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엘릭시어(Elexir)’는 연금술에서 마시면 불로불사가 될 수 있다고 전해지는 마법의 명약 이름이다. 독일의 자브뤼켄과 베를린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 엘릭시어는 차량용 하드웨어를 개발할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골격이 되는 기본이 되는 구조, 즉 차량용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제공한다. 자동차 산업계에서 비법의 명약이 되겠다는 포부로 ‘엘릭시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엘릭시어는 2021년 독일 자브뤼켄에서 시작했다. 창업 6개월 만에 기존 자동차의 구성요소를 완전히 뜯어고쳐 자신들만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은 훌륭한데, 이게 가능하겠어?’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바로 눈앞에서 ‘실제 가능함’을 증명하고 스타트업이 가진 기민함, 융통성, 속도를 모두 보여주었다.
엘릭시어는 공동 창업자가 네 명이다. 세 명은 자브뤼켄의 헬름홀츠 사이버 보안연구소(CISPA-Helmholtz) 출신으로 자동차 산업 보안 분야에서 수년의 전문 경력을 갖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은 컨설팅 회사 액센츄어(Accenture) 출신으로 비즈니스 영역에서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헬름홀츠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하고 논문을 쓰다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당장 실현해보자고 뜻을 모았고 자브뤼켄대학교, 독일정부 등의 지원을 받아 프리 시드 단계에서 약 170만 달러(약 21억 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했다.
이번 글에서는 공동창업자 중 유일한 한국인 여성 박소현 CXO를 인터뷰했다. 박소현 CXO는 현대자동차에서 네트워크 보안 전문가로 일하다가 박사 과정으로 헬름홀츠 사이버보안연구소에 와서 동료들과 함께 무모하지만 신나는 도전을 하는 중이다.
#아무도 시작하지 못한 일을 한다는 것
△엘릭시어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간단히 설명해달라.
-지금 자동차의 모든 부품에는 데이터가 들어 있다. 온도 센서, 트렁크에 장착된 카메라, 전후방 카메라, 라이트, 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인식하는 센서 등 이런 부품들 안에 있는 것이 데이터다. 그런데 자동차를 구성하는 부품은 각기 다른 회사에서 위탁생산을 한다. 이를 보통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주문자상표부착생산)이라고 부르고, 자동차 제작사에 직접 모듈과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들을 티어 1(Tier 1), 2차 부품 공급 업체를 티어 2(Tier 2)라고 부른다. 하나의 자동차를 만드는 데 정말 많은 회사가 관여한다. 그래서 자동차 하나에 들어가는 데이터들도 모두 운영체제(OS)가 다르다. 엘릭시어는 이렇게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운영체제를 통합하는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스마트폰이 안드로이드라는 운영체제를 갖추는 것처럼 자동차 데이터의 통합운영체제를 구상하고 있다.
△엘릭시어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2018년에 박사과정을 하기 위해 독일에 왔다. 그전에 한국의 큰 자동차 회사에서 좋은 동료들과 일하면서 자동차 산업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 잘 배웠다. 그런데 내가 고민하고 실현하고 싶은 것을 바로 적용하기에는 회사가 컸고 의사 결정 과정이 길었다. 그래서 내 생각을 펼칠 수 있고 더 영향력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독일 연구소에서 연구와 일을 시작했고, 그때 지금의 공동창업자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함께 리서치로 시작했는데 직접 실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우리의 아이디어가 전체 판을 바꾸면 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큰 동력이 되었다.
△엘릭시어의 기술이 이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수학과 컴퓨터를 전공했다. 수학은 매우 재미있고 철학적이지만 실용성이 떨어진다. 컴퓨터에 수학이 적용되면서 세상에 쓰이는 게 좋아 두 분야를 모두 공부했다. 특히 컴퓨터 보안 암호학 쪽을 했는데, 수학의 현대 대수를 기반으로 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분야다. 보안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보호하는 것이고 자동차는 모두가 이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자동차 보안 분야가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동차 산업에서 실제 일해보니, 자동차 보안 분야가 대기업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원래 데이터는 다 개인의 것이 되어야 하지만, 자동차 산업에서 데이터는 몇몇 큰 기업들의 것이다. 이것을 오픈해야겠다는 것이 엘릭시어의 첫 아이디어였다. 엘릭시어의 운영체제를 쓰면 누구나 자동차에 사용하는 데이터를 볼 수 있고 직접 개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가 그냥 특정 기업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스마트폰처럼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거기에 기여하고 자기의 데이터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솔루션을 가진 경쟁사는 없나.
