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오래도록 사랑해온 찐 팬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때부터 ‘거짓말’, ‘그들이 사는 세상’ ‘괜찮아, 사랑이야’, ‘디어 마이 프렌즈’ 등, 그녀의 드라마를 보고 울고 웃으며, 나이 들어갈 수 있는 건 참으로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1인이다.
그렇게 애정하는 노희경 작가가 4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현재 tvn에서 지난 9일부터 방영 중인 ‘우리들의 블루스’는 삶의 끝자락, 혹은 그 시작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의 달고도 쓴 인생을 응원하는 옴니버스 드라마다. 출연진 또한 화려한데, 이병헌, 신민아, 차승원, 이정은, 한지민, 김우빈, 김혜자, 고두심, 엄정화 등, 초특급 출연진 라인업 때문에 드라마 공개 이전부터 화제 선상에 오른 작품이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옴니버스 형식의 이 드라마에는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 달라진다는 점이 특징이기도 하다. 어느 회 차에서는 주인공이었던 배우가 또 다른 회 차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단역 혹은 조연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인 것.
그렇게 시작한 ‘우리들의 블루스’의 1~3회차는 배우 차승원과 이정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수와 은희’ 에피소드다. 제주도가 고향인 은행 지점장 한수는 ‘기러기 아빠’로 골프 선수가 되길 희망하는 딸 서포트에 삶이 많이 피폐해진 중년의 가장이다. 1회부터 3회까지의 에피소드는 그런 한수가 고향인 제주도로 발령이 나면서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 및 어린 시절 풋풋한 감정을 주고받았던 은희와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드라마의 주된 스토리 라인과 상관없이, 신기하게도 드라마 첫 회를 보다가 마음에 걸리듯 두 눈이 가는 장면이 있었다. 엄청나게 화가 많이 난 고객을 대하는 은행 지점장 한수의 손님 응대 모습 때문이었다. 드라마에선 원금보장이 안 되는 상품에 가입해, 손해가 2000만 원 정도 난 사실에 격분한 고객 한 명이 그 상품을 판 은행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점장인 한수는 자기 방에서 나와 그 손님을 본인이 직접 응대하겠다고 나선다. 손님을 본인의 방으로 모시고 나서, 그는 정중하게 손님에게 “차 한 잔을 내오겠다”며 다시 방을 나와 탕비실로 향한다.
탕비실로 향하는 지점장을 보며 해당 상품을 판 은행 직원이 쫓아 들어와 손님 음료를 냉장고에서 꺼내려 하는 순간, 한수는 직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양반 찬 음료 주지 마. 아주 입이 데일 거 같아 뜨거운 차 줘. 벌컥벌컥 마시지 못할 만큼 뜨거운 거.” 직원이 살짝 의아한 표정을 보이자, 한수는 말을 이어 다시 이렇게 말한다. “뜨거운 차 마시려고 ‘후후’ 불다 보면 어떤 성질도 가라앉거든.”
부하직원이 챙겨준, 입에 데일 거 같은 뜨거운 차 한 잔을 한수가 건네자, 실제로 화가 많이 난 손님은 그 차를 마시려다가 “아 뜨거~!” 라고 내뱉은 뒤, 그 차를 한수의 말처럼 ‘후후’ 불기 시작한다. 그렇게 차를 ‘후후’ 불기 시작하는 손님을 한수는 차분하게 달랜다. 그리고 나서는 원금 보장되지 않는 그 상품은 이제 만기가 완료되니 더 연장하지 말고, 원금보장형 중에 이자가 센, 새 상품에 가입하라면서 화난 고객에게 새로운 상품 가입까지 시키는 영업 스킬까지 시전한다.
별거 아닌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무릎이 탁 쳐졌다. 일을 하다보면, 아니 그냥 인생을 살다보면, 나도 혹은 상대도 무척 화가 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는 한수와 같은 태도와 방법이 참으로 적절하겠다 싶어서였다. 실제로 화를 내리는 방법을 말하는 실용서에도 “코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는 훈련을 7번 정도 하면 혈압이 안정되고 심박도 조정이 되고 머리가 차가워지면서 마음이 진정된다”는 문구가 있기도 하니, 차를 ‘후후’ 불어 마시는 행위는 화를 삭이는 행위와 꽤나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화가 나는 일이 많은가? 혹은 당신의 상사, 대면으로 만나는 고객, 주변 지인이 화를 내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는가? 그렇다면 드라마 속 한수의 방법으로 화 삭이는 방법을 대응해 보면 어떨까. 별것 아닌 듯하지만 뜨거운 차를 ‘후후’ 부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차의 온도가 천천히 내려가는 것처럼 내 심장을 움켜쥐는 화도 혹은 상대방의 뜨거운 화도 점차 누그러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후후’ 내뱉는 소리에 맞춰 조금씩 내려가는 화의 온도에 당신의 마음도 화가 난 상대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화로 인해 삶이 퍼석한 우리 모두, ‘아주 뜨거운 차 한 잔의 여유’가 필요한 요즘이다.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바즐’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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