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건설 노동조합의 무리한 갑질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 나섰다. 소속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며 건설현장을 점거하는 등 노조의 불법적인 관행이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해서다(관련기사 [건설노조 불법행위 민낯①] "우리 노조원 채용하라" 멈춰 선 공사현장은 ‘골머리’). 기존에는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등 관련 기관에서 다뤘던 사안을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풀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주로 기업 등 사업자 측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공정거래법 제재를 노조 단체에 확대 적용하는 이례적인 움직임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월 31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는 ‘채용강요 등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방안’이 상정됐다. 전국적으로 대응팀을 운영하고 점검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조사를 방해할 경우 엄중히 처벌하고 불법점거로 피해를 입힌 사업자는 등록을 취소하는 내용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일과성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다음 정부에서도 이런 정부의 의지가 강조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그동안 노조의 이 같은 관행이 건설 산업 자체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부정적인 진단이 나왔다. 전국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집회 및 시위가 2016년 2598건에서 5년 만에 5배 가까이 치솟아 작년에는 1만 건대를 기록하면서 우려가 커졌다. 노조는 철근, 골조 같은 대형 공사뿐만 아니라 형틀, 상하수도 등 세부 공사까지 조합원 채용을 촉구하며 출입봉쇄, 작업방해와 같은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선례 만들어
정부는 공정거래법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건설노조의 공사 방해를 ‘사업자단체의 불공정행위’로 규정하고 상반기 내 처리한다고 밝혔다. 선례를 마련해 같은 위반 행위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건설노조에서는 ‘사업자’들이 노조의 형식만 빌려 단체를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노조와 조합원 사이에는 돈이 오간다. 조합원은 발전기금 명목으로 입회비를 내는데, 가입비 외 투쟁비, 피복비, 현장투입비 등의 추가 금액을 내는 경우도 있다.
공정거래법 제2조에서 ‘사업자’는 제조업, 서비스업, 기타 사업을 행하는 자로 ‘사업자단체’는 형태 여하를 불문하고 2인 이상의 사업자가 공동의 이익을 증진할 목적으로 조직한 결합체 또는 그 연합체라고 명시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비(非)노조원 포클레인·레미콘 기사를 채용하지 못하도록 한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지부를 ‘사업자 단체’로 규정하고 공정거래법 위반에 따른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조합원들이 포클레인·레미콘 차량을 소유한 개인 사업자고, 이들로 구성된 노조 지부를 사업자 단체에 해당한다고 봤다.
지금까지는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법이나 집회시위법을 적용했다. 하지만 제재 수위가 낮은 데다 조합원 개인에 대한 처벌이어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경우 위반 사업자에 대해 법 위반 매출의 일정 비율을 과징금으로 매길 수 있다. 업계가 노동 현장의 불법행위 억제를 기대하는 배경이다.
#‘공급사업자’ 닮은 노조 행위, 정부 의지가 중요
전문가들은 노조의 활동이 위법성을 가질 경우 정부가 법적인 규제를 통해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상 건설노조가 채용에서 배치까지 일종의 공급사업자처럼 활동한 데서 비롯된 문제로 건설 일자리 시장에 불공정 경쟁을 야기했다. 이는 법적으로 사실상 사각지대화 됐다”며 “개인사업자의 형태를 띤 건설 노동자의 경우 노동법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동법보다는 공정거래법 차원으로 풀어낼 필요가 있었다. 노조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난 행위에 대해 상당히 의미있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공정위는 권은희 의원실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검토 의견서에서 “건설기계 대여업자 등 사업자 노조가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거나 가격을 결정하는 행위는 금지행위로 규율하고 있다”며 “별도 입법을 안 해도 현행법으로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위가 건설기계에 이 같은 근거로 제재를 가한 사례는 없다. 최근 30년간 노조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한 경우는 27건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건설기계노조가 조사를 받은 사례는 25건이었지만 공정위 의결을 거쳐 과징금이나 시정명령 등 강제성 있는 제재를 받은 적은 없다.
이 때문에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채용 및 설비 사용 강요가 구태의연한 수준이 됐다. 삼진아웃제 등 확실한 수단이 필요하다. 심한 피해를 입은 사례에 한해서라도 실질적인 제재가 적용된다면 불법 행위의 정도나 빈도수가 줄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밖에도 건설기계 소유자가 건설기계로 허가되지 않은 사업장이나 사업장 인근 등을 점유해 피해를 입히는 경우, 건설기계관리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도록 제재 규정을 신설할 계획이다. 또 각 부처별로 건설현장 담당자를 지정해 문제 상황이 발생한 건설현장은 신속히 대처할 수 있도록 집중 관리한다. 건설업체가 직접 채용이나 계약 압박을 받지 않도록 지역·업종별 건설협회가 각 지역의 건설기계 임대·채용 수요 등을 파악한 후, 공통 플랫폼을 통해 계약·채용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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