-아직까지는 못 봤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기존 보쉬나 컨티넨탈 같은 OEM 부품을 기반으로 거기에 연결하는 레이어를 개발한다. 그래서 기존 시장의 플레이어들에서 한 단계 발전된 수준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른 회사들은 왜 이러한 아이디어에 도전하지 않을까.
-너무 혁신적이어서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스마트폰에서 안드로이드라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아이디어도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결국 자동차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바꾸고, 우리의 고객사가 될지도 모르는 OEM사들의 수익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므로 사실 엄청난 모험이라고 볼 수 있다.
△시드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투자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다양하다. 일단 이게 기존 사업 체계에서 존재하지 않다보니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우리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타는 셰어링카에 엘릭시어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으면, 내가 차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자동차의 시트, 라이트, 음악, 내비게이션 등이 나에게 맞춤형으로 설정되게 만들 수 있다”고 예를 들면 “너희는 카셰어링 회사냐, AI 회사냐” 이렇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많이 묻는 것이, “어쨌든 너희 솔루션은 OEM, 티어 1, 티어 2가 사용을 해야 되는데 그들에게 어떻게 가 닿을 수 있느냐”다. OEM 출신의 투자자는 “자동차 한 번 만드는 데 사이클이 7년 정도 걸리는데, 너희 소프트웨어가 너무 빨라서 이 사이클에 안 맞을 것 같다”고 조언한 적도 있다. 이런 모든 반응과 조언에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의외로 호응과 호감이 가득한 반응도 많다. 아이디어는 모험적이지만, 우리는 겁이 많은 편이다. 기존 OEM들이 굉장히 보수적이라 우리를 안 좋게 보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제는 자동차 산업에 혁신이 필요할 때”라며 “이런 아이디어를 기다렸다. 빨리 만들어달라”고 응원을 해주기도 한다. 실제 지금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위기라고 한다.
#회사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
△이런 모험을 하는 데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아주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첫 투자를 안정적으로 받아서, 시각적으로 우리의 아이디어를 보여줄 수 있는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제작했고, 이것으로 2022년 UX 디자인 어워드 우승 후보에 올랐다.
굳이 어려움을 꼽자면, 나는 공동 창업자 중 내부 팀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우리 팀은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국가 출신이라 문화와 일하는 스타일이 다 달라서 이를 이끌어 가는 것이 항상 큰 과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많은 사람의 조언과 반응에 즉각적으로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우리의 목표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큰 비전은 같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좌표를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 반드시 생긴다. 그런데 변화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회사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경영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의 브랜드는 확정되어 출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유연함은 중요하다.
△대기업 출신이면서 스타트업에서 유연한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큰 조직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만족한다. 또 성격이 긍정적이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 편이라서 그런 점이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스타트업이라 미래가 불투명하고, 변화가 많다는 것이 불안감을 줄 수 있지만, 지금은 꽤 즐기고 있다. 걱정해봐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면, 더 깊게 가져가지 않는다. 공동 창업자들도 나와 성향이 비슷해 잘 맞는다. 독일어가 모국어인 슈테판과 세바스티안은 외부 활동과 독일 투자자 등을 만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나와 다니엘이 기술적인 부분과 내부 팀을 이끌어 가고 있다. 역할 분담도 잘 되고, 우리 모두 누군가의 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액션을 취하고 다가가야 하는 이 상황을 열심히 즐기고 있다.
박소현 CXO는 지금까지 만난 창업자 중 가장 여유 있고 차분했다. 넓고 넓은 유럽 땅에서 이 그룹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한국인 여성이기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겉보기와 달리 상당한 모험에 뛰어든 그녀와 엘렉시어의 미래가 매우 기대된다.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스마트 하지 않았던 시절,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나와 당연한 것 같았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모습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처음 사용했을 때, 정말 직관적으로 설계된 이 요물(!)이 세상을 바꾸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자동차에서 마법의 명약이 될 엘릭시어가 과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들의 시도는 잠잠하던 자동차 산업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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