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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기혼의 '격공'과 미혼의 '비혼의지'를 모으는 중 '며느라기2…ing'

우리 사회의 '솔직함'과 '무례함' 사이에서 고통받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워킹맘 그려

2022.02.28(Mon) 14:52:30

[비즈한국] 임신한 후배가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는 에피소드를 풀어 놓으며 그야말로 눈과 입에서 ‘불을 뿜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내뱉았다. “너··· 태교는 하고 있니?” 뱉는 순간 나도 아차 싶긴 했는데, 시즌2를 시작한 ‘며느라기2…ing’를 보며 다시금 반성했다. 내 오지랖 어떡하지. 쌍둥이 남매를 둔 친구의 남편이 주말 중 하루는 아이들을 돌보며 친구에게 휴식 시간을 준다고 했을 때도, 나는 무신경하게 감탄했다. “느이 신랑 너무 착하네!” 친구는 놀랍지 않다는 듯, 그러나 힘주어 대답했다. “자기 자식, 자기가 돌보는 건데 뭐가 그렇게 착해.” 나는 또 아차 싶었다.

 

SNS 웹툰 원작에서 드라마로 제작되며 여성, 특히 30대 여성에게 열렬한 공감을 얻고 있는 ‘며느라기’. 시즌2인 ‘며느라기2…ing’에서는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임신과 육아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현실을 짚는다.

 

카카오TV에서 방영하고 왓챠에서도 시청 가능한 ‘며느라기’는 2017년 수신지 작가가 SNS에서 웹툰으로 연재할 때부터 많은 여성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다. 평범한 직장인 여성 민사린이 대학동기 무구영과 결혼해 새댁이자 며느리가 되면서 어떤 변화를 겪는지, 미세먼지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내가 경험한 아차 싶은 순간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며 결혼의 현실을 그려내어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불린 작품이다. 카카오TV에서 2020년 11월부터 2021년 2월 초까지 20분 남짓한 중편 드라마 12부작으로 제작된 시즌1은 회차당 조회수 100만 뷰를 넘기고 누적 조회수 2700만 뷰를 달성했고, 올해 1월 8일 시작한 시즌2 역시 매주 300만 뷰 안팎의 조회수를 보이더니 벌써 2000만 뷰를 달성했다.

 

2~3년 뒤에 아이를 계획했던 민사린과 무구영. 계획에 없던 임신을 대하는 부부의 입장은 천양지차다. 마냥 기뻐하는 구영과 달리 ‘달라질 것이 많은’ 사린의 표정은 복잡다단하다.

  

‘며느라기’ 시즌1이 결혼한 민사린(박하선)이 남편 무구영(권율)의 집에서 며느리라는 정체성을 부여받고 뚝딱거리던 모습을 보여주다 ‘며느라기(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시기로, 시가 식구한테 예쁨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를 뜻한다)’를 벗어나려는 모습으로 끝났는데, 시즌2에서는 민사린이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며느리에 이어 엄마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으며 갑갑함은 곱절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모든 일들이 그다지 최악인 상황이 아닌 보편적인 상황이라는 거고, 7화의 부제처럼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

 

민사린은 인테리어 가구회사에서 제법 능력을 인정받는 대리. 그러나 임신을 발표한 순간부터는 프로젝트 PM을 맡은 민사린 대리가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임산부로 명명된다. PM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게 어떠냐는 부장은 물론이요, 사린과 함께 새로운 남편으로 탈바꿈하려고 노력 중인 구영 역시 사린에게 태아를 위해 굽 낮은 신발과 잉어즙과 태교 바느질을 권한다. 이 모든 것이 사린을 ‘차별’하려는 게 아니라(물론 회사 부장의 속내는 조금 복잡다단하지만) 사린과 사린이 품은 아이를 보호하려는 데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리고 사린이 임신을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도리어 겁내 하는 것도 이 과한 ‘보호’, 그중에서도 임신한 주체인 사린보다 사린이 품은 아이에 중점을 두는 보호에 있다. 회사 스트레스를 풀어 놓던 후배에게 태교 걱정을 했던 나처럼.

 

자신이 생각한 대로 결혼생활을 영위하던 사린의 동서 혜린은 ‘워킹맘’이 되면서 더 이상 시가에 ‘무 자르듯’ 대할 수가 없게 된다. ‘며느라기’는 아이를 돌보는 시어머니 기동의 힘듦은 적게 표현하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조부모의 ‘황혼육아’도 상당한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는 중이다.

