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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최신 유럽 핀테크 트렌드는 '이민자'

고학력·고소득임에도 이민자라 안 됐던 신용카드·계좌·대출 등 금융 서비스 제공해 틈새시장 개척

2022.05.02(Mon) 14:07:05

[비즈한국] 최근 몇 년간 가장 큰 상승세를 타고 있는 분야는 단연 핀테크다. 2022년 1분기 유럽 스타트업 중 핀테크 영역은 86억 달러(10조 원)의 투자를 이끌어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런 유럽 핀테크에서 최근 흥미로운 트렌드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다. 

 

국제이민기구(IOM,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의 조사에 따르면 EU 인구의 약 5%가 EU 국적이 아닌 이민자 출신이다. 노동력 측면에서 보면 이민자들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주노동자 수는 거의 1억 7000만 명으로 2010년에 5300만 명 규모였던 것에서 3배 이상 증가했다. 영국에서는 이민자 출신의 노동력이 전체 노동력의 약 18%를 차지한다. 전문인력의 경우는 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영국 전체 의사 중 이민자 출신 의사가 33%를 차지한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등 의료계 노동력 대부분이 이민자 출신에 크게 의존한다. 미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다른 고소득 국가도 유사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돈을 벌고 세금을 내지만 기존 금융권에서 소외된 이민자의 규모가 꽤 크다는 말이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신용도가 낮아 신용카드를 발급 받을 수 없다거나 대출 등 다른 금융 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없어서 소외된 이민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유럽의 핀테크 스타트업은 엘리트 출신에 고소득 직군이지만 이민자여서 금융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불편함에 주목해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저평가된 이민자들의 신용, 필라와 욘더

 

런던의 핀테크 스타트업 필라(Pillar)는 CEO 애슈토시 바트(Ashutosh Bhatt)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인도에서 영국으로 이주해 영국 유수의 금융회사인 바클레이카드(Barclaycard)의 크레딧 리스크(Credit Risk) 부서에서 일했다. 

 

유명 카드회사의 신용관리 부서에서 일한다는 매우 보장된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는 할부로 아이폰을 구입할 수가 없었다.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바트는 그로부터 14년이 지났지만, 금융 시장의 보수성이 여전하다고 본다. 

 

그래서 외국에서 영국으로 오는 모든 이민자의 신용 데이터가 국경을 쉽게 넘어오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필라는 인도의 신용 조사 기관 데이터를 넘겨 받아, 자국에서의 신용을 영국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런던 핀테크 스타트업 ​필라는 인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애슈토시 바트(오른쪽)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탄생했다. 이민자의 신용이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설계한 필라의 두 창업자. 사진=hellopillar.com

 

필라는 지난 4월 페이스북, 레볼루트 등 레전드 스타트업 투자자로 유명한 미국의 글로벌 파운더스 캐피털(Global Fouders Capital)과 백트 VC(Backed VC)가 주도한 프리 시드(Pre-Seed) 라운드에서 무려 1690만 달러(214억 원)의 투자를 받아 화제가 되었다. 

 

런던의 핀테크 스타트업 욘더(Yonder)도 아이디어는 비슷하지만, 신용카드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국의 신용점수가 없는 이민자에게도 신용카드를 발급해주는데, 일종의 건강한 긴장감과 특별한 멤버십을 구축한다는 의미에서 15파운드의 가입비를 받는 것이 특징이다. 욘더는 단순히 신용카드를 발급해주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입자들이 원활하게 지출, 대출, 투자, 저축을 할 수 있는 금융 사이클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욘더 카드를 통해 지출한 금액은 포인트로 적립돼 제휴를 맺은 런던의 유명 식당과 공연, 이벤트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런던에 처음 온 사람들이 모두 경험해 보고 싶어하는 인기 있는 곳들이다. 

 

런던 핀테크 욘더 팀. 다양한 국가 출신, 성별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yondercard.com

 

#이주노동자들의 급여에 집중, 카드모스와 유니제스트

 

2021년에 시작한 베를린의 핀테크 스타트업 카드모스(Kadmos)는 이주노동자의 급여에 집중했다. 전 세계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급여 지급, 송금, 지출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단일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국제적인 급여 지급과정을 단순화하고, 가장 낮은 이체 수수료를 통해 고용주와 근로자에게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전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비자 직불카드도 최적화된 조건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카드모스는 지난 4월 830만 유로(110억 원)의 시드 라운드 투자를 유치해 순탄하게 출발했다.

 

 

이주노동자의 급여에 집중한 베를린의 핀테크 카드모스. 사진=kadmos.io

 

런던의 핀테크 스타트업 유니제스트(Unizest)는 아직 영국에 도착하기 전인 학생이나 노동자들이 비자, 급여, 등록금 등의 문제로 영국 계좌가 필요한 상황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최신 얼굴 인증 기술과 보안 시스템을 도입해 영국 밖에서도 몇 분 만에 영국 계좌 개설이 가능한 상품을 제공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계좌를 처음 만든 은행을 지속해서 이용한다는 것에 착안해서, 처음 영국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첫 계좌가 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특히 영국 내 많은 외국인의 급여 통장이 되도록 기업 파트너들과 협력해 기업의 온보딩 프로세스의 일부로 유니제스트의 계좌를 소개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민자 커뮤니티 내의 신용을 활용, 블룸과 콰라

 

계 모임 구성원들이 매달 일정 금액을 일정 기간 납입하면, 먼저 돈이 필요한 사람이 나중에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자를 내며 목돈을 대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계이다. 이 계모임의 원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신용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된 전통적인 사(私)금융 제도다. 

 

런던의 핀테크 블룸(Bloom)은 이민자들이 상대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데에 소외되어 있다는 점을 포착하고, 이 커뮤니티에 일종의 ‘저축 클럽’을 결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이민자들이 외국 생활을 하면서 자국 출신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이루어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신뢰를 쌓는다는 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계 모임처럼 이들은 매달 정해진 금액을 납입하고, 돈이 필요한 사람은 이 클럽의 신용을 바탕으로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들은 신용조합을 ‘블룸 커뮤니티(Bloom Community)라고 부른다. 

 

런던 핀테크 블룸은 일종의 계 모임의 원리로 이민자들의 커뮤니티에 집중했다. 사진=bloommoney.co

 

베를린의 핀테크 스타트업 콰라(Kwara)도 같은 원리다. 계 모임의 곗돈을 모바일 앱과 디지털 뱅킹으로 편하게 이용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이들의 핵심 포인트다. 아직 케냐 나이로비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지역 사용자들에게 상품을 제공하고 있지만 유럽에 도입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이미 장애인을 위한 금융, 성소수자들을 위한 은행, 아시아계·흑인을 위한 디지털 뱅킹 등이 속속 출시되며 맞춤형 신개념 은행이 등장하고 있다. 틈새시장이기 때문에 이 시장의 잠재 고객이 얼마나 될지, 과연 수익이 날 만한 규모인지에 대해 많은 투자자들이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기존에 ‘보이지 않던’ 또는 터무니없이 ‘저평가된’ 이민자들의 파워와 규모가 슬슬 가시화된다는 것이 지금 유럽 핀테크에서 포착한 지점이다.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치부되어 왔던 것들이 전 세계 금융권에서 점점 드러나면서, 이 거대한 시장의 잠재력은 꽤 높게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유럽 이민자로 살아가는 많은 한국인들을 위해 토스와 카뱅이 움직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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