은 퀘이사가 병합하며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충돌 직후 두 퀘이사가 각자 품고 있던 막대한 에너지가 순식간에 한꺼번에 방출되면서 질량에 비해 지나치게 밝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이후로 천문학자들은 심심치 않게 두 블랙홀이 충돌하고 합체하면서 퍼져나오는 중력파를 검출해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포착된 모든 중력파 시그널은 기껏해야 태양 질량의 10-20배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블랙홀끼리의 충돌이 만든 결과다. 그런데 태양 질량의 수십억 배에 달하는 거대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끼리의 충돌이라니, 과연 그 순간 퍼져나온 시공간의 떨림은 얼마나 강렬했을까!
퀘이사는 우주의 진화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다. 이 밝은 퀘이사들이 먼 우주에서만 관측되기 때문이다. 우리 은하 주변 가까운 우주로 올수록 퀘이사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만약 반대로, 퀘이사가 더 먼 우주로 갈수록 잘 보이지 않는다면 단순히 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먼 우주로 갈수록 퀘이사가 더 빈번하게 발견된다. 이건 실제로 먼 우주에는 많이 존재했던 퀘이사가 현재 우주로 올수록 급격하게 사라져왔다는 증거가 된다. 빅뱅 직후 머나먼 과거에는 은하들의 씨앗의 급격한 성장과 빈번한 충돌로 인해 지나치게 밝은 퀘이사가 많았다. 하지만 이후 퀘이사 중심 거대 블랙홀의 활동성이 잦아들고 우주가 더 거대하게 팽창하면서 퀘이사의 빈도가 크게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우주가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에 따라 우주의 모습도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는 우주 진화의 명확한 증거다.
흥미롭게도 이번 연구진은 연이어 진행한 관측을 통해서 이번에 발표한 퀘이사뿐 아니라 80여 개의 새로운 퀘이사 후보들도 포착했다. 앞으로도 추가 관측을 통해 더 많은 다양한 퀘이사들을 새로 포착해나갈 예정이다. 물론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도 이미 이런 다양한 퀘이사들을 관측할 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머나먼 우주에서도 지나치게 밝게 빛나며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는 퀘이사들은 또 어떤 새로운 비밀을 들려주게 될까? 그리고 그 많던 퀘이사들은 대체 어떻게 사라지게 된 걸까? 앞으로 연이어 더 발견될 퀘이사들에게 그 다음 대답을 맡겨야 할 것 같다.
참고
https://arxiv.org/pdf/2206.04204.pdf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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