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닥치고 내 돈 가져가세요.” 이 말은 2021년 유럽 핀테크 스타트업 투자자들의 태도를 요약한 것이다. 그만큼 핀테크가 대세였고 투자자들은 그 가능성에 지갑을 열겠다고 앞다투어 나섰다. 전 세계적인 핀테크 열풍, 유럽 스타트업계에서는 어느 정도였을까?
먼저 2021년 유럽에서 밸류에이션이 가장 높은 스타트업 Top 3가 모두 핀테크 스타트업이었다. 클라르나(Klarna), 체크아웃닷컴(Checkout.com), 리볼트(Revolut)는 유럽 스타트업 출신 유니콘 중 차례로 가장 높은 기업가치 평가를 받았고, Top 10에 있는 독일의 디지털 뱅킹 N26, 스웨덴 핀테크 회사 트러스틀리(Trustly)까지 고려하자면, 기업가치가 가장 높은 총 10개의 회사 중 5개가 핀테크 회사였다.
핀테크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열기 때문에 한때는 ‘핀테크 거품’설도 있었지만 큰 흐름에서 추이를 살펴보자면 핀테크가 매력적인 분야인 것은 확실하다. 지나치게 행정편의주의적인 유럽 은행의 보수성은 오랫동안 사용자에게 불편함을 안겨주었다.
이 때문에 앱을 사용해서 간편하게 가입이 가능한 디지털 뱅크들이 세상의 흐름을 주도했다. 각국 규제 기관도 핀테크에 우호적이었다. 영국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핀테크를 영국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채택해 규제를 완화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육성 정책을 펼쳤다. EU에서도 기존 금융규제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신기술 발전을 저해한다고 여겨 기존 금융 규제체계에 포섭되지 않는 기술을 시험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 샌드 박스 등을 도입했다. 모두가 유럽 핀테크의 편이었다.
#유럽 핀테크 유니콘 Top 3 뜯어보기
이런 핀테크 열기에 코로나가 불을 붙였다. 이전에 디지털이나 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던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비대면·비접촉식 결제를 사용하게 되면서 다른 방식의 금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스톡홀름에 기반을 둔 핀테크 스타트업 클라르나(Klarna)는 최근 금융 시장의 핫한 키워드로 떠오른 ‘선구매 후결제(BNPL, Buy Now Pay Later)’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특히 유럽에서 BNPL의 성장을 주도했다고 평가 받는다. 기존 신용카드는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수수료를 받는 것이 수익 모델이었기 때문에 시장과 고객 모두에게 불편한 지점이 있었다.
그러나 클라르나는 소비자들의 식별번호와 이메일 주소 등 최소한의 개인정보만으로 훨씬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며, 청구서 도착 14일 또는 30일 후 송금이나 카드 결제 등 원하는 방법으로 지불하면 된다. 판매자에게는 판매와 동시에 물건 대금을 클라르나가 선지급하기 때문에 정산 시점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 현금 흐름을 원활히 만들어준다. 수수료도 기존 카드사보다 낮아 많은 판매자들이 클라르나로 결제 방식을 변경했다. 2008년 유럽에서 시작해 2015년 미국 진출 후 20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한 클라르나는 이제 유니콘의 10배 가치를 가진 ‘데카콘’ 기업의 대표적인 예로 떠올랐다.
두 번째로 큰 기업가치를 자랑하는 스타트업은 영국의 체크아웃닷컴(checkout.com)이다. 체크아웃 닷컴은 국경 간 결제수단 통합 플랫폼 기업이다. 쉽게 말해 온라인으로 해외직구를 할 때 카드사, 판매사, 결제사 등을 거치면 다양한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체크아웃닷컴은 결제 과정을 통합하고 단순화해서 수수료를 줄여준다. 소비자로서는 수수료가 적고 익숙한 결제 수단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다.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애플페이, 페이팔 등 20여 개의 결제 수단과 159개국에서 사용하는 통화를 다루고 있어 범국가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체크아웃닷컴은 기업가치가 무려 400억 달러에 달한다. 최근에는 10억 달러의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해 웹3.0 차세대 핀테크 솔루션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웹3.0은 그간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등 플랫폼 서비스가 주도하던 경제 구조를 탈중앙화해 수익을 사용자와 창작자에게 나눠주는 흐름이다. 따라서 웹3.0 기업들은 플랫폼 참여자들이 플랫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단순한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체크아웃닷컴은 탈중앙화 개념을 이끌어가며 핀테크 기업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세 번째로 큰 기업 가치를 가진 핀테크 스타트업은 레볼루트(Revolut)다. 영국 핀테크 회사 레볼루트는 전 세계 약 1600만 명의 사용자들에게 은행, 투자, 송금 등의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작년에 8억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약 33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레볼루트는 단순한 은행 앱처럼 보이지만 없는 게 없는 만물상이다. 캐시백 서비스, 암호화폐 거래, 명품 할인, 공항 라운지 사용권 제공, 보험 상품 제공 등 분야를 넘나든다.
