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시가 새로 짓는 아파트 높이를 최대 35층으로 제한한 규제를 없앤다. 아파트와 하늘이 만나는 선(스카이라인)을 외국 도시처럼 다변화하겠다는 구상인데, 일각에서는 아파트 높이 기준 폐지가 고층 주택을 양산해 분양가 상승과 일조권 침해를 부추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 아파트 높이 기준은 고 박원순 시장이 만든 대표적인 건축 규제다. 고층 건물이 한강이나 남산 등 서울 핵심 경관을 헤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2013년 처음 도입됐다. 아파트에 적용된 35층 높이는 해발 100~120m 수준으로 2009년 한강변 초고층 건축이 허용되던 시절 건립된 아파트의 최고 층수이자 서울 남산의 소월길과 낙산을 넘어서는 높이다.
#‘스카이라인 다변화’ 서울시 아파트 35층 규제 폐지
서울시는 지난 3일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신규 아파트 높이를 최대 35층으로 제한한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전역에 정량적으로 적용하던 높이 기준을 정비계획 심의과정에서 사업지별로 정성평가하겠다는 취지다. 건축물 높이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인 용적률은 일반 주거지역 기준 최대 300%(인센티브 적용 시)를 유지하기로 했다.
서울시가 규제 폐지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스카이라인이다. 그간 아파트 층수 기준 때문에 서울 아파트와 하늘이 만나는 선이 천편일률적으로 조성됐다는 것. 기존 용적률을 유지한 채로 높이 규제를 풀면 같은 밀도에서 높고 낮은 건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돼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이 연출될 것이란 구상이다.
아파트 높이가 높아지면 주거 환경을 일부 개선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사업지에 폭이 좁고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 건물이 차지하는 바닥 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파트 단지에 바람길과 녹지가 생겨날 여지가 있다. 폭이 좁은 건물이 넓은 간격으로 배치되면 한강과 같은 경관을 조망할 공간도 확보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뚝섬유원지에서 잠실 쪽을 보면 칼로 두부나 무를 잘라놓은 듯 높이가 똑같은 아파트 단지를 꽤 볼 수 있다”며 “반면 광진구 쪽을 보면 높낮이가 조화롭게 배치된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는데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통해 그런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규제 폐지로 분양가 상승·조망권 침해 우려도
스카이라인 다변화라는 규제 폐지 명분이 허황되다는 반론도 있다. 일반 주거지역에서 허용되는 최고 수준인 용적률 300%와 건폐율 20%를 기준으로 아파트를 지었을 때 평균 층수는 15층이기 때문이다. 최고 층수 35층은 각 동의 높이에 변화를 줄 여지가 있는 수준이라는 것. 이는 서울시가 2017년 아파트 높이 규제를 새롭게 발표할 당시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서울시가 35층 높이 규제를 만든 이후 동별로 다양한 높이를 가진 아파트 단지가 여럿 등장했다. 용적률 300%와 35층 높이 규제에서 스카이라인을 다변화하는 것은 산술적으로도 가능하다”며 “그보다는 그간 층수 규제로 최대 용적률을 적용받지 못하던 단지들이 용적률을 늘리고 단지를 고급화하기 위해 앞다퉈 층수를 높이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높이 규제 폐지로 고층 아파트가 늘어나면 분양가가 오를 우려도 있다. 같은 면적을 시공하더라도 아파트가 높을수록 공사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분양가상한제 적용주택의 경우 41층~45층의 기본건축비는 31층~35층보다 ㎡당 86만 원(4%, 60㎡초과~85㎡이하 기준) 비싸다. 아파트는 아래층 골조가 완성돼야 위층 공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층을 여러 동 지을 때보다 공사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고층 아파트는 고강도 콘크리트 등 비싼 자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고층에 자재와 인력을 투입하는 데에도 일반 아파트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 아파트는 콘크리트 양생 기간을 고려해 아래층 골조가 완성돼야 위층 공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공사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며 “사업기간이 늘면 건설기계 임대료가 올라가고 사업시행자는 대출 이자를 부담하는 기간이 늘게 된다. 이런 비용이 모두 분양가 상승 요인”이라고 전했다.
인근 건축물에 대한 조망권과 일조권 침해도 불가피하다.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고층 아파트는 건축면적이 줄어든 만큼 녹지나 바람길을 조성할 수 있지만, 높이가 높아진 만큼 인근 건축물의 일조권이나 조망권을 침해하게 된다. 대단지의 경우 층수를 최고로 올렸을 때 이 같은 문제가 크게 불거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여전히 용적률 제한이 있기 때문에 대단지가 아니고서는 아주 높은 층수의 아파트가 등장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렵다. 실제 아파트 층수는 정비계획 심의 과정에서 주변과 조화로운 범위에서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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