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2년간 뉴스를 점령한 ‘코로나’라는 단어를 쏙 들어가게 만든 큰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우크라이나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독일에 살고 있는 터라 그 위급성과 중대함을 새삼 느끼고 있다. 특히 유럽 전역에서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의 손길을 체감하고 있다.
UN에 따르면 약 140만 명이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떠났다. 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빠른 속도이자 가장 큰 규모로 난민이 발생했다. 유럽 각국은 발 빠르게 이들을 돕고 있다. 주변국으로 피난한 우크라이나 국민은 사회적 혜택, 교육, 체류 및 취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민간의 지원 또한 일찍부터 시작됐다. 학교에서는 부모들에게 단체 이메일을 통해 구급약, 침낭, 저장식품 등을 모아달라고 당부했고, 시민단체에서는 숙소, 음식 등 기본적인 지원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스타트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 스타트업들은 연대의 의미로 우크라이나에서 피난 온 스타트업 사람들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돕기 시작했다.
#‘전쟁이 꿈을 막아서는 안 된다’ 팩토리 베를린
지난 4일 베를린 최대의 스타트업 커뮤니티이자 코워킹스페이스인 팩토리 베를린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전쟁으로 인해 독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인이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통해 직업 기회를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은 6개월간 매월 150유로의 지원금과 코워킹 스페이스를 이용할 수 있는 무료 멤버십, 커뮤니티를 통한 고용기회 등을 제공하고 지원한다. 전쟁이 얼마나 장기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팩토리 베를린은 삶의 기본 조건이 되는 일자리와 일할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난민들의 꿈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연대를 표명했다.
#난민 지원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폴란드 VC리더스
VC리더스(VCLeaders)는 바르샤바에서 VC(벤처캐피털) 투자자를 양성하는 교육아카데미다. 펀드 구성,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 엑시트 등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예비 창업가들과 투자자들이 투자 생태계를 이해하게 하고 유럽 VC 생태계가 풍성하게 발전하도록 돕는다.
VC리더스는 전쟁 발발 일주일 만에 폴란드로 피난 온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숙박, 교통, 지원책 등이 담긴 웹페이지를 오픈했다. 지원책이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상황을 고려해 이 웹페이지는 손쉽게 공동작업 수정, 배포가 가능한 노션(Notion)으로 제작했다. 난민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어로 제작했으며, 기존 스타트업 네트워크를 활용해 SNS에 웹사이트 링크를 지속해서 배포하고 있다. 많은 난민이 베를린에 도착한 이후에는 베를린의 숙박, 교통, 의료, 법률 지원 등을 알려주는 웹페이지도 개설했다.
#‘열일’ 하는 운송 스타트업들
항공로가 모두 막힌 상태에서 난민에게 유일한 희망은 육로뿐이었다. 폴란드, 헝가리 등 주변국 자원봉사자들이 개인 차량으로 사람들을 운송하기 시작했고, 운송 분야 스타트업들이 함께해 힘을 실어주었다.
2011년 뮌헨에서 설립된 운송 스타트업 플릭스 버스(Flixbus)는 ‘독일 버스계의 우버’라고 불릴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제는 스타트업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상당한 어엿한 중견 기업으로 유럽을 연결하는 가장 합리적인 가격의 버스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플릭스 버스는 2019년 우크라이나에서도 영업을 시작해 국내선 29개, 국제선 70개를 운행 중이었다.
전쟁 발발 후 상황을 주시하던 플릭스 버스는 2월 25일부터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사람들을 이송하고 있다. 그 밖의 유럽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무료 버스 티켓을 발급하고, 국제적십자와 체코영사관 등과 협력해 버스 안에 물, 담요, 위생용품 등을 비치하거나 난민들이 있는 곳에 직접 운송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베를린 기반 카셰어링 스타트업 마일즈 모빌리티(Miles Mobility)는 오랫동안 긴급 구호단체 에이드 파이어니어즈(Aid Pioneers e.V.)와 협력해 노숙자들에게 점심을 나눠주거나 다양한 물품들을 운송하는 사회공헌활동을 해왔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구호 물품을 독일 내 난민이 있는 곳에 직접 배송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귀국항공권, 상담까지 지원하는 베를린 콘티스트
베를린 기반 핀테크 스타트업 콘티스트(Kontist)는 우크라이나 난민 채용에 가장 적극적이다. 콘티스트 사무실은 베를린에 있지만, 어느 곳에 있든 강제적으로 난민 생활을 시작하게 된 우크라이나인에게 100%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콘티스트는 채용된 직원에서 독일로 오는 항공권(가족 포함), 추후 전쟁이 끝나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을 경우 귀국 항공권, 독일 기준의 급여,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 치료와 상담, 30일 유급 휴가, 독일어 및 영어 수업, 피트니스클럽 회원권을 제공한다. 휴가 및 각종 교육 등의 혜택은 일반 직원과 동일하고, 항공권과 심리 상담은 우크라이나 난민 출신 직원에게만 제공하는 특별한 혜택이다.
#인종차별까지 겪는 흑인들을 위한 ‘블랙 인 테크’
이 같은 연대의 손길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분명 있다. 백인에 우크라이나 국적이라면 타국으로 피난 갔을 때 난민임을 증명하기가 어렵지 않을 테지만, 한편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우크라이나에 살았지만 우크라이나 국적자가 아닌 사람들, 특히 얼굴색이 다른 유색인종으로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다가 전쟁을 맞이한 사람들이 그렇다. 이번에도 난민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유색인종은 버스와 기차에 탑승하지 못하고 심지어 폭행을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베를린 테크업계의 흑인 그룹 ‘블랙 인 테크(Black in Tech)’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흑인 개발자와 스타트업 분야 전문가를 위한 커뮤니티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베를린으로 도착한 150명의 BiPoC(흑인·유색인종) 난민을 위한 숙소를 마련하기 위해 관련 커뮤니티의 행동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는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난민을 위한 특별한 지원이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유럽인들은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먼 것만 같아 보이는 테크·스타트업 분야의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이 사회에 왜 스타트업 정신이 필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사회에 필요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그들에게는 ‘지금, 여기의 문제 해결’이 곧 일이고 미션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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