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IPTV(인터넷TV)와 케이블TV 등 유료방송 산업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유료방송사의 채널 편성 자율성을 높이고 인수합병 등 관련 규제를 개선하는 내용이다. 넷플릿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Over-The-Top)가 급부상하면서 입지가 줄어드는 유료방송 시장으로서는 모처럼 희소식이다.
관련법 시행령 개정에 나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존 유료방송 산업에 대한 규제 혁신을 통해 시장 투자를 촉진하고 영업의 자율성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유료방송 사업자 간 투자와 겸영 범위를 확대해 투자 활성화를 꾀하고 채널 수시개편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유튜브, 넷플릭스, 1인 방송 등 새로운 채널과의 경쟁에서 규제 완화만으로 유료방송 콘텐츠의 질적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월 28일 과기정통부는 유료방송 산업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및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유료방송의 ‘자기 혁신’에 방점을 찍었다. 유료방송 시장은 IPTV, 케이블TV, 위성방송 등의 방송플랫폼 사업자가 가입자에게 다채널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넷플릭스를 필두로 애플, 디즈니 등 글로벌 OTT 서비스가 국내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유튜브 등 1인 방송 시청이 크게 늘면서 유료방송은 큰 위기를 맞았다.
#소유·겸영 규제 완화해 투자 활성화
이에 과기부는 기존 방송사업의 규제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위기 해결의 조건이라고 판단, 현행법 체계의 한계점을 개선하기로 했다.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유료방송 투자 촉진 △영업 자율성 확대 △불필요한 절차 등 규제 개선이다.
먼저 유료방송 사업에 대한 소유와 겸영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유료방송 시장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지상파방송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상호 간 소유제한, 위성방송사업자 상호 간 소유제한, 종합유선방송사업자와 위성방송사업자의 방송채널사용사업 소유제한 등을 폐지하기로 했다.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상호 간의 소유제한 범위도 매출액의 33%에서 49%으로 확대한다.
영업상 운용 폭을 넓히는 내용도 담겼다. 유료방송 사업 허가와 상품소개·판매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홈쇼핑사업) 승인의 유효 기간을 현행 최대 5년에서 7년으로 늘린다. 또 유료방송 사업자의 채널 구성·운용과 관련해 실시간 텔레비전 방송채널 외에 라디오 방송채널과 데이터 방송채널에 대한 규제를 폐지한다.
입법 예고 다음 날인 12월 29일 과기정통부는 ‘상생협의체’를 개최해 방송 채널의 채널 번호를 변경하는 횟수를 늘려주기로 하는 방침도 내놨다. 그동안 업계는 연 1회의 정기개편을 통해 채널을 바꾸는 기존 시스템이 OTT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지적해왔다. 이에 앞으로는 채널 개편의 자율성이 개선돼 유료방송 사업자가 시청률이 낮은 채널을 변경하거나 종료하기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 측은 “유료방송시장 정체로 인한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어도 방송사업자 간 다양한 제휴, 협력 도모, 신유형 방송서비스 도입 촉진, 행정 절차 및 비용 부담 완화 등 새로운 활력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유료방송사업자도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방송환경의 국제적 흐름에 따라 신기술 개발, 서비스 품질 개선, 공동협력 투진 등 끊임없는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OTT와의 경쟁 위해선 동일 규제 필요”
하지만 투자 측면의 규제 완화로는 OTT 등과의 콘텐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유료방송 업계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민해왔다. 반복적으로 언급된 문제는 OTT와의 ‘동일 시장 동일 규제’다. 서비스 내용, 형식, 소비자 층이 유사한 OTT와 유료방송을 동일한 제도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1월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IPTV방송협회 주최 콘퍼런스에서도 관련 논의가 펼쳐졌다.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CO장은 유료방송 ‘요금 현실화’보다 동일 규제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료방송 요금을 현실화하기에는 늦었다. OTT가 보편화돼 미디어 중심축이 된 상황에서 IPTV가 똑같은 콘텐츠를 다른 가격으로 제공하면 경쟁력을 지킬 수 있겠냐”며 “유료방송, 커머스 방송 등 시장을 새롭게 획정하고 동일 시장이라면 동일 규제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훈배 KT 미디어플랫폼사업본부장도 “OTT 플랫폼을 보면 TV에서 볼 수 없는 장르들이 많은데 이것이 IPTV 사업자 입장에서는 규제의 장벽이다. (유료방송과 OTT가) 같은 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차별적인 부분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해외 OTT 공룡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서 국내 유료방송은 위축된 모습이다. 해외 OTT들이 막대한 자금력과 인기 IP를 앞세워 국내 미디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가고, 유료방송 가입을 해지하고 OTT로 이동하는 코드커팅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료방송 사업자 간의 소유, 겸용 제한 규제 외에 복잡한 허가·승인·등록 절차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인수 합병을 통한 몸집 싸움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넷플릭스와 겨룰 수 있는 고품질 콘텐츠다. 유료방송 재허가를 받을 때 조건이 늘어나고 있는데 허가, 승인 등 형식적인 절차를 개선하고 자유로운 콘텐츠 생산이 가능한 구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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