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라북도 부안을 대표하는 내소사에서 ‘전국 제일’을 찾아보긴 힘들다. 절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은 월정사보다 짧고,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과 동종도 다른 유명한 절의 그것들에 비해 사뭇 소박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들이 모두 어우러져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1등이 아니면 기억해주지 않는 세상을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 내소사를 찾는 이유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가 반기는 절
아직 일주문에 이르기도 전에 당줄을 허리에 두른 큼직한 느티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을 사람들이 ‘할아버지 당산나무’라고 부르며 신령스럽게 여기는 나무란다. 이와 짝을 이루는 ‘할머지 당산나무’는 내소사 경내에 있다. 두 나무 모두 수령 1000년을 훌쩍 넘은 암수 느티나무로, 해마다 1월 14일이 되면 마을 사람들과 스님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할아버지 당산나무에 인사하고 들어서는 일주문에는 ‘능가산내소사(楞伽山 來蘇寺)’라는 현판이 보인다. 능가산은 내소사를 품고 있는 변산의 다른 이름이다. 능가산은 일찍이 석가모니가 ‘능가경’의 말씀을 설하였다는 인도의 산이니, 바위로 된 골짜기가 깊고 신령스런 변산에 어울린다. 변산 곳곳에는 원효, 의상, 진표 등 고승들이 머물던 자취가 남아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시원한 전나무 숲길이다. 월정사처럼 하늘을 가릴 정도는 아니지만, 쭉쭉 뻗은 전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낸다. 수백 미터쯤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에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이 있고, 그 뒤로 할머니 당산나무가 자리 잡았다.
나뭇잎 풍성한 가지를 맵시 있게 다듬은 모양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역시 새끼로 꼰 당줄을 두른 허리가 할아버지 당산나무보다 사뭇 두꺼운 것이 나이가 더 많아 보인다. 나무를 둥글게 감싸는 울타리 줄마다 빨강, 파랑, 노랑 원색의 소원판이 달려 있다. 잠시 짬을 내 건강이며 합격, 자녀의 결혼 같은 이웃의 소원들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여유가 된다면 돈을 내고 소원판을 사서 자신의 소원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 할머니 당산나무의 넉넉한 품을 보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실 듯하다.
#내소사에서 보물 찾기
할머니 당산나무 옆 작은 전각에는 아담한 동종을 모셔 놓았다. 고려 고종 9년(1222)에 만들었다는 내소사 동종은 보물 제277호로 지정되었다. 신라의 범종처럼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담한 크기에 연꽃 문양과 삼존불상이 충분히 아름답다. 가운데 본존불은 연꽃 위에 앉은 모습이며 좌우의 협시불은 서 있는 모습이다. 종에 새겨진 장식과 문양이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려 후기의 걸작으로 손꼽힌단다.
내소사에 있는 또 다른 걸작은 일 년에 한 번, 내소사 괘불재가 있을 때만 친견할 수 있는 영산회 괘불탱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 놓는 그림으로 괘불화, 괘불탱이라고도 부른다. 내소사 영산회 괘불탱은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폭 8.17m에 높이가 10.50m에 이른다. 중앙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등 6명의 보살들이 둘러섰다. 조선 숙종 26년(1700)에 제작된 이 괘불은 콧속의 털까지 묘사하는 정밀함과 화려한 채색으로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각 인물의 명칭을 적어 놓아 불화 연구에도 귀중한 작품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내소사의 또 다른 보물은 일 년에 한 번이 아니라 일 년 내내 볼 수 있다. 내소사의 으뜸 건물인 대웅보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불전은 조선 인조 11년(1633)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날아오를 듯 날렵한 처마선이 인상적인데, 지붕을 받치고 있는 다포의 빛바랜 단청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대웅보전 내부의 연꽃문양 우물천정도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다.
<여행정보>
내소사
△주소: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
△문의: 063-583-3035
△이용시간: 일출~일몰,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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