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운영사 스트리미)가 28일 2시 30분부터 원화마켓 운영을 재개했다. 지난 21일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이 고팍스의 실명 확인 계정 변경 신고를 수리하면서다. 이로써 개정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상(특금법)에 따라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를 갖춘 가상자산사업자는 총 5곳(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이 됐다. 이처럼 원화마켓이 늘면서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는데, 여전히 가상자산의 법적 근거 마련은 늦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팍스는 개정 특금법 시행 이후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해 원화 거래를 중단했다가, 지난 2월 전북은행에서 실명계좌 확인서를 받아 한숨을 돌렸다. 국내 가상자산시장은 2021년 12월 말 기준 시가총액 55조 원, 이용자 수는 558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국내법 중 가상자산을 명시한 법은 특금법이 유일하다. 특금법에서 가상자산과 가상자산사업자를 정의하고 있지만, 법안의 목적은 자금세탁과 협박 자금조달을 막는 데 한정됐다.
그동안 정부는 가상자산을 두고 ICO(암호화폐공개) 금지, 실명계좌 등록 등 규제 위주의 정책을 펼쳐왔다. 지난해 4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가상자산은 정부가 인정할 수 없는 투기자산”이라고 밝히는 등 당국이 가상자산의 위험성에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장은 급속도로 커지는데 산업 전반을 감독할 법적 근거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업계에서 가상자산의 산업 영역을 인정하는 ‘업권법’ 제정을 요구한 이유다.
그러던 중 20대 대선에서 가상자산 시장 육성에 긍정적인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현 정부에서 미뤄온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 차기 정부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윤 당선인은 ‘선 제도 정비 후 과세’ 원칙하에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 △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 △국내 디지털 자산 발행 허용 △투자수익 5000만 원까지 비과세 등의 공약을 냈다.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자산 기본법을 통해 부당거래나 해킹에 대비해 투자자 보호를 위한 보험 제도를 도입하고, 거래소와 은행을 연계하는 전문 금융기관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가상자산이 제도권에 편입되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금리 등의 사안에 밀려 논의가 부진한 데다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알 수 없어서다. 업계에선 “가상자산 논의가 새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인수위원회에 현장 의견을 전달하기가 어렵고, 의견이 반영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 가상자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윤창현 의원은 “인수위에서 공약집을 토대로 디지털 자산 분야를 키울 수 있는 설계도를 마련한 것은 맞다. 기본법과 세부 사항을 설계했지만 후속 작업도 할 게 많다”며 “(윤 당선인이) 취임하면 인수위 역할은 끝난다. 설계도를 토대로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건 새로운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할 일이다. 기본법 초안은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법을 마련할지 등은 새 정부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지난 27일 ‘대한민국 블록체인 및 디지털 자산을 위한 정책 프레임워크’ 콘퍼런스에서 축사를 통해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 전담부서 설립, 규제 체계 구축, 불공정 거래의 규율 확립 등 새 정부의 디지털 자산 정책의 기본 뼈대는 세워졌다”고 밝힌 바 있다.
법제화와 담당 부처 지정이 더뎌질 기미가 보이자, 기존 부처에서라도 가상자산 산업을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성후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 회장은 “디지털 자산을 담당하는 제3의 기관이 나와야 하는데, 4월 초 인수위가 정부 조직 개편이 어렵다고 밝히면서 언제 생길지 모르게 됐다”며 “그렇다면 과도기에 과기부·금융위 등 기존 부처 중에서라도 지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논의가 표류한다. 후에 차기 정부에서 정부 조직을 개편할 텐데 입법까지는 시간이 걸리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담당 부처가 없고 규정이 미비한 탓에 불법이 성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담 부서가 없으니 현장에서 따를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는다.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요건 중 하나는 실명계좌 개설이다. 한동안 은행 계좌를 발급해주겠다며 선불금을 받는 브로커가 활개를 쳤다. 은행 심사 기준이 없으니 브로커가 나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업계에선 가상자산 산업의 실익을 내세워 정책 마련을 촉구한다. 이준행 고팍스 대표는 26일 열린 ‘차기 정부 디지털 자산 정책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책 포럼에서 “한국에 더 많은 가상자산 사업자와 발행 주체가 생기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세수는 극대화할 수 있다”며 “가상자산 산업 육성을 통해 쉽고 저렴한 자본 조달, 혁신, 수지 개선, 재원 증대 등을 이룰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업계의 기대감과 달리,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 현재 금융법을 차용한 규제의 연장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디지털금융 MBA 주임교수는 “법을 제정하더라도 자본시장법이나 전자금융거래법에 있는 법령을 가져올 것이다. 법제화는 가상자산이 금융상품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목적물이 다르기 때문에 금융에 편입할 수 없다. 당국이 관리할 수 있는 규정이 생긴다는 뜻에서 제도권에 들어오는 것이지, 금융상품으로 인정됐다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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