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코로나19 확산 이후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음료 한잔, 과자 하나를 먹을 때도 영양성분을 확인할 정도.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지난해 11월 ‘식품등의 표시기준’을 개정하며 식품 정보 표시 강화에 나섰다. 개정안에는 점포수 100개 이상인 프랜차이즈형 식품접객업소(커피전문점·베이커리 등)에서 판매하는 카페인 함유 제품의 총 카페인 함량과 주의문구 표시 기준 마련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업소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메뉴에 고카페인 표시를 하고 매장이나 홈페이지의 메뉴 이름·가격 주변에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안내해야 한다.
임산부 등 음식 섭취에 주의해야 하는 소비자에겐 반가운 소식이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영양성분 표시를 업체가 자율적으로 하는 권고 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량·당류·나트륨·단백질 등 함량을 표시할 의무는 없다. 카페인 함량 표시도 마찬가지. 식약처도 “표시 규정은 권고 사항으로 영업자가 용기·포장재고 등 상황을 고려해 적용할 수 있다”며 “카페인 표시값이 허용오차 범위를 초과해도 행정처분 대상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최근 저가커피 프랜차이즈 메가커피는 홈페이지에 밀크티 제품의 카페인 함량을 1회 당 0㎎으로 표시했다가 소비자 문의에 뒤늦게 113.7㎎으로 수정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불거졌다. 메가커피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형 커피 브랜드 대다수가 매장과 홈페이지에 영양성분을 표시하는 것과 달리, 저가 커피 브랜드는 빽다방‧더벤티 등 일부 업체를 제외하곤 표시한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커피전문점만 영양성분 표시를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생과일주스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인기가 높은 프랜차이즈 업체 쥬씨는 2020년 기준 매장 수가 447개에 달해 식품 표시기준 대상에 해당된다. 생과일주스뿐만 아니라 커피도 판매하지만 쥬씨는 매장이나 홈페이지 어디에도 영양성분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쥬씨 측은 “자율적인 사항이라 표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과일주스의 당류 함량이 상당히 높아 건강상의 이유로 성분을 신경 써야하는 소비자에게 불편을 준다는 점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이 2018년 서울시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생과일주스 한 컵(약 320㎖)의 평균 당류함량은 31.7g으로, 이는 각설탕 10개 분량에 해당한다. 성인의 하루 당류 적정 섭취기준은 50~100g으로, 식약처는 당류 섭취량이 50g을 넘지 않도록 권하고 있다. 생과일주스 한 컵을 마시면 하루 당류 섭취량의 평균 31.7~63.4%까지 섭취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생과일주스를 제조할 때 시럽을 함께 넣기 때문에 주스 한 컵의 당류함량은 과일 종류와 음료 사이즈에 따라 110g 이상까지도 늘어난다.
이처럼 업체가 자율을 내세워 표시를 소홀히 하면서 소비자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직장인 신 아무개(31)씨는 “친가 쪽에 당뇨병 내력이 있어 음식 섭취에 주의하고 있다”며 “최대한 과당이 적은 음료를 마시려고 하는데, 성분을 알 수 없는 곳에선 불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작가 김나연(29)씨는 “생활패턴이 불규칙해 커피뿐만 아니라 차를 마셔도 잠을 설친다”며 “생각보다 카페인이 들어가는 음료가 많은데 매번 확인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주스 등 일부 음료를 기억해두고 마신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소비자의 알 권리가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권고 준수가 쉽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의무가 아닐뿐더러 조사비용이 만만치 않다. 매장에서 만든 제품이 조사한 값과 함량 차이를 보이기도 해 업체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전체 제품에 성분을 표시하는 게 어렵다면 대표 제품에 한해서라도 기본 영양성분을 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카페인, 당류, 칼로리 등을 따지는 소비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규제하지 않더라도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만큼 일부라도 표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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