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채권단 관리를 졸업하고 이름을 바꿔 새 출발한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가 특수목적용 기계제조 업체인 자회사 두산메카텍을 매각한다. 인수자는 해군·조선 분야 공기압축기 전문 회사인 범한산업이다. 그런데 매각이 확정된 이후에도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나오지 않아 임직원은 물론 고객사까지 술렁이고 있다. 두산메카텍 금속노조와 비상대책위원회는 “잦은 합병과 분리 과정에서 계열사 지원에 이용돼 사람만 남았다”며 일방적인 매각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 3일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메카텍 지분 100%를 오는 7월 29일 1050억 원에 범한산업 컨소시엄에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범한산업과 사모펀드 메티스톤에퀴티파트너스로 구성된 범한산업 컨소시엄도 두산메카텍 주식 552만 1414주를 1050억 원에 인수한다고 지난 7일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은 이번 매각이 친환경 에너지 중심 사업구조 개편 가속화와 재무구조 건전성 제고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두산메카텍은 정유·가스·석유화학 플랜트에 탑재되는 산업용 보일러를 제조하는 기업이다. 2020년 2월 (주)두산이 현물출자 방식으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에 지분 100%를 넘겨 두산중공업의 완전자회사가 됐다.
#두산 간판 떼자 ‘불확실성’ 우려 커져…고객사 문의 지속
임직원들은 갑작스러운 매각 소식에 즉각 반발했다. 2001년 두산그룹 편입 당시부터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 (주)두산을 거치며 재무구조가 악화된 계열사 지원에 활용해놓고 극비리에 매각을 진행한 것에 대한 항의다.
금속노조 조합원과 사무직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직원들에게 공유된 내용이 전혀 없었다. 매각이 발표된 이후에도 사측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임직원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인력 구성, 임금과 복지가 보장이 되는 것인지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않았고 사업 진행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어 내부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고객사 다수가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뿐만 아니라 신규 발주와 관련한 불안감을 표현한다고 주장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고객사 대부분이 십수 년간 같이 일해왔다. 갑작스러운 처분 결정에 20~30개 주요 고객사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발주한 물건이 정상적으로 제작될 수 있을지, 신규 발주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며 “정상 진행이 어렵다면 당장이라도 발주를 취소하고 다른 제작사로 계약을 넘기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경영진이나 인수자 범한을 만나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한지 확인해보겠다는 연락도 계속 온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는 인수자 범한산업의 역량에 대한 우려가 떠오른다. 범한산업이 외형상 두산메카텍보다 규모가 작은 데다, 화공기기 제조 사업 경험이 없어서다.
해군·선박·발전플랜트 및 항공우주 초고압 공기압축기 생산을 주력하는 범한산업은 두산메카텍 인수로 관련 분야에 처음 진출한다. 1990년 설립된 범한산업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660억 원, 영업이익 87억 원을 기록했다. 두산메카텍은 지난해 매출 2941억 원, 영업이익 111억 원을 거뒀다. 2020년에는 매출 3175억 원, 영업이익 160억 원의 실적을 냈다.
범한산업은 두산메카텍의 화학공업기기·수소액화기술을 기존 사업 분야에 접목한다는 계획이다. 두산메카텍의 기존 사업에 투자하고 인력 감축이나 복지 축소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룹 내 합병·분리 반복…제조사 근간인 공장·땅 희생하고 “사람만 남았다”
임직원들의 강한 반발은 두산메카텍이 두산그룹 계열사로 지낸 20년간 겪은 일과 무관치 않다.
두산메카텍은 두산중공업이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다. 두산그룹은 2010년 11월 유동성 위기를 겪던 두산건설에 두산메카텍의 흡수합병을 단행한다. 당시 두산메카텍은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조건이었다. 2010년 상반기 기준 두산건설의 차입금은 1조 3000억 원, 부채 비율은 299%인 데 비해 두산메카텍의 차입금은 4100억 원, 부채 비율은 194%였다. 합병 비율은 두산건설과 두산메카텍이 각각 1 대 4.13으로 두산메카텍 1주당 두산건설 4.13주를 배정하는 방식이었다. 양 사의 결합 이후 두산건설의 부채비율은 220%까지 떨어졌다.
이후에도 두산메카텍은 그룹 계열사를 오가며 현금유동성을 개선하는 카드로 적극 활용됐다. 두산건설은 2016년 6월 (주)두산의 특수목적법인(SPC)에 두산메카텍 지분 100%를 매각해 1172억 원의 실질적인 현금유입을 이뤄냈다. 2년 뒤인 2018년 3월 (주)두산은 이 SPC를 완전자회사로 품는다. 최종적으로 2019년 말 두산중공업은 (주)두산으로부터 두산메카텍 지분 100%를 현물출자 받아 자본을 확충했다. 이 역시 가장 시급한 현안이던 두산중공업의 재무개선을 위한 유상증자였다.
이 과정에서 두산메카텍은 두산인프라코어 주식 2500억 원, 두산그룹 연수원 지분 450억 원, 중앙대학교 인수 기부금 350억 등을 현금 지원했다. 두산건설 자회사 시절, 창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창원1공장을 매각했고, 창원2공장은 두산건설의 채무 담보로 여러 차례 활용됐다.
금속노조 두산메카텍지회 관계자는 “제작사가 공장과 부지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은 큰 부담이다. 결과적으로는 1·2공장의 소유권이 다 넘어갔다. 남은 건 기계와 사람뿐이다. 그룹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영식 범한산업 회장은 “두산메카텍의 기존 사업이 안정적 기반에서 지속 가능하도록 현재 임차 형태로 활용 중인 1·2공장 부지를 재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두산메카텍 임직원들은 매각에 반대하는 단체 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14일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두산타워 앞 집회에 이어 오는 16일에는 창원시청에서 전 사원이 참여하는 반대 시위가 예정돼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9일 두산메카텍 경영진과 화상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회의에서는 매각 배경 등이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두산메카텍 임직원들의 반발에 대한 사측 입장과 앞으로의 대응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미 공시된 바와 같이 매각이 결정된 사안이며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만 답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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