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가상자산 루나·테라(UST) 폭락의 파장이 심상치 않다. SNS와 가상자산 투자 커뮤니티에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잃었다는 후기가 쏟아진다. 테라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다. 루나·테라 폭락의 영향으로 12일 하루에만 전 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이 약 258조 원(2000억 달러)이나 사라졌을 정도다. 공포심이 커지면서 투자심리도 크게 위축됐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은 이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가상자산 거래소의 책임론이 나오고 있다.
5월 8~13일 일주일 사이 UST가 1달러를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루나는 0원 가까이 하락하면서 가상자산 시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내 루나 투자자는 2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패닉셀에 이어 ‘단타(단기간 투자)’를 노리는 이들이 몰리는 상황에 가상자산 거래소가 투자자 보호는 뒤로하고 수혜만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상자산은 금융법 적용 대상이 아닌 만큼, 가상자산 투자자는 큰 손해를 보더라도 보상받지 못한다. 이번 사태처럼 투자자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루나·테라 사태의 파장이 워낙 크자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7일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가상자산 업자와 논의해 투자 유의 고지 등을 하겠다”고 했지만 “법제화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 만큼 손해를 본 루나 투자자가 보상받을 길은 요원하다.
이처럼 수많은 이들이 돈을 잃었지만 대처할 방법이 없어 혼란인 가운데, 수수료 이익을 거둔 중앙화 거래소들의 대응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는 13일 오후 5시 모든 루나 거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바이낸스는 이날 오전 9시 이미 LUNA/BUSD 페어를 제외한 거래를 중단한다고 발표한 상태였다. BUSD는 바이낸스가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이다. BUSD를 이용한 ‘탈출’은 허용한 것. 그런데 바이낸스는 테라의 블록생산이 시작되자 같은 날 오후 11시경 루나 거래와 입출금을 재개했다.
자오창펑 바이낸스 대표는 13일 트위터를 통해 “유저 보호를 위해 루나와 테라의 거래를 중단했다”며 “바이낸스는 중립적이고 도움이 되는 걸 목표로 다른 프로젝트에 관한 언급을 자제하지만 이번에는 그 규칙을 깼다”며 테라폼랩스의 대응을 비판했다. 자오창펑 대표는 거래를 재개한 14일에도 트위터에 “거래가 활성화하더라도 루나 코인을 구매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를 본 유저들은 거래 중단 시기, BUSD 제외 등에 해명을 요구했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바이낸스의 상장폐지 번복에 관해 “중앙화 거래소들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상장과 상장폐지를 한다. 루나·테라를 상장폐지했다가 재상장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상장폐지 결정이 섣부르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여러 가상자산 거래소가 루나 매도로 수억 원의 수수료 이익을 거뒀는데, 바이낸스 또한 재상장 전후로 수수료 이익을 상당히 얻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거래소의 루나 상장폐지 여부와 시기는 제각각이다. 은행과 연계해 실명 계좌를 확보한 가상자산 거래소 5곳 중에서 고팍스·업비트·빗썸만 루나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테라 생태계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자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에 나선 것. 고팍스는 16일 15시 가장 먼저 나서 루나·테라(KRT) 거래를 종료했다. 고팍스 관계자는 “10일 테라의 노드 불안정으로 입출금을 막았는데,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추가 투자나 자산 하락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상장폐지에 나섰다”며 “원화마켓을 재개한 지 얼마 안 된 만큼 수수료 이슈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업비트(운영사 두나무)는 20일 12시, 빗썸은 27일 15시부터 루나·테라 거래를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실명계좌 거래소 2곳인 코인원·코빗은 상장폐지를 유보한 상태다. 상장폐지를 결정한 다른 거래소와는 입장이 사뭇 다르다. 코빗 측은 “투자자가 거래하지 못해서 손실이 커질 수도 있지 않나. 상장만큼이나 상장폐지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며 “루나의 회생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상황에 무작정 상장폐지하는 것도 보호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17일 트위터를 통해 테라 생태계 재생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체인을 복사한 새 테라 블록체인에서 새로운 루나를 발행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기존 생태계의 실패를 인정한 만큼 새 계획은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전문가는 출금만 열어둔 채 상장폐지까지 시간을 두는 것도 완전한 투자자 보호는 아니라고 짚는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 교수는 “증권시장에선 주식에 문제가 생겼을 때 거래를 중단하는 게 기본이다. 남은 투자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입금은 막고 출금은 열어둔다는 건 진정한 의미의 ‘보호’가 아니다. 손해를 입은 투자자끼리 자금을 주고받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보상은 코인 발행처 등 문제를 일으킨 쪽을 통해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가상자산 거래소가 자체적인 기준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가상자산 상장·폐지를 결정하면서 문제가 생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루나의 가격이 급락한 지난 13일 새벽에 업비트가 루나의 입출금을 중단했다가 8시간가량 재개한 사이, 일부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와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차익을 거둔 것. 업비트는 루나를 비트코인으로만 거래 가능한 BTC 마켓에 상장시켰는데, 이 때문에 최저가가 해외 거래소보다 높게 형성됐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루나의 시세 하락이 빨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업비트에는 루나 상장 전 투자로 이익을 얻었다는 ‘먹튀’ 의혹도 제기됐다. 두나무의 투자 전문 자회사 두나무파트너스가 2018년 루나에 투자했는데, 루나가 업비트에 상장하면서 가격이 올라 지난해 1300억 원대 매매 수익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에 업비트 측은 “루나 매매는 두나무파트너스가 진행한 일로 업비트에서 개입한 부분은 전혀 없다”며 “테라에 투자를 하면서 얻은 코인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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