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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본 한 장 떼려고 며칠 허비…다문화가정을 위한 행정은 없다?

주민등록 자동등재 안 돼 온갖 서류 들고 직접 가야…행안부·법원 등 이원화돼 더 문제

2022.02.11(Fri) 18:14:26

[비즈한국] 한국 국적을 가진 이지영 씨(가명·26)는 외국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의 일원이다. 최근 취업한 이 씨는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해 온라인에서 ‘정부24’를 이용했지만, 외국인 어머니는 기재되지 않았다. 주민등록법이 개정돼 외국인 구성원도 기재 가능해졌지만, 직접 방문해야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설맞이 체험 행사에 참가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 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어머니를 주민등록등본에 올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각종 서류와 세대주 서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성인이지만, 미성년자일 때 더 불편한 일이 많았다. 다문화가정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서류가 필요했다. (제출 서류가) 이렇게 복잡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제 직장이 생겨 주민센터에 갈 시간도 마땅치 않은데, 너무 불편하다.” 

외국인 구성원의 주민등록등본 기재 신청서. 주민등록등본에 외국인 구성원을 기재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신청하더라도 세대주의 서명이 필요하다. 사진=법제처


2022년 2월 11일 통계청에 의하면 2020년 기준 국내 다문화가정은 약 36만 8000가구로 2019년에 비해 약 1만 4000가구 증가했다. 다문화가정 출생이 전체 출생에서 약 6%를 차지한다. 다문화가정이란 외국인이나 귀화자가 한국인과 결혼해 구성된 가족 등을 말한다. 다문화가정은 계속 늘고 있지만, 관련 행정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각종 증명서 발급·가구원 인증 어려워…서류 기재 기준도 명확치 않아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권호민 씨(가명)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하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모(母)의 출생연월일과 국적이 모두 비어 있었다. 반면 본인증명서에는 배우자의 출생연월일과 국적이 기재돼 있었다. 권 씨는 이를 정정하기 위해 본적지 면사무소를 방문했다. 이틀에 걸쳐 생년월일과 국적, 외국인등록번호가 모두 통일되도록 정정할 수 있었다. 권 씨는 “다문화가정이 많은 요즘 이런 문제로 불편함을 겪을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왜 가족 구성원에 따라 기재된 내용이 다를까. 이를 관할하는 법원은 “증명서는 기록하는 관습에 따라서 기재되지만, 해당 부분은 담당 공무원마다 직접 이유를 물어봐야 한다”고 답했다. 외국인 구성원 기재 방식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 씨의 가족관계 증명서. 외국인 어머니의 외국인등록번호는 기재되지 않았다. 사진=전다현 기자


휴대폰 개통도 문제다. 자녀가 미성년자인 경우 외국인 부모가 법정대리인이 되려면,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내국인보다 복잡하다. 한 통신사는 “귀화한 상태라면 개통할 수 있지만, 귀화자가 아니라면 해당 직영점에 직접 방문해야 개통이 가능한지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답했다. 다른 통신사는 “제출하는 가족관계증명서에 ‘외국인등록번호’가 기재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족관계증명서 서식이 통일되지 않아 이조차 쉽게 제출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외국인 부모는 미성년자 자녀의 법정대리인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34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 국적 에리카 씨(가명·55)는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으로 살면서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각종 증명서 발급, 회원가입 등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 이름은 영어 철자로 등록돼 대체로 긴 편인데, 온라인에서는 이름에 글자 수 제한이 있어서다. 항상 직접 기관에 가서 업무를 봐야 하고, 이렇게 해도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내국인이라면 온라인으로 쉽게 처리 가능하지만, 다문화가정이기에 ‘대면’으로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가 많은 게 현실이다. ‘행정낭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2년 전에 시스템 개선 권고했지만 현실은?

국민권익위원회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행정시스템이 차별적이라고 봤다. 이에 2020년, 다문화가정의 건강보험 피보험자 자격이 변동(직장가입자↔지역가입자)될 때마다 세대 분리가 되는 시스템을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내국인은 건강보험 자격이 변동되더라도 세대가 분리되지 않고 주민등록지에 따라 자동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한다. 이에 반해 외국인 배우자는 매번 세대분리가 된다.

이에 ‘비즈한국’은 권고 후 변화된 상황을 문의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당초 주민등록등본으로 연계하려 했지만, 외국인 배우자는 내국인과 같이 주민등록등본 연계가 불가했다. 그래서 의무적으로 기재되는 가족관계증명서와 연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는 주민등록등본과 달리 가족관계증명서는 법원 관할이라 연계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당초 계획했던 ‘자동 갱신’이 아닌, 본인이 요청해야만 법원에서 자료를 제공하는 형식이 됐다. 바꾸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스템이다. 

외국인 배우자가 주민등록등본에 자동 기재가 안 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데, 행정안전부는 “외국인은 출입국관리소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원래 등재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사회적 비용 발생

‘비즈한국’은 다문화가정의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에 관련된 내용을 행정안전부, 법원 등에 문의했지만, 관할 부서조차 내용을 파악하지 못해 답변을 얻는 데만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다. 주민등록법 등 다문화가정 관련법이 개정되기는 했지만, 미흡한 점이 많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차별 의식이 깔려 있기에 발생하는 일”이라고며 “기본적으로 외국인 배우자를 잘 믿지 못하고, (결혼 자체가) 사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등본 기재 같은 행정 처리 절차에 복잡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국인과 같이 하면 되는 부분도 서류를 늘려 행정을 낭비하고 있다. 한국인이 외국에 가서 결혼하는 경우도, 외국인이 한국에서 결혼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제 이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행정도 효율적으로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행정 시스템 역시 불필요하게 복잡하다는 설명이다. 

김지훈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행정시스템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이 장려됐지만, 변화하는 가족 형태를 법 체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시민권, 국적의 개념과 체계 역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영국 국적의 올리버 테리 성신여대 교수는 “그래도 인식과 시스템이 점점 변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인식 개선을 위해 다문화가정이 대중에게 최대한 많이 보여야 한다”며 “전소미, 한현민 등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다문화 연예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당연해져야 행정시스템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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