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MZ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공정성’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특히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과거에는 회사가 잔업을 시키면서 포괄임금제를 핑계로 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전 세대라면 시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그냥 넘어갔을 일이지만, MZ세대는 가차 없다. 아마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기업평판 사이트에 불만을 올릴 테다.
디지털 환경의 노출을 피할 수 없다는 점도 사회가 투명해진 이유다. 의사결정 과정이나 자금흐름을 숨기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돈을 받았으나 곧바로 돌려줬으니 뇌물이 아니다. 다만 돌려줄 때 현금으로 돌려줘서 입증은 불가능하다”라거나 “수급사업자와 사전에 구체적으로 협의했으므로 부당한 거래 거절이 아니다. 다만 협의는 유선으로 해 문서로 확인된 것은 없다” 등의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공정성·투명성에 관한 사회의 관심은 ESG가 기업경영에서 화두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ESG 중 특히 ‘G’, 지배구조(Governance)가 공정성과 연관이 있다. 최근 경영진의 책임을 강조하는 입법과 판결이 이어지면서 경영에서도 공정성‧투명성을 향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사는 회사와의 관계에서 민법상 위임관계임으로 회사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진다. 상법 교과서에 따르면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 등을 위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과 배임죄로서 형사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회사가 도산하는 등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사(경영진)가 잘못된 결정에 책임을 지는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경영진이 책임 의무를 피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영진은 대부분의 사건에서 ‘경영 판단의 원칙’을 근거로 면책을 주장한다. 경영 판단의 원칙이란 이사가 본인의 권한 내의 경영사항에 관해 합리적인 근거에 따라 성실하게 결단을 내렸다면, 그 결과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이사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판례 법리를 말한다.
인식의 문제도 있다. 회사 구조상 위법행위를 실행하거나 관여한 사람은 실무자일 테니 실무자를 처벌하면 충분하고, 경영진에게는 위법행위에 대한 고의·과실이 없어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지배구조에 따라 넘어가기도 한다. 국내에선 대기업을 대주주와 그 일가가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경영진이 대주주 의사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린 경우, ‘회사 주인의 결정을 따랐으니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에 찬물을 끼얹는 몇 가지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017다222368 판결은 회사가 담합한 경우 대표이사에게 감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판단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근거는 “이사의 감시 의무는 회사 규모나 조직, 업종, 규제, 영업상황, 재무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고도로 분업화‧전문화된 대규모 회사에서 대표이사나 담당이사가 내부적인 사무분장에 따라 각자의 전문 분야를 전담해 처리하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라 해도, 그런 사정으로 다른 이사의 업무 집행에 관한 감시 의무를 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합리적인 보고‧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거나, 시스템을 구축했더라도 회사 업무 전반의 감시·감독의무를 의도적으로 외면해 다른 이사의 위법‧부적절한 업무 집행 등 주의를 요하는 위험이나 문제점을 알지 못했다면 이사의 감시 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대표이사는 회사 업무의 전반을 총괄하고 다른 이사의 업무 집행을 감독하는 지위에 있어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법원은 ‘거수기’로 불리는 사외이사라도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의사결정에 찬성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판결 2016다260455에서 “강원랜드가 태백 오투리조트에 150억 원을 기부한 사안에서 7명의 사외이사는 기부금의 성격, 기부행위가 회사 설립목적과 공익에 미치는 영향, 회사 재정 상황에 비춰 본 기부금 액수의 상당성, 회사와 기부상대방의 관계 등에 관해 합리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기부행위 결의에 찬성했으므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 따라서 회사에 대해 70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 봤다.
경영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은 하급심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D 건설이 4대강 사업의 담합에 가담해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는 등 손해를 입은 사안에서, 1심(서울중앙지법)은 이사들에게 감시 의무 위반 등에 관한 책임이 없다고 봤다. 그러나 항소심(서울고법 2020나2034989) 판결에선 1심과 정반대로 “공정거래법 등을 위반하는 행위를 한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는데도 만연히 일을 방치해 임무를 게을리했고, 임직원의 위법행위에 관해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감시 의무를 위반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미래 세대가 더욱더 거세게 공정성·투명성을 요구할 것은 자명하다. 법원은 이런 경향을 빠르게 판결에 반영하고 있다. 이를 낯설어하는 어른 세대가 문제다. “요즘 친구들은 참 알 수 없다. 별것 아닌 일에 난리다”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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