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 올해로 서른세 번째 해를 보내고 있는 대선배 허블 우주 망원경이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역사적인 관측을 해냈다. 허블이 볼 수 있는 우주의 거의 끝자락에 놓인, 가장 먼 거리의 별을 포착한 것이다! 이 별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은하들보다도 더 멀리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난 뒤 고작 9억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초기 우주의 별빛을 담았다! (현재 우주 나이를 백 살로 친다면 겨우 여섯 살 정도 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담아낸 셈이다.)
허블 망원경이 포착한 가장 먼 우주의 별은 어떤 모습일까? 이 흐릿한 모습이 정말 별인지 어떻게 알까?
보통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머나먼 초기 우주의 천체는 막대한 에너지를 토해내는 퀘이사 같은 천체들이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별과 은하들은 훨씬 어두워 보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별, 은하들이 이런 먼 거리에 있으면 그 모습은 어지간해선 보기 어렵다. 그래서 먼 거리의 초기 우주를 보면 훨씬 막대한 에너지로 밝게 빛나는 천체들만 보게 된다.
그런데 아주 절묘한 행운이 따라준다면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비교적 어두운 천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바로 우주의 휘어진 시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주에 있는 모든 질량 덩어리들은 자신의 중력으로 주변 시공간을 휘어놓는다. 그 주변의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빛이 날아가면 빛의 경로도 함께 휜다. 렌즈를 통과한 빛의 경로가 휘어지듯이 육중한 천체의 중력 자체가 거대한 렌즈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 현상을 중력 렌즈라고 한다.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천체와 지구 사이에 또 다른 육중한 은하단이 하나 놓여 있다고 생각해보자. 먼 배경 천체에서 날아오는 빛은 중심에 있는 은하단 주변 시공간을 지나면서 경로가 휘어진다. 여러 방향으로 휘어진 배경 천체의 빛이 지구를 향해 모이게 되면, 볼록렌즈를 통과한 빛이 한 초점에 모이면서 밝아지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중력 렌즈 효과 덕분에 먼 배경 천체의 빛이 더 밝게 증폭되는 것이다. 덕분에 먼 거리에서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어야 할 배경 천체가 훨씬 더 밝은 모습으로 밤하늘에 나타난다.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중력 렌즈의 증폭 효과를 활용해서 우주 끝자락에 놓인 희미한 최초의 별과 은하의 모습을 담아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재이온화 렌징 은하단 서베이(RELICS, Reionization Lensing Cluster Survey)다.
빅뱅 이후 약 4억 년간 우주에는 그 어떤 별이나 은하도 존재하지 않았다. 스스로 빛나는 것이 전혀 없는 암흑기였다. 빅뱅 이후 약 6억 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우주의 물질이 모이고 반죽되어 태초의 별과 은하가 탄생했다. 초기 우주엔 아직 수소와 헬륨과 같은 아주 가벼운 원소들만 존재했다. 이런 가벼운 재료로만 만들어진 태초의 별들은 오늘날의 별들에 비해서 훨씬 뜨겁고 밝게 타올랐다. 그 강렬한 별빛은 순식간에 다시 우주의 원자들을 양성자와 전자로 떼어내 우주를 이온화해버렸다. 바로 이때가 재이온화 시기다.
천문학자들은 이 시기 별빛의 모습을 담기 위해, 그간 허블 우주 망원경을 통해 확인된 중력 렌즈 현상을 일으키는 은하단 41개 주변 우주를 분석했다. 이 중에는 지구에서 약 78억 광년(적색편이량=0.566) 정도 떨어진 은하단 WHL0137–08이 있다. 이 은하단 사진을 보면 오른쪽에 두 개의 먼 배경 은하가 왜곡되어 길게 늘어난 모습으로 찍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오른쪽 아래에 눈에 띄게 길게 중력 렌즈 효과를 겪어서 늘어난 은하를 찾을 수 있다. 지구의 하늘에서 무려 15” 각도로 늘어진 모습이다. 은하 WHL0137-zD1는 그 둥글고 길게 늘어난 모습 때문에 ‘썬라이즈 아크(Sunrise arce)’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길게 늘어난 은하의 이미지 속에 그 은하 속 한 별의 별빛이 숨어 있었음을 발견했다.
