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5월 18일 베를린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도시 에너지와 이동성 포럼 2022(Urban Energy and Mobility Forum 2022)이 유럽 최대 모빌리티 허브인 드라이버리(The Drivery)에서 열린 것이다. 이 행사가 수많은 스타트업 관련 이벤트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도시의 에너지와 이동성에 관한 고민을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시작해 뉴욕, 런던, 싱가포르, 베이징과 연결해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 여러 도시와 호흡하며 상당히 역동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원래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참여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바로 프로젝트에서 제외된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베를린과 뉴욕, 런던, 싱가포르, 베이징을 연결
도시 에너지와 이동성 포럼은 베를린-브란덴부르크주 에너지 네트워크 그룹(Berlin Brandenburg Energy Network e.V.)에서 시작했고, 베를린 상원 경제, 에너지 및 기업부와 유럽 지역개발기금(ERDF)의 자금 지원으로 꾸려졌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주 에너지 네트워크 그룹은 베를린-브란덴부르크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네트워크이자 관련 분야의 이해관계자 그룹이다. 산업계, 정치계, 학계를 아우르는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며,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도시 에너지 전환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베를린에서 시작된 화두가 단발성 지역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전 세계 여러 도시들과 연합해 활동을 기획하는 것이 특징이다. 도시의 에너지와 모빌리티를 고민하는 베를린의 기업, 특히 스타트업을 뉴욕, 런던, 싱가포르, 베이징시 정부 및 정치가, 투자자, 사업가와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도시 에너지와 이동성 포럼은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EU 지원금을 통해 운영된다. 스타트업이 현지 도시 전문가와 협업할 수 있도록 웨비나와 워크숍을 기획하고, 도시별로 고민하는 주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사절단 활동, 주요 파트너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매치메이킹 등 다양한 교류 활동을 지원한다.
분야별로는 재생에너지, 이동성과 운송, 에너지 저장과 녹색수소, 스마트시티, 에너지와 자원 소비를 줄이고 오염물질 발생을 줄이는 환경기술 클린테크(cleantech), 도시의 주요 화두인 부동산과 기술이 합쳐진 프롭테크(proptech) 분야를 아우른다.
#태양광 패널, 클린 에너지, 웹 3.0 등 관련 스타트업 피칭
포럼은 모빌리티 허브인 드라이버리 공간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베를린시 스타트업 부문을 이끌고 있는 노베르트 헤어만, 그린테크 페스티벌의 대일 리커어트, 베를린의 에너지 혁신 캠퍼스 오이레프 캠퍼스에서 전기 모빌리티 R&D 부문을 이끄는 모빌리티투그리드 연구 그룹 수장 니나 베버 등 공공 분야 참여자들의 키노트로 이어졌다.
이후 VC(벤처캐피털)와 액셀러레이터 부문에서 베를린 이노베이션 에이전시(BIA, Berlin Innovation Agency), 리싱크 모빌리티(rethink Mobility), 퓨처 에너지 벤처스(Future Energy Ventures) 등이 발표자로 나와 에너지와 모빌리티 부문 투자 계획을 밝혔다.
행사의 꽃은 무엇보다도 베를린 에너지 및 모빌리티 관련 스타트업의 피칭이었다.
베를린의 에너지 분야 스타트업 선크래프터(SunCrafter)의 CEO 리자 벤치히가 피칭의 첫 포문을 열었다. 선크래프터는 설치와 이동이 간단한 태양광 패널을 개발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전기를 공급하는 솔루션을 제안했다. 특히 200유로(27만 원)가량의 패널 한 장을 설치하면 캠핑장, 건설현장, 전기 공급이 어려운 오지 등 다양한 장소에 필요한 만큼 전기를 공급하는 기술을 개발해 이지 패널(Easy Pannel)이라는 별칭을 붙여 제공하고 있다. 벤치히는 “태양광 패널을 공급하는 회사라는 이유로 스타트업이 아니라 대기업 수준의 규제를 받는다는 점이 최근 직면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품의 종류나 분야가 아니라 제품이 가진 혁신성에 주목해서 스타트업이 규제에서 더욱 자유롭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표했다.
