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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정동 골목에 숨은 대한제국의 비극, 중명전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졌다가 을사늑약 맺어진 비운의 현장

2022.01.25(Tue) 13:14:31

[비즈한국] 조선 궁궐 어느 전각이나 기막힌 사연 하나쯤 가지고 있게 마련이지만, 정동길 작은 골목에 숨어 있는 중명전만 한 곳도 드물다. 을사늑약이 맺어지고,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던 곳. 결국은 조선의 운명처럼 누구 하나 돌보는 이 없이 외롭게 서 있다 겨우 제 모습을 찾았지만 여전히 궁궐 바깥에 머물러 있다. 

 

정동 골목길 안쪽 보일 듯 말 듯 작은 이정표로 안내된 중명전. 원래 대한제국 황실의 도서관으로 지어졌다. 사진=구완회 제공

 

#도서관에서 편전으로, 비극의 현장에서 전시관으로

 

덕수궁 돌담길에서 이어지는 정동길을 쭉 따라 걷다 보면, 보일 듯 말 듯 작은 이정표 하나를 만나게 된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그냥 지나쳐 버리기 십상인 작은 이정표를 따라 작은 골목길 안으로 몇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시간을 거스른 듯 고풍스런 붉은 벽돌 건물이 방문자를 기다린다. 오호, 이렇게 멋진 건물이 이런 곳에 숨어 있다니! 

 

러시아 건축가 사비찐이 설계한 중명전은 원래 대한제국 황실의 도서관으로 지어졌다. 서양 건물을 선호한 고종의 명에 따라 지어진 황실 도서관의 첫 이름은 수옥헌이었다. 1904년 덕수궁이 큰 불로 몽땅 타버려 갈 곳 없어진 고종은 붉은 벽돌 건물인 수옥헌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때부터 이곳은 국왕이 업무를 보는 편전이 되어 중명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옛날 궁궐에서 ‘헌’이라는 이름은 왕족들이 조용히 독서를 하는 공간에 붙였고, ‘전’은 가장 지체 높은 왕과 왕비가 머무는 공간에 붙였다.

 

중명전이 신분 상승(?)을 한 바로 다음해, 이곳에서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일본을 보호국으로 삼은 을사늑약이 맺어졌다.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이 조선 침략을 서두른 것이다. 일본은 당시 미국과 카즈라-테프트 밀약을 맺어 필리핀과 조선의 식민화를 상호 승인했고, 세계 최강 영국과도 동맹을 맺어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다. 조선을 먹어 치우는 데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니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 위해 파견한 헤이그 특사는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을사늑약의 현장이 재현되어 있다. 회의를 주재한 중앙의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 다른 대신들이 실물 크기의 밀랍인형으로 만들어졌다. 사진=구완회 제공

 

고종의 위임장을 가지고 러시아를 횡단, 두 달 만에 네덜란드에 도착한 헤이그 특사들의 외침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일제에게 ‘찍힌’ 고종은 강제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불온한’ 일이 벌어졌던 중명전은 덕수궁이 축소되면서 궁궐 밖으로 쫓겨났다가 우여곡절 끝에 복원되어 지금은 역사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역사의 현장에서 시대의 증언을 만나다

 

중명전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입구에 들어서니 강화유리 아래 고풍스런 바닥이 보인다. 실내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이란다. 왼쪽 방에는 을사늑약의 현장이 재현되어 있다. 그날 회의를 주제한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 그리고 다른 대신들이 실물 크기의 밀랍인형으로 만들어졌다. 맞은편 방에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고종의 친서가 있다. 을사늑약이 강제로 맺어졌기에 불법이며 무효라는 주장을 담았다. 고종은 같은 내용의 친서를 미국, 러시아, 영국 등에도 보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강화유리 아래 고풍스런 바닥이 보인다. 중명전 실내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그리하여 띄운 고종의 마지막 승부수가 헤이그 밀사 파견이었다. 고종의 친서 옆에는 헤이그 특사들에게 발급한 위임장이 보인다. 고종의 위임장을 받은 특사들뿐 아니라 각국에 파견된 대한제국의 공사들도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주프랑스공사 민영찬, 주러시아공사 이범진, 주독일공사 민철훈 등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렸으나 성과는 없었다. 고종의 특사들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회의장 입장조차 거부당했다. 몇몇 외신 기자가 관심을 보였으나,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분개한 이준 특사가 회의장 앞에서 할복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이준이 헤이그에서 사망한 것은 오랜 여독으로 생긴 병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헤이그 특사의 노력이 빛을 바래는 것은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이국만리 낯선 땅에서 이들은 최선을 다했다.

 

헤이그 밀사 파견​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는 고종의 마지막 승부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사진=구완회 제공

 

특사들은 실패했고, 역사는 무심하게도 제 갈 길을 갔다. 고종은 물러나고, 군대를 해산되고, 대한제국은 문을 닫았다. 물론 이준을 비롯한 헤이그 특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 한 몸 던져 역사의 길을 바꾸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사방에서 의병들이 일어났고, 그 중 하나였던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핵심인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 그리고 중명전은 오늘도 그 시대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여행정보>


중명전 

△주소: 서울시 종로구 정동길 41-11

△문의: 02-732-7524

△이용시간: 09:30~17:30, 월요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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