천문학자들은 이 은하단 속에 은하들과 질량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그 주변에 다른 배경 천체들의 모습이 얼마나 일그러지고 왜곡되어 나타나는지를 분석해서 이 은하단 전체가 주변 시공간을 얼만큼 휘게 만드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 렌즈의 지도를 그렸다. 이번 연구에서는 네 가지 서로 다른 알고리즘을 활용해서 이 은하단 주변의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배경 별과 은하들의 이미지가 어디에서 보여야 할지를 계산했다. 놀랍게도 서로 다른 네 가지 기법 모두 정확히 똑같은 자리에서 한 머나먼 배경 별의 왜곡된 이미지가 보여야 한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아주 머나먼 거리에 놓인 한 별의 허상이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별빛은 우주가 겨우 9억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암흑기가 막 끝나고 깜깜하던 우주를 처음으로 밝게 비추며 재이온화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절에 날아온 별빛이다. 천문학자들은 새롭게 발견한 초기 우주의 별에게 ‘에렌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는 고대 영어에서 ‘아침에 떠오르는 샛별’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우주의 암흑기를 끝내고 처음으로 우주를 밝게 비추며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게 해준 별이라는 아주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보통 중력 렌즈를 통해 먼 배경 천체의 빛이 증폭되면 원래 밝기보다 50~100배 정도 더 밝아진다. 그런데 이번 경우엔 그 효과가 더욱 강력했다. 먼 배경 별과 렌즈 역할을 하는 은하단이 절묘한 위치에 배열한 덕분에 우주 끝자락에 놓인 에렌델의 희미한 별빛이 무려 천 배 가까이 더 밝게 보이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증폭된 결과가 사진 속의 흐릿한 모습이다. 그나마 우연히 벌어진 이 극단적인 중력 렌즈 효과 덕분에 에렌델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이 얼룩이 정말 먼 우주의 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은하인지, 그 무엇도 아닌 잔상이나 얼룩인지를 어떻게 확인했을까?
중력 렌즈 효과를 통해 길게 왜곡되고 일그러진 별빛의 모습을 한데 모아서 일그러지기 전의 원래 모습으로 다시 복원하는 디렌징 기술 덕분에 가능하다. 천문학자들은 이 은하단이 주변에 얼마만큼 중력 렌즈 효과를 일으키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역으로 적용하면 중력 렌즈 효과가 없었을 때 원래 별빛의 전체 밝기와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 계산 결과 에렌델은 허블이 관측한 자외선 파장 영역에서 절대등급 -10등급 정도의 아주 밝은 단일 별로 추정된다. 천문학자들은 에렌델의 대략적인 전체 밝기 범위를 다양한 질량을 가진 별의 진화 모델과 비교해 에렌델이 어느 정도로 뜨겁고 무거운 별일지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에렌델은 태양 질량에 비해 최소 50배에서 최대 100배의 질량을 가진 아주 덩치 큰 뜨거운 별로 추정된다.
이 육중한 질량은 초기 우주에 존재했을 거라 기대하는 태초의 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정도면 표면 온도 8000~6만 도 사이의 온도로 밝게 빛나고 있는 O형, B형, A형 별 중 하나로 추정된다. 물론 에렌델이 별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단일성이 아니라 별 두 개가 함께 바짝 붙어 돌고 있는 쌍성일 가능성도 있다. 거리가 워낙 멀고, 중력 렌즈를 통해 길고 희미하게 일그러진 형체만을 관측할 수 있기에 당장은 쌍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지난 3년 반 동안 쭉 관측한 결과 에렌델이 눈에 띄는 밝기 변화를 거의 보이지 않은 채 일정한 밝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중력 렌즈를 통해서 이렇게나 먼 거리의 별이 포착되는 경우, 갑자기 밝아지며 폭발한 초신성 같은 별들일 경우가 많다. 거리가 아주 멀기 때문에 갑자기 아주 밝게 폭발하며 빛나는 별들이 쉽게 포착되는 것이다. 별다른 밝기 변화 없이 쭉 같은 등급으로 빛나고 있는 에렌델은 그저 덩치만 아주 큰 평범한 별로 보인다.
에렌델, 이 별은 그 어떤 것도 밝게 빛나지 않던 깜깜한 우주를 지나, 우주가 통째로 이온화될 정도로 별들이 지나치게 밝게 빛나며 우주의 눈부신 아침이 서서히 끝나가던 무렵에 존재했다. 우주가 지금 우리가 아는 이 모습이 되기 직전에 존재했던 별이다. 태양 50배 이상의 육중한 질량을 가진 에렌델은 수천만 년의 짧은 수명이 이미 다했을 것이다. 사라지고 없을 이 태초의 별빛의 잔상을 130억 년이 지난 지금 지구에서 흐릿하게나마 바라보고 있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b5a8b/pdf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2-04449-y
https://esahubble.org/images/heic2203b/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8-0430-3
https://www.nasa.gov/feature/goddard/2018/hubble-uncovers-the-farthest-star-ever-seen
https://www.nasa.gov/feature/goddard/2016/hubble-team-breaks-cosmic-distance-record
https://www.nasa.gov/mission_pages/hubble/science/hd140283.html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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