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루이비통이 국내 시내면세점 매장 철수를 본격화한다. 이미 지난 1일 롯데면세점 제주점에서 매장 영업을 중단했고 내년까지 나머지 시내면세점에서도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매출을 견인하는 중국인 대리 구매상, 이른바 ‘따이공(代工)’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급감한 면세 매출을 따이공이 메꿨는데,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브랜드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루이비통은 시내면세점보다는 중국 국내선 공항면세점과 백화점 영업에 집중해 프리미엄 판매 전략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 닫은 제주 지점…시내 면세 매장 줄줄이 빠진다
루이비통은 지난 1일부터 롯데면세점 제주점 루이비통 매장 영업을 중단했다. 17일 영국의 면세유통전문지 무디 데이빗 리포트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3월 신라면세점 제주점, 롯데면세점 부산점과 잠실 월드타워점에 있는 매장을 추가로 정리할 예정이다. 이 매체는 앞서 지난해 6월 “루이비통은 한국을 포함, 상당수 시내면세점에서 철수할 움직임”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올해 10월과 내년 3월 사이에는 나머지 시내면세점 매장이 철수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현재 루이비통은 롯데면세점 명동 본점과 신세계면세점 명동 본점, 신라면세점 서울,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부산 롯데면세점, 제주 신라면세점 등에 입점해 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다른 매장들의 철수 여부나 시점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하지 않았다. 제주점의 경우 코로나19로 매장 전체가 유동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최종 철수 여부는 브랜드와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루이비통 철수 배경에는 따이공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국내 면세점의 기형적인 구조가 있다. 중국 정부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갈등 이후 몸집을 키운 따이공이 코로나19 이후 면세 매출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비대해졌고,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고급화 전략 이탈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중국 보따리상 배만 불리던 시내 면세…‘따이공’이 뭐길래
따이공은 코로나19 이전부터 면세점 매출을 주도했다. 따이공은 한국 제품을 면세가로 사들여 중국에서 되파는 대리구매상을 일컫는다. 주 활동 무대는 시내면세점이다. 국내 화장품이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2013년 전후 따이공은 면세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한국의 중국인 유학생들까지 유행처럼 대리 구매에 뛰어들면서 따이공은 해외 명품 브랜드에도 손을 뻗쳤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따이공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유커(游客·중국인 단체 관광객)는 사라졌지만 중국 내 수요는 여전했고, 이 수요를 따이공이 채웠기 때문이다. 사드 갈등이 시작된 2017년 3월 이후 따이공이 견인한 면세 시장은 규모가 오히려 커져 연간 매출 13조 원을 넘어섰다. 외형적으로 전년 대비 10% 넘게 성장한 것이다. 2019년 기준 따이공의 국내 면세소비 규모는 한국 면세사업 전체에서 최소 80%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이 급감하며 매출에서 따이공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면세점 총매출(약 16조 4554억 원)에서 외국인 매출(약 15조 7080억 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95.45%에 달했다. 업계는 이 중 90% 이상이 따이공 매출이라고 분석한다.
따이공이 매출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면세점으로서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위축된 면세 시장에서 업계는 사업 영위를 위해 고육지책으로 따이공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따이공 송객 수수료는 코로나19 확산 직전과 비교해 2.5배 늘었고, 국내 면세점이 이들에게 지급한 송객 수수료는 2조 3000억 원을 기록했다. 송객 수수료는 여행사와 가이드에게 지급하는 알선 수수료다. 지난해 매출인 18조 원의 12% 이상이 따이공 유치에 지출된 셈이다. 최근 따이공이 법인화된 것도 부담이 커진 이유 중 하나다.
#일반 판매 줄고 유통 과정서 가품까지 유입…명품 이미지 재건 나서나
명품 브랜드로서도 따이공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따이공이 시내면세점에서 대량 매입한 상품을 중국 현지에서 판매하는 방식이 브랜드 고급화를 추구하는 명품 업계의 전략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따이공이 ‘블랙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잦은 반품·환불, 과도한 할인을 요구하거나, 현지에서 상품을 되팔 때 가품을 혼입해 판매하는 것 등의 문제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명품 수요가 폭발해 백화점 영업을 확대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명품 업계 관계자는 “명품의 가치는 희소성에서 나온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가격 인상만 다섯 차례 했지만 오픈런(Open run·개점 시간을 기다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계속될 정도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따이공을 거쳐 ‘프리미엄’ 이미지를 훼손하기보다는 백화점 영업에 집중하는 전략이 오히려 유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루이비통은 시내면세점을 축소하는 대신 중국 현지 공항 터미널 면세 등 공항면세점에 집중하고 백화점 영업을 확대해 프리미엄 이미지에 걸맞은 전략을 꾀할 방침이다. 루이비통은 2023년까지 중국 현지 6개 공항면세점에 입점하고 홍콩국제공항에도 두 번째 매장을 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내년에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대표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시내면세점 이탈로 국내 면세 업계가 입을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명품 브랜드들의 시내면세점 이탈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앞서 지난해 말 롤렉스도 서울과 제주, 인천공항 등 매장 3곳을 제외한 국내 면세점 매장을 정리했다. 루이비통이 속한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 그룹에는 디올, 펜디, 셀린느, 지방시가 있는데 유사한 사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
대통령 신년사에서 사라진 '일자리·정규직화·최저임금'
·
"향수는 정품 판별 불가" 코로나로 성장한 '명품 플랫폼', 소비자 불만 커지는 이유
·
[단독] '국내 최고가'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 334억 분양
·
흑자 전환 내친 김에 상장까지…케이뱅크 IPO 흥행 가를 변수
·
'김연경과 개인 채팅을' K팝 넘어 스포츠계로 뻗는 '덕질 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