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주식시장에서 3월은 ‘상장폐지 시즌’으로 불린다. 결산월이 12월인 회사는 결산 후 90일 이내 감사보고서를 포함한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때 감사보고서를 못 내거나 회계 법인으로부터 한정·부적정 의견 또는 의견 거절을 받은 회사는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올해 주식시장은 3월이 다가오기 한참 전부터 상장폐지 문제로 들썩였다. 오스템임플란트, 신라젠 등이 임직원 횡령·배임으로 인해 상장폐지 논란에 휘말리면서 개인·소액투자자의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임직원의 부정으로 거래정지 처분, 상장폐지 심사를 받으며 개미를 울린 기업은 이 둘만이 아니다. 하나씩 살펴보자.
#오스템임플란트, 세영디앤씨, 계양전기, 휴센텍…
2022년 첫 횡령·배임 혐의를 공시한 업체는 일명 ‘파주 슈퍼개미’ 이 아무개 씨 사건으로 논란이 된 오스템임플란트다. 오스템임플란트는 2021년 12월 31일 자금관리 직원 이 씨가 회사 자본의 91.81%(2020년 말 기준)에 해당하는 1880억 원을 횡령했다고 경찰에 고소했다. 회사는 올 1월 3일 이 사실을 공시했다. 수사로 이 씨가 과거 335억 원을 출금했다가 반환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횡령 규모는 총 2215억 원대로 드러났다.
한국거래소는 2월 17일 오스템임플란트를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했다.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는 횡령·배임 사건, 영업 정지, 회계처리 기준 위반 등의 사유로 상장 유지 자격에 문제가 생긴 기업을 검토해 부적합할 경우 퇴출을 고려하는 심사 절차다. 거래소는 3월 21일 이내에 기업심사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오스템임플란트의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3월 14일 이내 오스템임플란트 측이 경영개선계획서를 제출하면 제출일 기준 20일 이내로 심의가 연기된다.
오스템임플란트의 뒤를 이은 곳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업체 세영디앤씨(코스닥)다. 세영디앤씨는 1월 19일 전 대표이사 한 아무개 씨 외 2인이 회사 자본 19.67%에 해당하는 130억 원을 횡령했다고 공시했다. 문제는 이 회사가 언제든 상장폐지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세영디앤씨는 2019사업연도·2020사업연도·2021사업연도 반기 감사의견에서도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2020년 3월 24일부터 거래 정지된 종목이었는데, 이의신청과 개선 기간 부여로 거래정지 기간만 길어지며 주주들의 속을 태웠다.
여기에 횡령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거래소는 1월 21일 세영디앤씨의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2월 8일을 상장폐지일로 정하고 1월 25일~2월 7일 정리매매를 개시했지만 1월 24일 세영디앤씨가 효력정지 가처분을 내며 또다시 거래는 정지됐다. 수년째 세영디앤씨 주식을 처리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평가금액만 깎이다가 정리매매까지 불발된 소액주주 사이에선 “횡령한 임원들을 처벌하고 차라리 빨리 상장폐지하라”는 절규가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2월 15일에는 계양전기(코스피), 18일에는 휴센텍(코스닥)에서 횡령·배임 혐의 공시가 발생했다. 계양전기는 재무팀 직원이 245억 원을, 휴센텍은 대표이사·사내이사·부회장 등 전·현직 임원 9인이 259억 1000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소됐다. 계양전기의 경우 재무팀 직원 김 아무개 씨가 6년에 걸쳐 회삿돈을 빼돌렸고, 감사에서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다가 횡령 사실을 회사에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미들 “차라리 빨리 상장폐지를”
임영환 계양전기 대표이사는 입장문을 통해 “당사 자금관리 시스템을 교묘하게 악용한 직원 개인의 단독 일탈”이라며 “사고 여파가 확산하지 않도록 자금, 생산, 개발, 품질 등 경영 전반을 세밀하게 챙기겠다. 더불어 조속한 주식거래 재개를 위해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며, 외부 전문가를 통해 내부 회계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휴센텍의 경우 임직원 횡령·배임 풍문으로 이미 2월 9일부터 거래가 정지된 상태였다. 18일 혐의를 받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휴센텍은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거래정지 상태가 이어지게 됐다.
국내 증시에서 상장폐지되는 기업은 2020년 31개, 2021년 39개로 한 해에 30~40개를 오간다. 올해는 1월부터 지금까지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곳이 8곳, 투자 경고 종목으로 지정된 곳이 15곳에 달한다. 여기에 3월 결산 시즌이 지나면 또 어떤 업체들이 상장폐지 위기를 맞아 개미를 괴롭힐지 모른다. 횡령·배임뿐만 아니라 불성실 공시, 매출·거래량 미달 등 부실한 경영, 지배구조 문제 등 주주를 위협하는 요소는 숱하다. 이 같은 기업의 리스크로 인한 상장폐지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결국 개인·소액투자자다.
전문가들은 투자자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선 기업에 횡령·배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거래정지나 상장폐지까지 결정하는 기간을 줄여야 한다고 짚는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하면 가급적 바로 거래정지가 이뤄지게 하고, 상장폐지 여부도 짧은 기간에 결정할 필요가 있다. 혐의 사실을 모르고 그 사이 투자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국이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자의 기회비용은 늘어난다. 횡령한 이들이 사건을 은폐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개할 가능성도 커진다. 더불어 횡령·배임으로 상장폐지된 기업은 재상장을 제한하고, 당사자를 일벌백계하는 규제 강화도 필요하다. 그래야 기업이 각성하고 자체적인 내부 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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