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얼핏 보면 흔한 범죄수사물 같지만 주인공을 대한민국 최초 프로파일러로 삼으면서 보는 시각 자체를 달리했다. 범죄수사물에서 주인공은 범인을 쫓는 인물, 대부분 형사다. 온몸으로 현장을 뒤지며 구르며 범인을 잡는 형사와 달리, 프로파일러는 범죄 현장을 분석해 범인의 습관, 나이, 성격, 직업, 범행 수법을 추론해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이다. 아무래도 현장에 나서는 형사보다는 정적일 수밖에 없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배경은 동기 없는 범죄가 급증하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다.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와 고나무 작가가 공동으로 집필한 논픽션 르포가 원작으로, 프로파일러의 개념조차 잡히지 않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눈길을 끈다. 요즘이야 프로파일러가 무척 친근(?)한 직업처럼 여겨진다. ‘당신이 혹하는 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알쓸범잡’ 등 과거의 범죄 사건을 파헤치고 들려주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권일용 교수를 비롯 표창원 전 의원, 이수정 교수 등 각계의 범죄전문가들이 방송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여 년 전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드라마 속 ‘짬’ 있는 형사들마저도 프로파일러에 대해 “파일럿?”이라고 되물을 정도다.
프로파일러는 범행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과 수법을 심리학과 행동과학 등을 근거로 분석해 범인의 성격 및 특성, 행동을 추론해 범행동기 및 의도 등을 밝혀내는 범죄심리분석 수사관을 뜻한다. 지문이나 DNA 등 법의학, 생물학적 증거를 찾아내는 과학수사와는 또 다른데, 특히 범죄의 동기를 알 수 없는 연쇄살인사건 등에서 범죄의 유형, 범인의 심리나 행동분석을 통해 범인 검거의 효율성을 높이고, 때로는 범인과 고도의 심리적 전략을 구사하며 자백을 받아내기도 한다. 한마디로 범인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소리다. 아마 예전에는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을 것이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틈만 나면 FBI 사례를 이야기하며 범죄행동분석팀을 만들어 달라고 주장하는 감식계장 국영수(진선규)에게 “여기가 미국이냐?”고 퉁박을 주는 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범인 쫓는 현장 인원과 예산도 모자란 판국에 범죄자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해서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이야기는 무척 한가로운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을 테니까. 사이코패스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니 당연하다.
국영수의 끈질긴 요청은 성과를 이룬다. 국영수가 프로파일러로 점찍어 두고 있었던 송하영(김남길) 형사가 감옥에 갇힌 범죄자 양용철(고건한)에게 영치금까지 넣어주며 수시로 면담하며 범죄자의 습성을 캐내어 애인을 죽였다는 오명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 대신 진범 조강무(오승훈)을 잡는 활약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활약은 ‘범죄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무능한 형사’라는 프레임으로 전환되지만,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국영수가 염원하던 범죄행동분석팀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같은 경찰임에도 동료들이 범죄행동분석팀을 대하는 태도는 약간의 경멸 혹은 한심스럽다는 시선 정도다. 발로 뛰는 일선 현장에서는 범죄행동분석팀이 범죄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한가로이 바라보며 입으로만 떠든다는 오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범죄행동분석팀과 공조하게 되지만 초반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던 기동수사대 팀장 윤태구(김소진)의 대사가 이를 반증한다. “그쪽 팀한테는 단지 관심일지 모르겠지만 우리한테는 의무거든요!”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기존 범죄수사물에서 다뤘던, 대중의 관심이 컸던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사건들이 대거 등장할 전망이다. 4화에서 결국 잡혔던 ‘창의동 사건(5세 여아 토막살인 사건)’은 실제로 국내 최초로 프로파일링 기법이 도입됐던 사건을 모티프로 했고, 이후 경찰 신분증을 도용해 범죄를 저지를 것으로 보이는 인물은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모델인 것으로 보이며, 화성연쇄살인 사건으로 잘 알려진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모델로 한 대성연쇄살인 사건도 다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끔찍했던 실제 사건들을 대거 등장시키지만 기존 범죄물과 달리 이 드라마는 사건 자체를 자극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 범죄를 추적하고 어떻게 접근하는지 과정에 더욱 힘을 기울인다. 주인공 송하영을 맡은 김남길의 연기부터 오버스럽지 않고 한없이 침착하다. 얼핏 냉정한 듯 보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유가족을 챙기고, 남들의 오해를 사든 말든 자신의 길을 걷는, 범죄자들과 대면할 때는 묘한 심리전을 이어가는 하영의 캐릭터에서 우리가 그저 멋있게만 생각하는 프로파일러의 내면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새로이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4화까지 방영하며 순간 최고 시청률 10.8%를 기록하며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12부작인 만큼 기존 드라마의 패턴과는 다른 호흡을 보일 것 같은데, 이 새로운 범죄수사물이 무엇을 남길지 궁금하지 않은가.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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