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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삼국지 관우 묘가 서울 동쪽에 있는 까닭은? 서울 동관왕묘

임진왜란 때 명나라군 도운 관우 기려 동서남북에 사당 건립, 지금은 동묘만 남아

2022.02.15(Tue) 10:25:02

[비즈한국] ‘동관왕묘’라 하면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동묘’는 어떤가? 지하철을 타는 서울 시민이라면 익숙한 이름. 하지만 이것의 본명이 ‘동관왕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동묘에는 정말 동관왕묘가 있다. ‘관왕’은 삼국지 관우의 별칭인데, 어라? 어째서 관우의 묘가, 도원결의의 땅인 중국 탁현이 아니라 서울의 동쪽에 있는 걸까?

 

동묘의 본명은 ‘동관왕묘’, 즉 ‘관왕’ 관우의 묘라는 뜻이다. 어째서 관우의 묘가 중국이 아니라 서울의 동쪽에 있는 걸까? 사진=구완회 제공

 

#하늘에서 내려온 관우가 왜군을 무찌르다

 

이곳에 관왕묘가 생기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때는 바야흐로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이 조선 땅에서 왜군과 싸울 무렵. 이여송의 군대는 왜군과 일진일퇴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전투는 치열하게 밤까지 이어졌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관우가 이끄는 신병(神兵)들이 내려와 왜군을 물리쳤단다. 이런 경험을 한 명나라 군사들은 관우의 사당, 즉 관왕묘를 지을 것을 조선 정부에 요청했다. 

 

이역만리 조선 땅에 관우가 나타난 것이 그리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다. 적장의 목 가져오기를 주머니 속 구슬 꺼내듯 했던 관우는 사후에 무신으로 중국인들의 추앙을 받았으니까. 더구나 비명횡사란 귀신의 힘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것이어서, 죽은 관우는 어느새 왕이나 황제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살아서는 장군에 머물렀던 관우가 죽어서는 엄청 출세한 셈이다.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전국의 무속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들은 최영이나 임경업같이 무명을 날리다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장군들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 시끌벅적 시장통 옆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동묘(왼쪽). 사진=구완회 제공

 

하지만 문제는 명나라가 요청한 관왕묘 건립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서울에만도 동서남북 네 곳에 관왕묘를 세웠고, 지방 곳곳에도 관왕묘 건립을 추진했다. 물론 이 비용과 인력은 고스란히 조선 정부, 그러니까 전쟁으로 고통받던 조선의 백성들이 떠맡았고. 가뜩이나 명나라 군대는 임진왜란 와중에 엄청난 민폐를 끼쳐서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라는 비난을 받던 터였다. 하지만 어쩌랴, 오직 명나라만을 붙들고 있던 무능한 조선 정부는 관왕묘를 전국 곳곳에 세우라는 명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복을 비는 곳에서 시민의 휴식터로

 

서울의 동관왕묘는 이렇게 지어진 서울의 동서남북 관왕묘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 지하철 1호선 동묘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동관왕묘는 제법 커다란 규모를 자랑한다. 덕수궁 돌담길의 축소판 같은 동묘의 돌담길을 걷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정문인 외삼문이 나타난다. 전형적인 솟을대문에 좌우로 쪽문까지 갖췄다. 궁궐 대문까지는 아니어도 여느 대가집 대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동관왕묘를 짓는 데 백성과 군인까지 동원해서 꼬박 3년이 걸렸다는 기록이 떠오른다. 

 

동묘의 정문인 외삼문. 사진=구완회 제공

 

외삼문을 지나면 내삼문이 나온다. 담이 없이 덜렁 문만 있는 내삼문 좌우로 아름드리 배롱나무가 눈길을 끈다. 내삼문 뒤로는 긴 수염 휘날리는 관우상을 모신 정전이 보인다. 동묘의 정전은 팔작지붕에 잡상을 세운 것이 언뜻 전형적인 조선 건물로 보이지만, 좌우 외벽을 벽돌로 마무리하고 바깥에 기둥을 세운 것은 중국식이다. 조선과 중국의 퓨전스타일이라고 할까? 

 

내삼문 너머로 관우상을 모신 정전이 보인다. 사진=구완회 제공

 

정전 안에는 온통 금빛으로 번들거리는 관상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관우는 무신이자 재물의 신이기도 하다. 아니 조조가 하사한 금은보화에 손 하나 대지 않던 대쪽 무사 관우가 재물의 신이라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여기에는 그럴 듯한 설명이 있다. 평생 믿음을 지켰던 관우는 신뢰의 화신이고, 이러한 신뢰야말로 장사로 돈을 버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란다. 

 

정전 안에는 온통 금빛으로 번들거리는 관상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관우는 무신이자 재물의 신이기도 하다. 사진=구완회 제공

 

관우상 뒤로는 왕의 상징인 일월오봉도가 보인다. 과연 ‘관왕’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듯하다. 몇 달 전에는 일월오봉도 뒤에서 조선 시대 최대의 운룡도가 발견되어 화제가 됐다. 명나라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지었던 관왕묘지만, 시간이 가면서 조선 사람들에게도 관우는 중요한 신이 되었다. 그래서 조선의 임금들도 이곳을 자주 찾았고, 이곳에 조선 최대의 운룡도가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오늘의 동묘는 명나라 군인이나 조선 국왕이 아니라 시민의 휴식 공간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 시끌벅적 시장통에 이렇게 고즈넉한 곳이 있다니 더욱 좋다.  

 

<여행정보>

 

황둔삼송마을 

△주소: 서울시 종로구 난계로27길 84

△문의: 02-2148-4167

△이용시간: 09:00~18:00,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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