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월 도입된 배달비 가격조사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배달비 가격조사가 배달비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소비자도 배달업계도 시큰둥한 분위기다.
#배달비 산정 기준 공개 안 해 정확한 비교 어려워
배달료에 대한 소비자 부담이 커짐에 따라 배달비 안정화를 목적으로 배달비 가격조사가 시행됐다. 하지만 배달비 가격조사는 시행 전부터 실효성 논란이 나왔고, 결과물을 내놓을수록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소단협)가 3월 배달비를 조사해 발표한 결과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소단협은 서울 50개 동(25개 구 각 2개 동)의 특정 주소를 선정해 주말(3월 19일, 26일) 이틀에 걸쳐 중식과 피자 메뉴의 점심시간 최소 주문액의 배달비를 분석했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등 3개 업체의 묶음배달, 단건배달 가격을 비교했다.
조사 과정에서 일부 배달 건의 경우에는 배달 거리가 멀더라도 배달비가 줄어드는 경우가 나오기도 했다. 보통 배달비는 배달 거리에 기초해 산정되는 만큼 예외적인 경우였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분석 등은 하지 못했다. 소단협은 “배달비 산정에 거리가 아닌 다른 요인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배달앱 내 배달비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없어 정확한 배달비 산정 내용을 알 수 없다”는 설명만 늘어놨다.
2월 시범조사 때도 배달비 공시 정보에 대한 신뢰성이 지적된 바 있다. 소단협은 2월 12~13일 서울 25개 구 각 1개 동의 특정 주소를 선정해 치킨과 분식(떡볶이) 프랜차이즈의 배달비를 조사했다. 소단협은 중랑구 2~3km 반경 내 분식 주문 건의 배달비는 배민1이 7500원, 요기요는 2000원이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배달의민족 측은 배민1의 배달비에는 프로모션 가격이 적용돼 3km 이내 주문에서는 거리할증이 없어 식당과 고객이 함께 부담하는 배달비 총액이 5000원을 초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소단협은 조사결과 발표 과정에서 ‘3~4km 미만’이 ‘2~3km’로 잘못 표기된 것이라며 자료를 수정했다.
한 배달 업체 관계자는 “자료의 신뢰도나 수치 오류 등의 우려로 매번 공시제 자료를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달비 인상 견제 효과? 배달업계 ‘시큰둥’
배달비 가격조사에 대한 소비자 관심도는 확연히 떨어진다. 소단협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을 찾아 들어가거나 소비자물가정보서비스 홈페이지 보도자료 카테고리를 찾아야만 확인할 수 있다. 소단협 홈페이지에 올라온 3월 배달비 공시자료의 조회 수는 900여 건, 소비자물가정보서비스 홈페이지 보도자료의 조회 수는 300여 건에 불과하다.
자료를 통해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서울 일부 지역의 배달비를 한시적으로 조사하고, 거리에 따른 최빈·최고 금액만 공개했을 뿐이다. 소단협은 배달플랫폼이 어떤 식으로 배달비를 산정하는지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지적할 뿐,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는 추가적인 정보는 제공하지 못했다.
소비자들로선 굳이 공시자료를 확인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프랜차이즈 업체나 지역별 상세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몇 개 지역의 배달비를 비교한 데이터는 지역과 기상 상황, 시간대별로 계속해서 달라지는 현실의 배달비 정보와 동떨어진다.
당초 배달비 가격조사는 소비자가 직접 배달비를 비교하는 수고스러움을 덜어주겠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소단협은 “단일 배송, 구독 서비스 제공 등 배달 환경조건이 변화되고 있으나, 소비자가 지불하는 배달비에 대한 정보 제공은 매우 한정적이어서 소비자들의 가격 비교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배달비 가격조사 도입 배경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소단협도 두 번의 배달비 조사 후에는 “단순히 배달 거리에 따라 배달비가 책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소비자는 최소 2개 이상의 배달앱이나 배달 서비스 특징을 비교해 선택할 필요가 있다”며 가격 비교의 몫을 소비자에게 돌렸다.
공시제 시행 전 긴장했던 배달업계도 이제는 시큰둥한 분위기다. 한 배달업체 관계자는 “공시제 시행 후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앱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정보라 소비자 사이에서 큰 반응이 없고 여론도 없는 상황이라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 배달비 가격조사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문제”라며 “소비자가 많이 본다면 어느 정도 배달업체에 긴장감을 심어줄 수 있다. 지금은 일부러 찾아보려 해도 찾기 힘들다 보니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배달비 가격조사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배달 업계의 정보 공개도 필요하다. 소단협 측은 “처음 배달비 가격조사를 기획할 때는 업체 측에 배달비 정보를 공유받는 방향으로 구성했으나 여러 노력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인적 조사(조사자가 앱에 들어가 배달비 확인)로 운영하게 됐다”면서 “처음 기획과 달리 인적 조사로 운영되다보니 정보력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배달 업계는 소단협의 정보 요청 방식 등을 이유로 들며 정보 공개를 피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배달업계 관계자는 “소단협에서 요청한 정보 제공 방식이 있었는데, 해당 방식은 앱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업계에서 거절하게 됐다”며 “다른 방식의 정보 요청을 받으면 검토해볼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소단협은 “앱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방식 외에도 다른 방식의 정보 요청을 모든 업체에게 보냈으나 거절했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배달앱 업체에 정보를 요청해 보다 많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소비자에게 더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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