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넷플릭스 예능 시리즈 `먹보와 털보`를 보고 바이크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주변 지인들이 생겼다. 해당 프로그램을 보고 나선 바이크를 사고 싶다는 이부터 시작해 방송에 나오는 맛집에 꼭 가보고 싶다는 이들의 의견이 왕왕 들린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새 예능 ‘털보와 먹보’는 의외의 ‘찐친’인 `먹보` 비(정지훈)와 `털보` 노홍철이 전국을 바이크로 누비며 각양각색 다양한 미식 여행의 재미를 선보이는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어울릴 조합이라 1도 생각 못했던 비와 노홍철의 결함도 놀라운데, 프로그램을 만든 이들도 놀라운 크레딧이다.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먹보와 털보’는 전설적인 예능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으로 방송계에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김태호 PD가 연출을 담당해서다. 뛰어난 기획력을 바탕으로 예능계에서 시도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예측하지 못한 케미 조합인 비와 노홍철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선보인다.
여행 갈 때 계획에 철두철미한 비. 여행 갈 때 “계획 따윈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노홍철. 전혀 성향이 다르지만, ‘찐친’인 두 사람이 펼쳐 보이는 여행의 맛은 꽤나 흥미롭다. 이들의 여행은 제주도를 시작으로 고창, 강원도 태백, 부산, 경주, 남해에 이르기까지, 바이크로 드라이브하기 멋진 대한민국의 기막힌 풍광과 함께 펼쳐진다. 기막히게 멋진 풍광과 함께 어우러지는 건 먹는 것에 꽤나 진심인 ‘먹보’ 비가 직접 먹어보고 엄선한 맛집의 미식 향연이다.
해당 시리즈물을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먹보’와 ‘털보’ 중 ‘먹보’ 비였다. 비는 한때 최고의 월드 와이드급 스타로 손꼽혔던, 불우했던 가정환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유명인의 아이콘으로 대변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그가 스타가 되었을 때 얻었던 인기의 후광은 그 어떤 이보다 화려하고 빛이 났던 기억이다. 엄청난 경쟁을 치르고 올라가 한 때 할리우드에서 영화 주인공 자리까지 꿰찼던 그였다. 스타 중의 스타였던 그가 ‘먹보와 털보’에선 하이텐션 노홍철에게 앙탈을 부리기도 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을 말 안되게 틀리게 말하는 허당미를 보여준다. 그러는 한편 섬세하게 바이크 여행의 전체적인 동선을 짜고, 여행 내내 입 짧은 노홍철을 위해 요리를 성심껏 해주기도 한다. ‘먹보와 털보’는 톱스타에서 편안한 동네 오빠 혹은 형 같은 이미지로 소탈하게 변모한 비를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톱스타의 거들먹거림이 아닌, 동네 형 같은 느낌으로 돌아온 비의 변화는 사실 MBC의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 프로젝트부터 시작이 됐었다. 2017년 미니 앨범 타이틀곡이었던 “‘깡’이 시대착오적인 음악과 춤이었다”는 평가를 얻으며 대중들로부터 냉담을 당한 후, 뒤이어 2018년 개봉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혹평 및 흥행 참패로 이어진 상태에서 비는 회생불가처럼 보였던 시절을 보냈던 적이 있다. 흥미로운 건 이후 가수 본인이 이러한 반응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고, 되레 더 가혹하게 받아치는 유머를 가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 그러자 놀랍게도 비의 ‘깡’은 핫이슈로 탈바꿈했다. ‘놀면 뭐하니’에서 본인 입으로 "하루에 몇 깡 하세요?"라는 질문을 하며 "1일 3깡은 기본이다", "화려한 조명은 절대 포기 못한다" 라며, 쿨하게 자학개그를 선보였던 비였다.
‘놀면 뭐하니’에서부터 차곡차곡 시작된 비의 변화를 ‘먹보와 털보’까지 챙겨보면서, 사람 인생의 흥망성쇠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다. 보통 이렇게 비처럼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들은 인생의 최고의 절정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지옥처럼 묘사한다. 그리고 그 지옥 같은 마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스타들 중 꽤 여러 명은 더 이상 본인의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 불평만 하다, 서서히 잊혀진다.
그런데 비는 ‘월드 스타’에서 한 때 ‘국민 놀림감’으로 전락했는데도 그 시간을 어찌 보낸 것인지, 되레 더 자유로워진 모습이다. 스타가 아닌 털털한 동네 오빠나 형의 모습으로, 때로는 본인의 욕망도 솔직히 드러내고, 속좁음도 쿨하게 인정하며 표출하는 비의 모습이 한결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과거의 영광 따위는 무릎 아래로 내려두고, 진짜 나다움이 무엇인지 되찾은 이가 누릴 수 있는 여유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필자에겐 과거의 젊고 빛나는 비보다 지금의 비가 훨씬 더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인생은 당신이 생각하는 절정 이후에도 삶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아름답게 지속된다는 것. 좋아하는 찐친과 바이크 여행을 하는 ‘먹보와 털보’의 비를 보면, 아마 그것이 무엇인지 체감하게 될 것이다. 혹시 당신이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라떼는 말이야~!” “내가 옛날에는 이런 사람이었는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한결 삶이 유연해지고 멋져진 비처럼 정상에서 유연하게 하강하는 법을 배워보길 바란다. 과거의 영광 따위는 이제 곱게 아래로 내려두고, 진짜 나와 만나보시길. 비처럼 즐겁게 내려놔 보자. 그것은 하강이 아닌,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시작의 설렘이 될 것이다.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 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바즐’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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