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성의 호감을 살 깜냥이 되지도 않지만, 세상 귀찮아서 연애를 위해 노력하고 싶지도 않고, 감정이 메마른 나이가 되어서인지 그닥 원하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 볼지도 모르겠으나 연애가 없어도 잘 살고 있다. 그래도 남의 연애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건 좋아한다. 현실의 남의 연애는 하소연 내지는 자랑질일 가능성이 높으니, 패스! 내가 원하는 건 ‘나는 솔로(SOLO)’ 같은 데이팅 프로그램을 보는 거다.
인간관계의 가장 농밀한 부분을 집약한 것이 연애인 만큼 그걸 곁에서 지켜보는 건 무척 재미나다(물론 그 관계 안의 당사자가 되면 엄청난 에너지의 소모를 겪겠지만). ‘환승연애’ ‘나는 솔로’ ‘체인지 데이즈’ ‘돌싱글즈’ ‘솔로지옥’ 등 화제를 모은 다양한 일반인 대상 데이팅 프로그램이 있어왔다. 대부분 좋은 반응을 얻었고, 시즌제로 제작되었다. 그중 ‘나는 솔로’는 2021년 7월 첫 방영해 지금까지 6기의 솔로 남녀들의 데이팅을 완료했고, 총 4쌍의 커플이 결혼에 골인하는 쾌거(?)를 이룬 바 있다. 여타 데이팅 프로그램이 잘나가는 선남선녀의 홍보의 장으로 본질이 변색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나 ‘나는 솔로’는 1기부터 결혼 커플이 탄생되며 극사실주의를 표방해 주목받았다.
제작진이 ‘연애보다 연예와 방송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배제하고, 결혼할 목적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나 신분과 직업 등이 불분명한 사람도 제외한다’고 밝혔을 만큼, 자연히 다양한 외모와 직업군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게 포인트다. 여타 프로그램보다 현실적이다 보니, 출연자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아우, 그게 아니지!” “거기선 이렇게 말했어야지” “걔한텐 그런 접근법은 안 되지!”라며 홀로 추임새를 넣곤 한다. 이런 내 꼬라지를 누군가 보면 혀를 쯧쯧 차겠지만, 뭐 어때, 오지랖 한껏 부리고 나면 기분이 무척 좋거든요. 게다가 현실의 사람에게 오지랖 부리며 눈총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솔로’의 룰은 단순하다. 사랑을 찾기 원하는 남녀 각각 5~7명씩 한 곳에 모아 놓고 4박 5일 동안 오로지 사랑을 찾으라 한다. 단순히 불 같은 사랑을 찾으라는 게 아니라 평생 함께할 결혼 대상자를 찾는 이들을 위주로 하기에 연령대도 20대 후반에서 30대가 대부분이고, 40대도 종종 모습을 비춘다. 현재 방영 중인 7기 출연자들은 아예 40대 특집으로 꾸려 눈길을 끌었다. ‘솔로나라’라 명명되는 이들의 합숙 장소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의 펜션. ‘하트시그널’처럼 세련되게 꾸며진 공간이나 ‘솔로지옥’의 무인도 섬이나 특급호텔 같이 판타지를 자극하는 장소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친구들이나 가족과 함께 흔하게 여행가서 만날 수 있는, 고기 구워 먹고 물장구 칠 수 있는 다소 촌스러운 느낌의 수영장 있고 하는 그런 평범한 공간이다.
앞서 말했듯 사실주의를 표방하고 진정성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외모나 스펙도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양하다. 물론 예쁘고 잘생긴 남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연예인 뺨치게 예쁜 모델이나 인플루언서 같은 사람은 이곳에 없다. 직업군도 고스펙의 전문직 등으로 점철된 게 아니라 공무원, IT회사 직원, 강사, 트레이너, 환경공무관 등 다양하다. 단, 자신의 나이와 직업 등 개인 정보는 ‘솔로나라’ 입소 첫날이 아니라 둘째 날에 밝혀진다. 심지어 이름도 공개하지 않는다.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데이팅 프로그램 ‘짝’을 연출했던 남규홍 PD는, 이번에는 ‘1호’ ‘2호’ 등의 호칭 대신 1940~60년대 인기였던 ‘순자’ ‘영자’ ‘영숙’ ‘영수’ ‘영호’ ‘영철’ ‘광수’ 등 다소 촌스럽지만 어딘지 정감가는 이름을 출연자들에게 부여한다. 4박 5일 내내 그 이름으로 불리다 마지막 날, 최종 선택을 한 상대에게 자신의 본명을 귓속말로 밝히며 ‘솔로나라’ 밖에서의 인연을 요청하는 거다.
현실에서 만날 법한 다양한 인간군상을 모아 놓고 사랑 찾기에만 집중시키다 보니, 각각의 캐릭터가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모습과 빚어내는 감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성을 바라보는 각자의 기준이며, 호감 가는 이성에게 접근하는 방법과 속도감, 마음에 들지 않는 이성을 쳐낼 때 말하는 방식, 이성뿐 아니라 동성 간의 대화법 등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달라 흥분하며 추임새를 놓다가도 종종, 아니 자주 ‘저럴 수도 있구나’ 하고 배워가는 재미가 있다. MC를 맡은 데프콘이 시시때때로 “또 하나 배워갑니다”라고 말하는데, 아마 빈말은 아닐 것이다. 비단 연애가 아니어도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 적용시킬 만한 노하우가 많거든.
물론 눈살이 찌푸려졌던 논란의 순간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4기에 출연했던 ‘영철’이 무례한 언행으로 다소 폭력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논란을 일으켰던 사례. 진정성을 위해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은 좋지만 상황에 따라 출연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적절한 개입이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분명 있었다. 다행인 건, 기수를 거듭할수록 출연자들이 다소 예의가 없거나 매너가 떨어지는 등 호감을 얻기 어려운 단점이 보였던 전대 출연자들의 언행을 면밀히 공부하고 나오는 것 같다는 거다. 본의 아니게 전대 출연자가 다음 기수 출연자들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 더 나아가 그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반면교사가 되어준다는 점은 흥미로운 포인트다.
모두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필요는 없다. 예전처럼 연애와 결혼을 남에게 강권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연애처럼 적나라하게 누군가와 깊이 교류하고 남을 알아가는 행위는 찾기 힘들다. 그런 행위의 과정과 감정을 TV 프로그램으로 간접 경험할 수 있으니 즐겁다. 7기 출연자들은 나이가 있는 40대인 만큼 또 하나의 결혼 커플이 탄생할 수 있을지, 누가 커플로 이어질지 추리해가는 재미로 수요일을 기다리는 중이다. 생각할 꺼리 많은 본인 연애보다 재미날 수 있을니, 시청 고고!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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