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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성간 우주여행에 가장 적합한 생물은 개? 침팬지? 물곰!

무중력, 초중력, 우주방사선 등 극한조건 견딜 수 있는 생명체는 완보동물

2022.01.17(Mon) 10:26:07

[비즈한국] 집에 동물 인형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동물인가? 곰돌이? 강아지? 토끼? 내게는 특별한 동물 인형 하나가 있다. 지구에서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동물, 물곰의 인형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열린 국제천문학회에 갔을 때 우주생물학 세션장 근처 부스에서 사온 기념품이다. 귀여운 다리가 여덟 개가 달린 채 토실토실한 몸뚱이를 자랑하는 이 물곰 인형은 일할 때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 아주 편안하다. 

 

내 연구실에서 안락함을 제공해주는 물곰 인형. 사진=지웅배 제공


그런데 어쩌면 물곰은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곳으로 떠나는 최초의 생명체가 될지 모른다.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바깥 4.3광년 거리에 떨어진 가장 가까운 이웃 별, 센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를 향해 이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보내는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다. 최근 이 물곰의 성간 우주 여행 계획에 대한 분석과 논의 결과가 국제우주학회지 ‘악타 아스트로노티카(Acta Astronautica)’에 발표됐다. 물곰은 인류보다 먼저 외계행성에 (아주 작은) 발자국을 남기는 최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물곰을 프록시마 센타우리로 보내는 여행은 성공할 수 있을까?

 

1783년 프랑스 몽골피에 형제는 베르사유 궁전 앞에서 놀라운 실험을 선보였다. 직접 만든 열기구에 양, 닭, 오리 등 다양한 동물을 태웠고, 열기구는 1000m 상공에서 10분 동안 비행하고 다시 땅으로 돌아왔다. 살아 있는 육상 동물이 땅이 아닌 하늘 위를 날고 무사히 돌아온 최초의 실험이었다. 

 

20세기가 되면서 인류는 대기권을 넘어 우주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류가 직접 우주에 나아가기 전 우주 환경의 위험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많은 동물들이 희생됐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 우주로 보냈지만 돌아오지 못한 우주 강아지 라이카를 시작으로 고양이, 생쥐, 침팬지, 도마뱀, 거북이 등 다양한 동물이 인류보다 앞서 우주 공간을 체험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는 또 얼마나 먼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몽골피에 형제가 진행한 열기구 실험 그림. 사진=Wikimedia commons


소련에서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 우주로 보낸 우주 강아지 라이카. 사진=Britanica

 

보이저, 파이어니어, 뉴호라이즌스 등 인류의 여러 인공 물체들이 태양계 가장자리를 벗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금의 기술로는 아무리 빨리 가더라도 수 광년 떨어진 이웃 별까지 가는 데만 수만 년 이상이 걸린다. 그래서 NASA는 성간 우주 여행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새로운 항법, 스타라이트(Starlight) 미션을 논의하고 있다. 

 

스타라이트 미션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아주 작고 가벼운 큐브 위성에 아주 거대하고 얇은 돛을 달아서 지구 정지 궤도에 띄운다. 그 뒤 궤도에 가만히 떠 있는 큐브 위성의 돛을 향해서 지상에 설치한 레이저 기지로 강력한 레이저 빔을 비춘다. 레이저 빔의 강력한 광압에 의해 우주 돛이 빠르게 밀려나가면서 큐브 위성은 최대 빛의 속도의 4분의 1까지 가속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엄청난 빠른 속도를 만들기 위해서 말도 안 되게 강력한 출력의 레이저가 필요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최근 설계에 따르면 지구 정지 궤도에 떠 있는 우주 돛을 밀어내기 위해서는 몇 분간 100GW 정도의 출력만 활용해도 된다. 굉장히 많아 보이지만 사실 이 정도면 미국 전체가 하룻동안 사용하는 전체 전력의 0.01퍼센트에 불과하다. 미국 시민들이 딱 1~2분만 전기가 끊기는 것에 동의해줄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 

 

게다가 우주 돛의 크기가 더 커지면 커질수록 훨씬 쉬워진다. 이미 수백 미터 크기에서 수 킬로미터 크기까지, 아주 다양한 크기의 우주 돛 설계가 논의되고 있다. 이렇게 광속의 4분의 1 수준으로 빨라진 큐브 위성은 이웃 별까지 40년 안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40년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당장 수만 년이 필요한 지금의 항법에 비교하면 혁신적인 우주 여행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스타라이트 여행에 단순히 로봇 기계뿐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를 태워 보낼 수 있을까? 

 

광압으로 돛을 밀어서 탐사선을 움직이게 하는 아이디어를 실험한 라이트세일(Lightsail) 탐사선. 사진=NASA/Wikimedia commons


스타라이트의 성간 여행을 버틸 수 있으려면 아주 까다로운 신체 검사를 통과해야 할 것이다. 우선 우주 공간의 무중력과 지나치게 빠른 가속으로 인한 엄청난 초중력, 두 가지의 극단적인 상황을 모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무중력이 되면 생명체 속 액체는 오직 액체 자체의 표면 장력에 의해서만 모이고 뒤섞이게 된다. 그 결과 원활한 열과 양분의 교환이 어려워지고, 몸 속의 액체들이 잘 섞이고 혼합되지 못하다. 

