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대조양)의 합병안이 무산됐다. 유럽연합(EU)이 빅2 조선사들의 기업결합을 불승인하면서 대조양을 현대중공업으로 넘기는 방식으로 국내 조선업 재편 및 엑시트(EXIT) 전략을 짰던 산업은행의 계획은 백지화됐다.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은 매각을 다시 진행한다는 방침이지만, M&A 시장에서 인수를 희망하는 곳은 없다. 업계에서는 20년 가까이 산업은행이 자회사로 대조양을 관리했던 방식이 더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EU 결정에 복잡해진 방정식
EU는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을 불허하며 ‘LNG(액화천연가스)선박에 대한 독과점 우려’를 주된 이유로 꼽았다고 한다.
당장 현대중공업과 대조양 등에게는 ‘악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시장에서는 EU가 기업결합을 불승인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채권단 관계자는 “중국 등과 다르게 EU에서 승인 관련 일정이 미뤄지는 등 분위기가 ‘부정적’이었던 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작년 말부터는 현대중공업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별다른 소명 작업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주가 역시 제한적으로 움직였던 14일 대조양 주가는 전거래일과 동일한 2만 5250원으로 마감됐고, 현대중공업은 전거래일 대비 0.47% 상승한 10만 6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산업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민간 주인 찾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며 “산업은행(대주주) 중심으로 대우조선 경쟁력 강화 방안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할 것”이라고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매각 계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매각하는 빅딜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대조양이라는 기업의 인수 매력도는 높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산업은행이 2019년 1월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대조양을 넘기는 방식도 힘들게 만들어낸 전략이었다. 신설 조선지주회사에 대우조선해양 주식을 현물 출자하고 조선지주사 지분을 받아오는 구조를 만들었다. 산업은행은 경영권 지분을 2대 주주 주식으로 바꾸는 꼴이라 대기업 특혜 논란까지 있었지만, 그만큼 대조양 인수 희망자가 없었다는 후문이었다. 지난 2008년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딜이 성사될 뻔했지만, 한화그룹이 ‘고평가’를 이유로 가격협상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2018년 9조 6444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뒤 2019년 8조 3587억 원, 2020년 7조 302억 원, 2021년 4조 3650억 원까지 꾸준히 줄어든 연매출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고래’에 해당하는 대조양을 인수할 수 있는 자금력은 대기업 정도나 가능하다. 당장 한화 외에도 포스코그룹, 효성그룹, SM그룹 등이 인수할 수 있는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되지만, 관심 있다고 밝힌 곳은 없다. 삼성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당초 현대중공업그룹과의 인수합병 과정에서도 ‘호응도’가 낮았다는 후문이다. EU가 삼성중공업과의 기업결합을 허가할 가능성도 낮다.
#다시 산업은행 품에서?
현대중공업그룹에게는 오히려 인수 무산이 호재라는 평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후 1조 5000억 원을 증자하기로 했는데 부담이 사라졌다.
대조양 역시 글로벌 발주량이 조선업 불황기 진입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점 등은 긍정적이다.하지만 악화된 재정 상황은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20년 가까이 산업은행 자회사로, 관리를 받았던 기존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화에 지난 2008년 매각하려다가 실패한 뒤 다시 산업은행 자회사로 관리를 받던 것처럼, 산업은행 등에서 임명된 경영진이 대조양을 경영하는 방식으로 다시 매각을 추진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권단 관계자 역시 “우리금융지주처럼 금융업의 경우 지분을 조금씩 매각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하는 방법도 가능하지만, 제조업은 훨씬 더 매각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IT나 AI 등 신기술 산업으로 인수자금들이 대거 쏠리는 상황에서 대조양을 인수하려는 매수 희망기업이 얼마나 되겠냐. 앞으로 수년간은 대조양 재매각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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