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머니

[현장] 재개발 발목 잡는 학교용지…강북 최대어 '갈현1동'에 무슨 일이

교육청이 학교 면적 2배 요구하자 조합이 학교용지 취소 결정…학부모·비학부모 사이 갈등 커져

2022.05.04(Wed) 18:48:54

[비즈한국] “도화초등학교(가칭)가 생길 거라고 기대하는 말만 많았지 여태껏 갈현1동에는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없다. 옆 동네 갈현초를 다니던 딸은 성인이 된 지 오래다. 10년 넘게 기다리던 재개발 사업이 앞으로 순항할 일만 남았는데 갑작스러운 교육청의 요구로 주민들이 갈라서게 돼 안타깝다(갈현1구역 조합원 A 씨).”​

 

서울 은평구 갈현동 갈현1구역 주택재개발조합이 학교용지 해제를 결정한 뒤 조합원 간의 대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갈현1구역은 불광5구역, 대조1구역과 함께 ‘은평구 3대장’으로 묶일 만큼 정비업계가 주목하는 사업지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 A노선(GTX-A)·신분당선 등 호재가 있는 데다 총 4116세대 규모에 달해 강북 지역 최대어로 꼽힌다. ​갈현1구역 재개발 사업은 지난해부터 속도가 붙었다. ​

 

서울 은평구 갈현1구역 주택가에는 재개발조합의 초등학교 용지 해제 결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교육청이 기존 계획을 번복하며 2배 넓은 학교 용지 확보를 요구하자 조합원들이 입장 차를 보이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강은경 기자


A 씨의 말처럼 갈현1구역의 갈등은 교육청의 지침에서 시작됐다. 교육청이 이미 계획된 학교용지를 두 배 늘릴 것을 요구하면서다. 서울시 서부교육지원청은 지난해 8월 31일 조합에 학교 용지 적정 면적 1만 5315㎡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는 지난 2017년 건축심의와 2018년 교육부 지침에 따라 확정된 기존 면적 7752㎡​의 두 배 수준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근거는 ‘학교신설비 교부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초등학교 36학급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1만 3583㎡이 필요하다. 이 구역이 재개발 사업을 시작했던 2008년(9313㎡) 보다 요건이 까다로워진 셈이다. 서부교육지원청은 지난해 11월 조합에 보낸 공문을 통해 “갈현1구역 내 결정된 학교용지는 면적이 협소해 해당 규모로는 학교 설립 추진이 어렵다”며 “학령인구 지속 감소 추세에 따라 향후 갈현1구역 주변 지역 학생 수도 전반적으로 감소가 예상되고 인근에 초등학교가 다수 위치해 개발 사업으로 인한 증가 학생 수를 고려하더라도 학교설립 수요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기존 부지의 2배, 비현실적 조건에 조합원 간 입장 차 선명

교육부의 교부 기준에 따라 조합이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면적은 7563㎡. 구역 인근의 부동산 관계자는 “기존 학교 면적 만큼의 부지를 추가로 확보하는 건 어렵다고 본다. 이 구역은 18년 째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인데 기존 설계를 번복하면 사업 지연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실적인 조건에 부딪힌 조합은 이사회와 대의원회의를 개최해 학교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반발하는 일부 주민들은 ‘초등학교 지키기 운동’에 나서며 갈등의 불을 당겼다. 학교 용지 해제에 반대하는 주민 B 씨는 “이사회와 대의원회의에서는 압도적인 동의가 나왔다고 하는데 일반 조합원 중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초등생의 등하굣길 치고는 갈현초까지 가는 길이 멀고 위험하다. 강변북로를 우회하는 도로와 연결돼 있어 교통이 복잡한 것도 한몫 한다. 예전부터 가까운 초등학교에 대한 수요가 큰 지역”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주민들은 찬반 입장과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갈현1동에 초등학교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현재 이 구역의 초등학생은 갈현2동의 갈현초로 배정받는다. 갈현초는 구역 중심부부터 도보 기준 약 1.2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과밀 학급 문제도 거론된다. 갈현초의 학급 당 평균 학생 숫자가 서울시 전체 평균(21.7명)과 은평구 평균(21.8명)보다 2명가량 많다. 2026년 4000세대가 넘게 입주한 후에는 학생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지키기 운동을 지지하는 조합원들은 현재 확보된 부지를 최대한 활용해 학교를 설립하는 방안을 촉구하고 있다.​

 

갈현1구역 조합은 이사회와 대의원회의를 열어 학교 해제를 결정했다. 사진은 주택과 빌라가 이어진 갈현1구역의 모습. 사진=강은경 기자


#인구 감소로 학교 신설 조건 까다로워졌지만…사회적 갈등은 방치 

학교 부지를 둘러싼 갈등은 갈현1구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도 안양시 호원초등학교 주변지구 재개발 사업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2018년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은 ‘부지 매입비가 크고 인근 학교 분산 배치 방안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신설 계획을 반려했다. 일반 분양까지 마친 마무리 단계에서 학교 설립이 번복된 후 도보 거리에 초·중·고가 없다는 통학 문제가 떠올랐다.

저출산 고착화로 학교를 새로 짓는 조건과 절차는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다. 백인길 대진대학교 도시부동산공학과 교수는 “학교 같은 요소는 기본 계획 수립 등 구체화 과정에서 그 시점에 맞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 최근에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학교를 축소하는 추세다. 현실적으로 행정이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2021년 기준 전국 초·중·고등학생은 4년 전(572만 5260명)보다 40만 명 넘게 감소한 532만 3075명이다. 재개발이 추진되는 지역이라도 기존 도심에서는 추가 학교 신설이 쉽지 않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도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책 없이 학교 신설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행정 기준에 따라 정비 사업의 내용을 계획한 주민들에게는 이 같은 일방적인 지침이 큰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학교 용지 해제를 결정한 조합도 교육청의 행정 처리 과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조합 관계자는 “갈현2구역까지 합치면 5000세대가 넘는데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를 세우는 것은 모두의 바람이다. 교육청이 2400평 부지의 두 배 가까운 면적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조합으로서도 최대 3500평 수준으로 최대한 추가 확보할 의향이 있었다. 학교 설립과 관련해 교육부가 진정성이 없었다고 본다”며 “주민 갈등은 불가피했지만 조합으로서는 사업 진행을 위해 학교 용지 해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핫클릭]

· '실적 악화에 계약 해지까지' 건설사들, 건자재값 상승에 울상
· '대기업 지정' 일진그룹, 높은 내부거래 비중 어떻게 해결할까
· 할 사람 다 했다? 넷플릭스, 가입자 주춤하자 '계정 공유' 과금 만지작
· [단독] 윤석열 처가 회사, '0원 논란' 양평 공흥지구 개발부담금 아직 미납, 왜?
· [부동산 인사이트] 1기 신도시 재정비 대상을 '시'로 확대하는 이유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