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건설 자재 가격 상승으로 민간 발주처와 공사비 증액 갈등을 벌이는 건설사가 늘어나는 가운데, 서울 강남권 정비사업단지에서 공사비 인상 기준을 바꾸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민간사업 발주처는 도급 계약을 체결한 이후 물가가 크게 오르면 착공 전에 한해 공사비를 인상해주는데, 지금까지는 통상 소비자물가지수가 기준이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일원동 개포한신아파트 재건축조합은 11일 조합원 총회를 열고 지에스건설을 사업 시공자로 선정했다. 일원개포한신아파트 재건축사업은 기존 아파트 4개동(364세대)을 허물고 지하 3층~지상 35층 규모 아파트 3개동(498세대)과 부대복리시설을 공급하는 정비사업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대청역 남서쪽 2만 876㎡(6312평)가 대상이다.
이 단지는 2017년 7월 정비계획을 마련해 이듬해 11월 조합을 꾸렸다. 지난해 8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시공사 선정에 착수했지만 같은 해 11월과 올해 2월 입찰에서 지에스건설이 단독 응찰하면서 시공사 선정 입찰은 유찰됐다.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은 경쟁 입찰을 원칙으로 하지만 입찰이 유찰을 거듭하면 조합은 건설사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번 시공자 선정에서 눈에 띄는 점은 공사비 인상 기준이다. 지에스건설은 이번 사업에서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 기준을 소비자물가지수와 건설공사비지수의 평균값으로 제안했다. 당초 조합 측은 건설사에 두 지수 중 낮은 것을 공사비 인상 기준으로 적용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원개포한신아파트 재건축조합 측은 “물가가 지금처럼 크게 오를 경우를 대비해 지에스건설에 물가지수 평균값을 최대 5% 이내로 하고 도급계약 이후 착공까지 최대 24개월을 물가상승률에 반영하자고 제안했는데, 지에스건설에서 최근 건설원가 상승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내세워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조합원에게 안내했다.
민간 건축공사에서 발주처는 그간 도급계약을 체결한 이후 물가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착공 전에 한해 공사비를 인상해줬다. 공사비 인상은 통상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일반 가정이 살아가면서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건설공사비지수는 자재, 노무, 장비 등 건설공사 직접공사비의 가격 변동을 생산자물가지수를 기반으로 측정한 지수다. 각각 통계청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매월 조사해 공표하고 있다.
문제는 소비자물가지수와 건설공사비지수 인상률이 최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6.85포인트로 전년 동월 대비 4.8% 오른 반면, 건설공사비지수는 145.17포인트로 같은 기간 12.83%나 상승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소비자물가보다 생산자물가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반면 지난해 4월 소비자물가지수와 건설공사비지수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각각 2.5%, 1.59% 수준으로 비슷한 오름세를 보였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적인 변수가 겹치면서 지난해부터 석유 등 건설 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다. 건설공사비지수가 10% 이상 상승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며 “통상 공공 공사에서는 투입 자재별로 물가 상승분을 따지므로 건설공사비지수나 소비자물가지수 자체를 반영하는 사례는 사실상 없지만, 민간영역에서는 자재별 물가 상승분을 일일이 따지기 어렵기 때문에 지수를 선택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간 민간영역에서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을 따질 때 통상적인 인플레이션 수준을 반영하고자 소비자물가지수를 활용했다. 하지만 최근 건설 자재 가격이 일반 소비재 가격보다 크게 오르면서 이를 현실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가 인상 기준으로 건설공사비지수를 도입한 것은 원가 부담으로 공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전례가 생겼으니 다른 민간사업에서도 이런 시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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