특히 해외 출장과 여행을 많이 다녔던 창업자 니콜라이 스토론트스키(Nikolay Stronsky)는 금융 세계에 존재하는 국경 때문에 불필요하게 거치는 중간 단계 수수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실제로 레볼루트는 환전 수수료 없이 실시간 송금 서비스를 제공해 일반 소비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러시아 출신으로 영국 국적을 가진 니콜라이 스토론스키는 우크라이나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레볼루트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사업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200만 달러(약 24억 원)을 기부하기로 해 화제가 되었다.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2158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데, 이번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직원들과 가족들의 이주를 지원하고, 우크라이나 은행에 송금하는 사람들에게 이체 수수료를 모두 면제해줬다.
#핀테크를 키우는 액셀러레이터와 인큐베이터
유럽에서 핀테크가 급속도로 성장한 배경에는 투자자들의 활발한 투자도 있지만, 투자에 이르기까지 스타트업을 끌어주는 액셀러레이터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중에서도 유럽에서 시작된 의미 있는 액셀러레이터를 소개한다.
먼저 ‘액셀러레이터 프랑크푸르트(Accelerator Frankfurt)’다.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명실상부 유럽 금융 허브로 급부상했다. 그곳에 위치한 액셀러레이터 프랑크푸르트는 핀테크, 레그테크(규제 관련 기술스타트업), 보안, 인슈어테크, 프롭테크, 블록체인 분야 등 금융 분야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액셀러레이터 프랑크푸르트에서는 3개월간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업무를 볼 수 있는 공유 사무실 공간을 지원해주고 전문가·투자자로부터 멘토링과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데모데이로 3개월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데, 이후 후속 투자를 유치할 기회를 얻게 된다.
코펜하겐 핀테크(Copenhagen Fintech)는 코펜하겐을 글로벌 핀테크 허브로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다. 파트너, 스폰서, 회원 등으로 참여할 수 있고, 공공 기관뿐만 아니라 금융 관련 대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어 스타트업이 기존 산업 전문가들과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16년 설립된 코펜하겐 핀테크에서는 인큐베이션 프로그램(Incubation Program), 글로벌 스케일업 프로그램(Global Scaleup Program), 노르딕 패스트 트랙 프로그램(Nordic Fast Track Program), 파트너십 액셀러레이터(Partnership Accelerator)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중에서 노르딕 패스트 트랙 프로그램은 덴마크 이외 지역의 스타트업이 북유럽 시장에 핀테크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을 때 시장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은행 하면 떠오르는 나라 스위스에도 핀테크 스타트업을 돕는 혁신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F10 핀테크 인큐베이터&액셀러레이터다. 스위스 취리히뿐만 아니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싱가포르에 로컬 허브를 두고 있어 유럽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까지 진출했다. 스위스 증권거래소와 스페인 증권거래소를 운영하는 스위스 금융 기업 SIX 그룹이 지원한다.
F10은 기술 스타트업이 기존 금융 회사와 보험회사에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한다. 2015년 설립해 지금까지 200여 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거쳐갔고, 2억 달러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탈리아에 기반을 둔 글로벌 보험 회사 제너럴리(Generali)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PwC 등 세계 유수 기업들이 F10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의 황금기는 비단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토스나 카카오뱅크가 기존 은행에 자극을 주어 전통 산업의 강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핀테크 스타트업의 발전은 전반적인 금융 산업의 혁신을 예고한다. 반대로 기존에 금융회사가 아니던 기업들도 자사 상품에 금융 상품을 내재화해 판매하는 임베디드 금융(Embedded Finance)도 발달한다. 테슬라가 자동차 시스템에서 수집되는 실시간 정보를 바탕으로 운전자의 사고위험과 수리비용을 정확하게 예측한 자체 보험 상품을 제공하는 ‘임베디드 보험’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은행과 은행 아닌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국가 간 금융의 경계가 무너지는 모습도 서서히 관찰된다. BNPL 서비스는 그동안 신용거래가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네오뱅크는 계좌를 만들기 어려운 사람에게 금융 서비스와 대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는 핀테크 스타트업에게서 세상의 ‘판’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엿보이는 이유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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