 

하지만 아주 크기가 작은 박테리아 종들은 잠깐의 적응 기간(유도기)이 지나고 나면 지상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명 활동을 유지한다. 게다가 박테리아는 덩치 큰 생명체들에 비해서 아주 강한 가속도가 가해지는 환경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우주선이 광속에 가깝게 가속되면서 1만~100만 G 수준의 엄청난 가속도가 가해지더라도 예쁜꼬마선충, 과일초파리, 완보동물 등은 이를 이겨낸다. 

 

지구의 자기장 보호막을 벗어난 이후 태양과 은하 중심에서 방출되는 강한 우주 방사선도 버텨내야 한다. 감마선에 노출되었을 때 DNA가 얼마나 잘 버틸 수 있는지를 비교한 결과를 보면 박테리아와 완보동물이 아주 잘 버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광속에 가까운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탐사선은 성간 가스 구름을 뚫고 지나가면서, 양성자와 전자로 가득한 가스 구름 속 입자들이 광속으로 부딪히며 8000도 가까운 높은 온도로 탐사선을 가열시키는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탐사선에 부딪히는 성간 물질 입자들의 양은 탐사선이 어느 각도로 기울어진 채 날아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탐사선이 정면으로 그대로 입자들을 들이받으며 날아가면 입자들이 부딪히는 표면적이 가장 넓어지지만, 거의 옆으로 누워서 날아간다면 입자들이 부딪히는 표면적이 가장 좁아지며 방사선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지구를 떠난 직후 각도를 틀어서 마치 옆으로 원반을 던지는 것처럼, 성간 물질 입자들과의 충돌을 교묘하게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작은 미생물들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방사선의 세기를 줄일 수 있다. 

 

다양한 생물들의 강한 감마선에 노출되었을 때 버틸 수 있는 저항력을 비교한 그래프.

 

이런 끔찍한 성간 여행에선 충분한 기내식도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최대한 오래 밥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신진대사율이 아주 낮아야 한다. 긴 시간 동면에 빠질 수 있는 생명체라면 더욱 좋다. SF 영화에서 오랜 우주 여행을 위해 인간들이 동면에 드는 것과 같다. 물과 산소가 아주 부족한 상태에서도 아슬아슬하게 죽지 않고 분명 살아 있는 상태로 긴 겨울잠을 잘 수 있는 생명체로 예쁜꼬마선충, 브라인 슈림프, 몇몇 곤충, 그리고 완보동물이 있다. 특히 완보동물은 이들 중에서도 질량 대비 더욱 낮은 신진대사율을 보인다. 기내식을 매번 챙겨주지 않아도 불평 없이 꾹 참을 수 있는 최고의 승객이다. 

 

다양한 생물들의 질량과 신진대사율을 비교한 그래프.


완보동물은 성간 우주 여행을 위해 진화한 생명체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극지생물, 박테리아들은 지구가 지금처럼 비옥하지 않은 수억 년 전의 가혹한 지구 환경을 경험했다. 지구가 ‘지구’ 같지 않고 우주 환경에 가까웠던 시기를 살았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지구 기준에선 극악한 환경도 잘 버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주 먼 과거 가혹한 지구에 먼저 태어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가장 오랫동안 성간 우주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한 셈이다. 가장 최첨단의 기술이 모두 동원된 성간 우주 여행에 가장 적합한 승객이 가장 원시적인 미생물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이런 점 때문에 현재 천문학자들은 완보동물, 물곰을 성간 우주로 날려보내는 새로운 실험을 구상하고 있다. 물곰을 비롯한 미생물들이 스타라이트 탐사선에 실려 우주로 떠나게 된다면, 이는 지구 생명체의 새로운 우주 여행일 뿐 아니라 가장 끈질긴 지구 생명체가 그대로 보존한 지구 바깥 우주 ‘방주’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물곰이 지구를 떠난 후 지구 생태계가 전멸하더라도, 지구가 죽기 전에 지구를 탈출한 물곰은 사라진 지구 생태계의 추억을 간직해줄 것이다. 우연히 지구와 비슷한 외계행성에 스타라이트 탐사선이 불시착하게 된다면, 물곰이 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터전에서 또 다른 생태계 진화의 첫 씨앗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른다. 

 

우주에 가게 된 물곰은 어떤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미지=Denis Art

 

만약 외계행성에 외계인들이 살고 있다면 꼬물거리는 물곰을 보고 그것이 지구인이라고 오해하는 건 아닐까, 괜한 걱정을 해본다. 어쩌면 SF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징그러운 외모의 외계인들도 사실은 그들 고향 생태계의 주류를 차지하는 진짜 ‘외계인’이 아니라, 그들 세계의 물곰에 해당하는 극지생물은 아닐까? 외계인 과학자들 역시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진짜 외계인을 보내기 전에 지구가 가볼 만한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 세계의 극지생물, 물곰에 해당하는 실험체들을 보낼 확률이 높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우주에서 벌어지는 여러 외계 생명체의 최초의 조우는 모두 그들 세계에서 가장 징그럽고 괴상한 모습을 한 선발대를 통해 이뤄지는 것일지 모른다. 

 

참고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94576521005518?via%3Dihub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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