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요즘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의 분쟁이 이슈다. 시공사는 조합에 공사비 증액, 매 분양 대책 수립 등을 요구하면서 공사 중단 가능성을 내세워 압박한다. 이에 조합은 도급계약을 해지하거나 지체상금, 하자보수 청구 등으로 응수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조합-시공사 간의 분쟁은 언제나 있었다. 그런데도 이슈가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새 정부 출범 이후 규제 완화를 향한 기대감이 고조됐고,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해 시공사의 공사대금 현실화 요구가 강화된 것도 이유다.
사업이 지연되면 막대한 금융비용이 발생해 모두가 손해를 본다는 점에서 조합과 시공사는 이해관계가 같다. 또한 설계변경·물가 변동 등의 사유가 발생할 경우 이를 반영해 공사대금을 증액한다는 점에서도 양측 간에 큰 이견은 없다.
그런데도 극단적인 대립이 발생하는 이유는 양측이 총회 의결의 절차적 정당성이 갖는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관련 계약에 근거해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내용에 대해 각자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 관련한 최근 판결들은 이 같은 쟁점을 모두 다루고 있다. 이번에 이슈가 된 분쟁도 이미 알려진 쟁점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분쟁이라는 것이 꼭 쟁점을 몰라서 발생하는 건 아니다. 전후 사정을 알아도 더 많이 얻어내기 위해 서로 무리한 요구를 해서 분쟁이 심화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재개발·재건축 분야의 판결이 쌓여 있으므로 이를 통해 이번 이슈에서 양측 주장의 시시비비를 미리 가려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나온 중요한 판결로 서울고법 2021나2011839 판결(확정)이 있다.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착공을 거부하자, 조합은 도급계약 해제와 시공사 교체로 맞섰다.
공사비 증액 요구의 정당성에 대해 서울고법은 ①시공사가 제출한 사업개요에 연면적 증가로 공사비 증액이 예정됐다는 점 ②이 같은 사정은 시공사 선정 시 경쟁업체에 의해 지적됐으므로 조합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 ③도급계약에 따르면 설계변경은 계약금액 조정 사유이므로 조합이 설계변경에 동의한 이상 공사비 증액에 조합도 책임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시공사의 공사비 청구는 정당하다고 봤다.
시공사의 착공 거부로 인한 도급계약 해제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서울고법이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먼저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가 정당한 이상 공사비 분쟁으로 시공사가 신속히 착공하지 않은 것이 해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협상 과정에서 조합이 합리적인 증액을 거부하고 시공사에 사과문을 요구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해 분쟁이 확대된 점을 고려하면 공사 기간이 1.5개월 지연됐다고 해서 시공사가 계약을 위반해 해제사유가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계약위반에 의한 계약해제 주장이 배척되자 조합은 ‘도급인은 손해를 배상하면 임의로 도급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민법 제673조에 의한 해제를 주장했다. 즉 손해를 배상하면 시공사를 교체할 수 있고 이는 민법 조항에 근거해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서울고법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계약해제 시 손해를 배상하는 것은 불가피하고(민법 조항), 이때 손해배상은 조합원에게 경제적 부담을 가져오는 사안으로 총회 의결사항이다. 그런데 조합은 계약해제에 대해서만 의결을 했을 뿐 해제와 일체를 이루는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하지 않았으므로, 해제에는 총회 의결 부존재라는 절차적 하자가 존재하여 부적법·무효다.”
또 다른 사례로 서울고법 2016나20444019 판결(확정)이 있다. 이 판결은 공사비 증액과 분양가 책정 등으로 분쟁이 발생해 시공사가 5개월 간 공사를 중단하자, 조합이 약속된 기간보다 완공이 197일 늦었다는 이유로 지체상금을 청구한 사안이다. 그렇다면 시공사가 조합에 미분양 대책을 요구해 야기된 분쟁으로 공사가 지연된 것은 정당할까?
서울고법은 일정 부분 정당하다고 봤다. 분양가 인상 시 조합원은 수입이 늘어나서 유리하나, 이에 따라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면 시공사는 사업경비를 회수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런 점에서 조합과 시공사는 이해 상충관계가 있으므로 시공사가 조합에 미분양 대책을 요구할 필요성이 있다는 거다.
쟁점은 또 있다. 공사 중단 이후 양측은 시공사가 조합원의 이주비(금융비용)를 부담하고 조합의 중도금 납부 기한을 연장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런 합의가 시공사의 공사 지연 책임을 면제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다.
여기서 조합은 공사 지연 책임을 면제하는 건 조합원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기 때문에 총회 의결이 필요하지만, 총회 의결이 없었기 때문에 합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조합이 반대급부로 이주비 보상·중도금 납부 기한 연장 등의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위 합의는 총회 의결사항으로 볼 수 없다며 조합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선 판결들은 공교롭게도 시공사가 승소한 사례지만 이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시공사가 승소하는 판결이 드물기 때문에 화제가 된 것일 수 있고, 판결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가 타당하거나 조합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분쟁이 확대되는 등 특수한 면이 있어서다. 즉 누구 말이 맞는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판단할 문제다.
위 판결에서 공통으로 살펴볼 부분이 있다. 주요 국면에서 총회 의결 대상인지, 총회 의결이 존재하는지 등이 중요한 쟁점이라는 점이다. 더불어 법원은 조합원에게 실질적 부담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양측 주장의 정당성을 판단했다.
최근 화제가 된 현장에서도 총회 의결이 적법하게 존재하는지, 시공사가 총회 의결의 부적법성을 사전에 알았던 건 아닌지 등이 쟁점이 되고 있다. 조합과 시공사 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 지금 판단하기는 어렵고,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지도 않다. 다만 조합 총회에서 조합원의 토의와 의결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만 총회 의결이 적법하게 판단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는 게 분쟁을 예방하는 길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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