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비상장기업 투자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다. 유망한 비상장기업을 발굴해 선투자하면 기업공개(IPO) 이후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경우 대부분 이런 ‘대박’을 노린다. 그러나 비상장기업이 IPO에 실패해 투자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지거나, 경영진과의 불화로 각자 갈 길을 가고자 한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상장기업의 경우 주식을 주식시장에서 거래하기 때문에 주식을 매도하고 투자금을 회수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비상장기업의 경우에는 매수희망자를 찾기 어렵고, 주식을 향한 객관적인 가치 평가가 어려워서 주식 매도를 통한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 더구나 투자자가 소수 주주인 경우 회사에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고,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서 배제된다. 결과적으로 투자자인 소수 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리기는커녕 대주주에게 주식을 헐값에 처분하고 물러나게 된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투자자가 요구하는 조건 중 하나로 ‘드래그얼롱(drag-along‧동반매도요구권)이 있다. 드래그얼롱이란 투자가가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 대주주 지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끌어와(drag) 한꺼번에 제삼자에게 매도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지분을 한꺼번에 매각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수 주주가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해 대주주 지분까지 함께 매도하면 주식을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은 높은 가격으로 매각해 투자금을 쉽게 회수할 수 있다. 비상장기업에 소수 지분으로 투자한 경우 드래그얼롱은 투자자에게 효과적인 엑시트 수단이 된다.
그러나 대주주 입장에선 드래그얼롱이 달갑지 않다. 드래그얼롱을 행사하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분이 처분돼 경영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드래그얼롱은 실질적으로 자금 회수 수단이라기보다 지배주주 압박 수단에 불과하며, 드래그얼롱은 엄격한 조건에서만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드래그얼롱에 대해 투자자와 대주주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언론에서도 드래그얼롱에 관한 상반된 시각을 볼 수 있다. 어떤 기사에서는 투자 활성화와 소수 주주 보호를 위해 드래그얼롱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다. 다른 기사에선 드래그얼롱을 쉽게 허용하면 조기 상장을 압박해 회사의 정상적인 경영을 해치게 된다고도 한다.
최근 법원 판결에서도 대립되는 시각이 나온다. 투자자 A는 자신이 투자한 B 회사의 IPO가 좌절되자 드래그얼롱을 행사해 자신의 주식은 물론 대주주 C의 주식도 매각하고자 했다. 투자자 A는 매각절차를 개시해 매각 자문사를 선정하고 대주주 C에게 인수 의향서를 전달하며 투자소개서 작성을 위한 자료 제공을 요청했지만 대주주 C는 자료 제공을 거절했다.
그러자 투자자 A는 매각절차 협조는 동반매도요구권 행사 조건인데, 대주주 C가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의 성취를 방해했으므로 민법 제150조 제1항에 따라 주식 매매계약 체결이 의제되고 대주주 C는 매매대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안을 두고 서울고법은 대주주 C가 매각절차에 협조할 의무가 있는데도 정당한 자료제공 요청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응하지 않고 불충분한 자료만을 제공해 협조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대주주 C의 협조의무 위반은 동반매도요구권 행사의 조건이 되는 매수예정자와 매각대금 결정의 성취를 방해한 것으로 봤다. 따라서 방해 행위가 없었다면 조건이 성취됐을 때 매매계약 체결이 의제되고, 대주주 C의 매매대금 지급의무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 2018다223054 판결은 다르게 봤다. 대주주 C의 협조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매매계약 체결이 의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투자자 A가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사전에 매각금액과 거래조건을 제기한 매수예정자를 결정해야 하는데, 매수예정자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라면 동반매도요구권 행사만으론 대주주 C가 누구에게 주식을 얼마에 매각하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매수예정자, 매수대금 등 거래조건이 정해지지 않은 이상 투자자 A는 드래그얼롱을 제대로 행사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매매계약 체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 판결을 두곤 반박이 나온다. 거래조건을 정하지 않으면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은 법리적으로 틀렸다고 보기 어렵지만, 제공된 자료에 기반해 실사를 진행한 후 매수예정자를 결정하는 일반적인 M&A 과정을 생각해보면 회사가 자료 제공을 거부했을 때 M&A 절차가 진행될 수 없다는 거다.
즉 투자자 A가 M&A 과정에서 매수예정자와 매수대금을 확정하지 못한 건 대주주 C가 자료 제공에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이유로 동반매도요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고 보는 건 투자자 보호조치로서의 드래그얼롱 행사를 무력화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대법원 판결은 드래그얼롱을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에서 내려진 판결이라 볼 수 있다.
투자자는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원론적인 대응방안으론 계약서에 상대방 협조의무를 일일이 규정하는 것이 있다. 특히 자료제공, 실사협조 의무 등은 반드시 계약서에 명시해야만 상대방의 의도적인 시간끌기나 악의적인 무력화 시도에 대응할 수 있다.
또한 투자 계약서를 작성할 때 상대방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고려해 ‘최대한 노력한다’, ‘협조하기로 한다’는 등의 문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차후 계약위반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문구를 지양하고 상대방의 의무사항을 명료한 언어로 기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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