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 성북구 장위10구역 재개발조합이 사랑제일교회(담임목사 전광훈)를 빼고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교회가 563억 원의 보상금을 요구하며 버티기에 들어가 사업이 지연되자 새로운 돌파구로 ‘교회 제척안’을 꺼내든 것이다. 교회가 재개발 구역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탓에 사업 손해액이 910억 원으로 추산되고 사업 지연도 피할 수 없지만 더 이상 사업 진행을 미룰 수는 없다는 게 조합 측의 입장이다. 2008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기약 없이 표류한 사업이 2년간의 명도소송 끝에 긴 터널의 끝을 빠져나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3월 28일 찾은 장위10구역은 간간이 지나는 행인 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이 구역은 2017년 7월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주민 대부분 이주를 마쳤다. 90% 이상 철거도 완료한 상태다. 활기가 사라진 구역 안쪽으로는 지난해까지 6차례의 명도집행을 무산시킨 사랑제일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장위10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은 서울 성북구 장위동 일대에서 공사비 3698억 원, 총 2004세대 규모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만여 가구가 들어서는 장위뉴타운 내에서도 6호선 돌곶이역과 가깝고 평지에 위치해 사업성이 우수한 곳으로 꼽힌다.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아 사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됐으나 구역 내에 터를 잡고 있는 사랑제일교회와 철거 및 보상 문제가 장기화되자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합은 승부수를 띄웠다. 사랑제일교회를 제척하고 사업을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으면서다. 1월 18일 조합원 총회의 사전절차인 대의원회 표결에서는 대의원 55명 중 51명이 교회 제척 안건에 찬성했다. 2월 임시총회에서는 회의에 참석한 조합원 380명 중 323명의 찬성으로 이 안건이 통과됐다.
#‘560억 요구’ 거부…910억 손해 감수하는 까닭
사랑제일교회가 요구하는 보상금은 563억 원. 2008년 4월 정비구역 지정 당시 서울시가 책정한 보상금은 82억 원이다. 조합은 현금청산액 84억 원에 신축교회 건축비 등 63억 원, 대토보상금 100억 원 등을 고려한 약 250억 원의 보상금을 제시한 바 있다.
명도집행 방해와 협상 결렬이 반복되자 조합은 사랑제일교회를 존치한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조건의 득실을 따지기 위해 타당성조사에 나섰다. 추정 손해액은 약 910억 원. 개발 면적 축소에 따른 손실 230억 원과 공사 지연에 따라 발생하는 대출 이자 680억 원이다. 교회를 그대로 두고 사업을 진행한다는 말은 곧 사업 구역에서 교회부지를 제외하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사업 구역의 설계를 변경해야 하고 서울시 등 관계 기관으로부터 인허가를 다시 받는 절차로 사업 지연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조합은 땅값 상승으로 일반 분양가가 오르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끝내 교회와의 협상 결렬로 ‘교회 제척안’이 번복 없이 추진된다면 교회에 이미 지불한 보상금 84억 원도 회수할 수 있다. 다만 조합이 교회 제척안만을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조합 측이 교회와의 협상 가능성 자체를 닫아 놓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법원까지 조합 손 들어줬지만 명도집행 ‘좌절’…사업 재개 꿈 실현될까
조합은 일찌감치 종교시설용 부지에 구역 내 위치한 2곳의 교회를 포함하도록 설정한 바 있다. 소송전은 사랑제일교회가 서울시 책정 보상금 6.8배에 달하는 보상금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조합은 사랑제일교회 측에 명도소송(부동산의 권리자가 점유자를 상대로 점유 이전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5월 1심과 2021년 10월 항소심에서 법원은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최종적으로 2022년 1월 13일 대법원이 교회 측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조합은 교회가 인도 명령을 불응할 경우 강제 철거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법적인 결론만으로 사업 재개에 기대를 걸 수는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구역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A 씨는 “철거를 진행하려고 할 때마다 난리가 난다. 10년 넘게 지지부진한 재개발 사업으로 주민들은 지친 상태다. 어떤 방식이든 신속하게 추진됐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크다”고 말했다.
새벽부터 진행된 강제집행은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해 11월 6번째로 시도된 강제 집행 현장에는 경찰 500여 명과 집행 인력 300명이 배치됐지만 교인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며 진전 없이 마무리됐다. 조합도 더 이상 사업 진행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교회 제척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공동 발의 형식을 통해 조합장 해임과 제척안 번복을 주장한다. 교회를 제척하고 진행한다 해도 교회가 사업 진행을 방해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설계 변경으로 기간이 길어져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로 꼽았다. 공동 발의자 B 씨는 “어느 조합이든 계획한 일정 안에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체 설계 변경으로 조합 측이 말하는 2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소요돼 기간 손실이 엄청날 것”이라며 “제척에 찬성한 주민들도 협상이 가능하다면 협상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최고의 방법은 협상”이라고 말했다.
건축업계 관계자는 “사업 구역 중앙에 위치한 교회를 두고 사업을 추진하는 게 까다로운 것은 맞다. 하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며 “사업 진행 중 예상치 못한 이유로 지연되는 경우 많다. 실제 사업이 계획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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