베를린의 모빌리티 스타트업 라이더지(RiDERgy)의 창업자이자 최고 데이터 과학자(Chief Data Scientist) 아네시 모한은 라이더지가 화물트럭, 택배 차량, 셰어링카 등 다수의 전기차를 소유한 회사들을 타깃으로 많은 차량 함대(Fleet)를 효율적으로 충전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차량별로 충전기 형태와 충전이 필요한 시간대와 공간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최적의 맵을 제안해준다는 것이다.
이어 서비스로서의 배터리(Battery-as-a-Service)를 들고 나온 베를린의 모빌리티·에너지 스타트업 클린 에너지 글로벌(Clean Energy Global)의 발표가 이어졌다. 클린 에너지 글로벌은 에너지 전환과 전기 기반 모빌리티의 성공을 위해 에너지 저장을 위한 솔루션을 제안한다. 특히 B2B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기업 고객이 고도화된 방식으로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에서 스마트 에너지 저장 공간을 통합하는 배터리-전기 에너지 저장 장치를 개발했다.
베를린의 AI 스타트업 노타에서는 글로벌 세일즈 부문을 이끄는 안드레아스 세르단이 나와 AI 모델 자동 경량화 플랫폼인 넷츠프레소(NetsPresso)를 소개했다. 세르단은 “AI 모델 경량화 솔루션을 활용하면 모델 정확도는 유지하면서 압축률을 최대한 높여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면서 경량화 AI 모델을 활용한 도시 내 지능형 교통 시스템(ITS),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DMS) 등의 활용사례를 함께 소개했다. 그는 “도시의 미래 이동성과 에너지를 고민할 때 AI 모델 경량화는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라며 원천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IoT(사물인터넷)를 위한 웹 3.0을 꿈꾸는 스택스(staex)의 발표가 이어졌다. 스택스는 IT 시스템이 각기 다른 응용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다른 환경에서 구동되면서 생기는 비효율을 개선하는 데 도전장을 내밀었다. 각기 다른 오퍼레이션 시스템을 통합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클라우드, 온프레미스 등 장치에 상관없이 IT 인프라의 모든 조합을 지원, IoT 어플리케이션을 쉽게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스택스의 소프트웨어는 스마트 시티와 스마트 유틸리티를 위한 미래 인프라 구축에 사용된다. 스택스는 올 초 프리 시드 투자 단계에서만 165만 유로(22억 원)의 투자를 유치해 주목받았다.
#베를린의 고민이 서울과 닿은 까닭
UEMF를 통해 어쩌면 한 도시에서 열린 작은 스타트업 행사로 끝났을 화두가 이제는 세계 각 도시로 이동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뉴욕시는 대중교통, 수도, 폐기물 관리, 통신과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큰 인프라를 갖춘 도시로, 녹색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과 프로젝트에 투자함으로써 최근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특히 뉴욕에는 실리콘밸리에 이어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테크업계가 있다.
런던시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이고 화석연료 기반 차량의 판매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전기자동차의 충전 인프라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2050년까지 2GW로 용량을 늘릴 것을 천명했다.
싱가포르는 1965년 건국 당시 160만 명에서 현재 570만 명으로 인구가 급증했다. 제한된 공간과 국가 외부의 자원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국가의 미래개발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베이징을 중심에 둔 중국은 2020년 스마트 시티와 관련한 지출이 전년 대비 13% 증가한 260억 달러(32조 원)를 기록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2024년까지 중국의 국가 지출 절반 이상을 지속 가능한 인프라, 효율적인 에너지 공급, 데이터 기반 거버넌스와 디지털 관리에 지출할 예정이다.
세계 도시의 미래 에너지와 모빌리티에 대한 이런 고민을 보니 한국의 서울과 다른 도시들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혁신과 미래를 고민하는 스타트업과 긴밀하게 장기적으로 협력해 나간다면 지속 가능한 미래와 더 빨리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베를린의 고민이 서울까지 와닿는 이유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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