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망 비상장 기업이 잇따라 증권 시장에 상장하면서 공모주 청약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른 가운데, 상장 당일 증권사 거래시스템 장애로 피해를 호소하는 일반 투자자가 늘고 있다. 운 좋게 공모주를 배정받고도 증권사 과실로 제때 주식을 처분하지 못한 일반 투자자들은 증권사와 금융당국의 소극적인 대처에 적절한 보상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3배 커진 공모주 청약 시장, 2배 늘어난 증권사 청약 수수료 수익
지난해 공모주 청약 시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금융감독원이 7일 발표한 ‘기업공개(IPO) 시장 동향’에 따르면 2021년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은 89개로 1년 전보다 27.1%(19개) 늘었고, 총 공모 금액은 19조 7084억 원으로 333.9%(15조 1658억) 늘었다. 일반투자자 평균 경쟁률은 1136 대 1로 전년 대비 18%, 이들의 청약증거금은 총 784조 원으로 200% 이상 증가했다.
공모주 청약 열기는 증권사 수익으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증권사는 공모주 청약 업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1건당 1000~20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우리나라 9대 증권사가 공모주 청약 수수료로 거둬들인 수입은 833억 원에 달했다. 2020년과 비교했을 때 211%(573억 5000만 원) 늘어난 규모다.
#“거래 몰리는 당일만 클라우드 빌려쓰면 되는데…”
이와 함께 증권사 거래시스템 장애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도 갈수록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증권사 ‘내부통제 및 전산장애’ 관련 금융 민원은 110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0.1%(643건) 증가했다. 금감원 측은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장애 관련 민원 발생으로 ‘내부통제 및 전산장애’ 민원 유형이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 공모주 대어였던 에스케이바이오사이언스와 에스케이아이이테크놀로지가 상장할 때에는 각각 미래에셋증권과 에스케이증권에서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 카카오뱅크 상장 때는 한국투자증권, 카카오페이 상장 때는 삼성증권과 대신증권, 현대중공업 상장 땐 하나금융투자에서 서버 오류가 있었다. 올해 1월에는 엘지에너지솔루션 상장 당일 하이투자증권에서 비슷한 장애가 나타났다.
원인은 서버 과부하로 지목된다. 주식을 매도하려는 공모주 청약자가 주식 상장 당일 개장 시간에 몰리면서 서버가 수용 한도를 초과한 것이다. 최준균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서버 용량이 갑자기 몰리는 경우 속도가 느려지거나 일시적으로 불통이 생길 수가 있다”며 “(특정 시기라도) 외부 클라우드를 빌려서 부하를 분산하면 대부분 문제가 해결된다. 비용 대비 이익은 증권사의 양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3분 차이로 투자자 수익률 56% 줄어
공모주 상장 당일 거래시스템 오류는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IPO 공모주의 공모가격 대비 상장 당일 종가수익률은 57.4%로 연말수익률보다 3.4%P 높았다. 상장 당일에 공모주를 파는 것이 연말에 파는 것보다 수익이 많이 났다는 뜻이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공모주 상장일 주가가 공모가 두 배인 18만 원으로 시작해 3분 만에 23만 원까지 치솟았다. 상장 당일 개장 3분간 주식을 매도한 투자자 수익률이 56%P(주당 5만 원)까지 차이가 났던 셈이다.
대신증권에서 카카오페이 공모주를 청약한 30대 A 씨는 “카카오페이가 상장날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두 배로 뛴 뒤 상한가 기록)’에 성공하지 못하면 개장과 동시에 팔겠다는 마음으로 MTS에 접속을 시도했지만, 증권사 서버 오류로 10분가량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접속에 성공했을 때는 이미 주가가 고점인 23만 원을 찍은 뒤 저점인 17만 3000원을 향해가고 있었다. 매도 시점을 놓쳐 호가창을 멍하니 들여보다 9시 30분경 18만 원에 주식을 팔았다”고 전했다.
#구제 신청 해야만 피해 보상 가능…금감원 “보상 가이드라인 없어”
증권사 거래시스템 오류로 발생한 피해 보상은 일차적으로 투자자 구제 신청에 달렸다.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투자자는 전자금융 처리에 이의가 있을 때 금융회사에 민원을 신청하거나 소비자원 또는 금융감독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금융회사는 전자금융거래와 관련한 정당한 의견이나 불만을 반영하고 이용자가 전자금융거래에서 입은 손해를 배상하기 위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증권사 민원 신청은 오류 발생 내용과 피해 보상 금액을 적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제 신청을 하지 못한 투자자는 피해를 입고도 보상에서 제외된다. 하이투자증권에서 엘지에너지솔루션 공모주를 청약한 60대 B 씨는 “엘지에너지솔루션이 올해 공모주 최대어가 될 것이라는 뉴스를 보고 어렵게 증권사 계좌를 개설한 뒤 청약을 신청했다. 주식을 팔려고 상장일 개장 시간에 맞춰 휴대폰으로 증권사 앱에 접속했지만 수십 분간 매매창이 연결되지 않았다. 피해 구제를 신청하는 방법도 모르거니와 알더라도 시간과 정성을 들일 여력이 없다. 증권사가 선제적으로 나서서 보상해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보상 기준도 증권사마다 제각각이다. 대신증권은 카카오페이 서버 오류에 대한 보상 기준가격을 서비스 지연시간(9시 1분~10분) 중 시장 거래량 및 거래가액을 가중평균해 19만 4759원으로 산출했다. 반면 삼성증권은 오류가 난 시간대(9시~9시 2분) 중 최고가 23만 원을 기록한 9시 1분 42초를 기준으로 30초간 가격을 가중 평균해 21만 원으로 책정했다. 현재 증권사 거래시스템 오류에 대한 금융당국의 보상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3국 금융투자팀 관계자는 “증권사 서버 오류로 발생한 피해 보상 가이드라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산 장애 원인이나 진행되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향후 유사한 전산장애 관련 민원이 들어오면 고민을 해보고 필요하다면 내부적인 검토를 통해 대책을 마련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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