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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세계 어디서든 유럽 창업' 에스토니아의 혁신 '전자시민권'

소련에서 독립해 블록체인 강국으로 성장…전자정부, 전자세금, 전자투표, 전자시민권까지

2022.06.14(Tue) 09:36:31

[비즈한국] 지난 6월 9일 베를린의 팩토리 베를린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e-Residency)에 관한 토론회였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독일 내 프리랜서와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창업지로 에스토니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행사였다.  

 

팩토리 베를린의 대표 세바스티안 브렘(Sebastian Brehm)이 행사를 이끌고,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으로 창업한 창업가들이 패널로 참여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 밖에 에스토니아 정부의 전자시민권 담당자들이 직접 참여해 다양한 질의와 응답이 오갔다.

 

지난 6월 9일 팩토리 베를린에서 열린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 설명회. 사진=factoryberlin Linkedin

 

#구소련국가에서 블록체인 강국이 된 에스토니아의 특별한 발상

 

에스토니아는 대한민국의 약 절반 크기, 인구는 122만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다. 핀란드, 러시아, 스웨덴, 라트비아와 접경해 있고, 한국과는 직항도 없어 다소 먼 느낌이다. 에스토니아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해 동구권의 작고 가난한 나라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독립 이후 국가 차원에서 정보기술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정부에서 직접 전자 정부, 사이버 안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디지털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1997년 전자 정부(e-Governance)를 도입했고, 2000년에는 전자 세금(e-Tax) 시스템, 2001년에 전자 정부 인프라인 엑스로드(X-road)를 도입하면서 작은 나라의 큰 도약을 꿈꾼다. 

 

이후 2007년 에스토니아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다시피 한 러시아 해커들의 사이버 공격은 에스토니아에 특별한 계기를 마련해줬다. 2005년 전자 투표를 시작해 이미 전 국민의 60%가 인터넷 금융을 이용하던 당시 에스토니아에 이 사태는 ‘전쟁’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대통령궁을 비롯한 의회, 정부, 은행, 언론사 등 주요 기관의 홈페이지와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3주간 사회 시스템이 멈추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에스토니아는 더 획기적인 보안 기술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에스토니아의 민간 사이버 보안 기업 가드 타임은 KSI(Keyless Signature Infrastructure) 기술을 개발했다. KSI기술은 데이터를 일정한 값으로 매핑한 해시 테이터를 이용해 위변조를 방지하고, 이 해시 데이터를 여러 서버에 분산 저장함으로써 탈중앙화를 이루는 기술이다.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비트코인에 적용된 블록체인과 유사한 기술로 비트코인이 등장하기 이미 1년 전에 에스토니아에서 자체 개발한 탈중앙화 기술이다. 

 

이후 에스토니아 정부는 데이터 보호를 위해 KSI 보안 기술을 적용하고, 전체 행정민원의 99%를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정부 시스템으로 처리한다.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별한 산업기반이 없고, 인구도 적으면서 영토가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경제적인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이를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 전자시민권의 출발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사업을 하는 데도 굳이 국경에 갇힐 필요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진=e-estonia.com

 

세금을 내는 개인과 법인을 많이 유치하는 방법을 찾고, 이들을 굳이 현실 세계(!)로 불러들일 필요 없이, 전자 정부가 구축해 놓은 디지털 세상으로 초대해 세금을 내게 한 것이다. 여기에는 에스토니아가 EU에 속하고, 유로를 사용하지만 법인세를 유럽에서 가장 적게 부과하는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이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유럽에서 스타트업을 하고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굳이 유럽에 와 비싼 사무실을 임대하지 않아도 EU에서 사업체를 설립하고 유로를 사용하며 유럽에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후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온라인에서 몇 번의 클릭을 통해 유럽에 스타트업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전자시민권을 통해 설립된 기업은 1만 6000개 이상으로, 수도 탈린에 설립된 스타트업만 1100개 이상, 그 중 기업 가치가 1조 원 이상인 기업은 10개가 되었다. 가난한 옛 동구권 국가의 반전이다. 

 

#독일 스타트업도 에스토니아에서 창업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을 발급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약 9만 2000명이다. 그 중 독일 국적은 5300명이다. 같은 EU국가임에도 왜 굳이 에스토니아에 법인을 설립할까. 세금 때문이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국가 중 하나다. 법인세뿐만 아니라 영업세, 통일연대 부가세까지 법인이 약 39%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에 비해 에스토니아는 약 20%의 법인세를 내면 되고, 이익금을 배당하지 않고 재투자할 경우 법인세율이 0%다. 에스토니아는 전자시민권 제도를 통해 2020년에만 1750만 유로의 세수를 기록했다. 

 

팩토리 베를린의 설명회에는 스타트업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 OÜ)의 설립자이자 CTO인 마틴 뇌르가르트 그레거센(Martin Nørgaard Gregersen)이 참여했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관리형 IT 솔루션 스타트업이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며 베를린 시청, 덴마크 보건부, 독일 종합병원 비반테스의 치료센터 등 다양한 고객사의 IT 플랫폼을 관리한다. 

 

이들은 독일, 덴마크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지만, 법인은 에스토니아 탈린에 있고, 전자시민권을 받아 회사를 설립했다. 그레거센은 “온라인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에스토니아의 전자 시민권은 앞으로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며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의 장점을 설파했다. 

 

대화형 컴퓨팅 플랫폼 클라우드리스 원(Cloudless One)을 창업한 얀 요하네스(Jan Johannes)는 “경제와 사회에서 진행 중인 세기의 도전 과제 중 하나를 전자시민권과 같은 정책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고 말했다. 

 

베를린에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온 얀 요하네스(왼쪽)와 마틴 뇌르가르트 그레거센. 사진=얀 요하네스 제공

 

전자시민권과 관련해서는 한국도 에스토니아와 관계가 각별하다. 에스토니아 전자 시민권을 받은 한국인만 벌써 2000명에 달하며 이 중 10~15%가 에스토니아에 법인을 설립했다. 

 

에스토니아가 전자시민권 발급을 시작했을 때, 대부분 독일, 러시아, 핀란드 등 유럽 주변 국가의 창업자들이 세금에 대한 고민으로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을 이용해 창업했다. 반면 한국은 매우 먼 나라임에도 유럽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 모든 신기술을 빠르게 경험하고 싶은 얼리 어댑터로서 비유럽국임에도 전자시민권자가 많다. 

 

이러한 관심 덕분에 디지털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과 에스토니아의 관계는 강화되어 왔다. 한국과 에스토니아는 작년에 수교 30주년을 맞이했다. 지금까지 핀란드 대사관에서 에스토니아의 업무를 겸임했지만, 2020년에 코로나 팬데믹 상황임에도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관이 문을 열었다.

 

소련으로부터 독립해 민주화를 거쳐 기술 기반의 디지털 국가로 가기까지 한국과 에스토니아는 닮은 구석이 많다. 에스토니아의 업무 속도와 IT기술도 그렇다. 유럽에서 스타트업을 꿈꾸는 한국인이 있다면, 에스토니아는 한 번쯤 들여다볼 만한 곳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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