 

임신뿐이면 차라리 다행인 게, 어린 딸을 키우는 사린의 동서 정혜린(백은혜)과 그의 남편 무구일(조완기) 부부의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결혼 초기부터 며느라기를 거부하며 본인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던 똑부러진 혜린이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는 툭하면 구해지지 않는 시터 대신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 박기동(문희경)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 ‘워킹맘’이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건 혜린이나 남편 구일이나 마찬가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을’이 되는 건 혜린이다. ‘육아는 부부의 몫’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히는 추세지만, 여전히 아이에게 좀 더 필요한 손길은 엄마의 그것이라는 신념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8화에서 사직서 봉투를 들고 망설이던 혜린의 모습을 보면, 워킹맘의 현실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사린이 임신 사실을 알리자 프로젝트 PM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부장. 얄궂게도 이 부장은 둘째 아이 출산 기념 떡을 돌리는 남자 동료에게는 ‘책임감이 두 배가 되었으니 얼른 승진해야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솔직함과 무례함이 한 끗 차이로 갈릴 수 있듯, 워킹맘과 일하는 임산부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는 한 끗 차이로 친절이 될 수도, 오지랖이 될 수도, 차별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렵다. 보편적인 남편이자 시즌2에서 노력하는 남편인 무구영은 노력하지만 여전히 디테일이 떨어진다. 한편으론 무구영도 안쓰럽다. 자신이 직접 겪지 않는 임신과 입덧과 출산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사린의 임신을 마냥 기뻐하고 아이를 위해 태교를 하고 싶어하는 구영의 모습에 100% 동조해주지 못하는 사린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또 구영의 입장에선 기쁨을 온전히 나누지 못하는 아내에게 서운함도 있을 것이다. ‘며느라기’ 시리즈에서 빌런 역할을 맡은 시어머니 박기동은 또 어떻고. 그는 분명 ‘자기 자식 바라기’로 매사 며느리들을 차별하는 인물이지만, 그 역시 유구한 가부장제에 젖어 자신의 몸을 갈아 넣는 어머니일 뿐이다. 아들 대신 며느리가 생신상을 차리고 제사 음식을 만들길 바라지만, 제사든 고모할머니의 장례식이든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동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적은 없다. 심지어 손녀를 돌보는 것도 ‘소파 지박령’인듯 항상 어딘가에 앉아 있기만 하는 기동의 남편 무남천(김종구)이 아니라 기동의 몫이니까.

 

사린의 임신을 축하하는 식사 자리에서 사린은 자신이 싫어하는 콩밥을 받는다. 콩에 엽산이 풍부해 태아에게 좋다는 이유다. 너도나도 임신을 축하하지만 정작 임신의 주체인 임산부보다는 뱃속의 태아를 우선순위로 두는 사회 분위기를 조금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하는 장면.

 

‘며느라기’를 보며 갑갑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은 사린에게 “왜 아니라고 말을 못하는 거야!” 또는 구영에게 “왜 그렇게 디테일이 떨어지는 거야!”라고 하거나, 빌런 포지션에 있는 박기동 혹은 사린의 회사 부장에게 으르렁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 하나가 대오각성하여 사이다를 들이붓는다고, 누구 하나가 반성해서 달라진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두가 조금씩 의식을 바꾸고 의지를 돋워야만 조금 더 나은 사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변화는 한 걸음부터다. 나처럼 자칫 입만 열면 오지랖인 꼰대 기질 인간이라면 입을 열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자(안 될 것 같으면 차라리 입을 닫고). 대중교통 임산부석은 제발 좀 비워 놓고, 혹시 앉았더라도 임산부 배지 보면 재까닥 일어나자. 출근길에 임산부 배지 달고 서 있는 상태에서 임산부석에 당당히 앉아 가던 중년의 신사와 눈이 마주쳤다는 게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사린과 구영, 혜린과 구일은 물론 기동과 이혼을 앞둔 구영의 동생 미영(최윤라) 등 ‘며느라기’ 속 인물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기혼에겐 ‘격공(격한 공감)’을, 미혼에겐 ‘비혼의지’를 모으는 이 드라마가 과연 현실에서 작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답해줄 수 있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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