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는데, ‘돈 룩 업’에 관해서는 그 속담이 틀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돈 룩 업’은 라인업만 봐도 황홀해지는 영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를 필두로 롭 모건, 조나 힐, 마크 라이런스, 타일러 페리, 론 펄먼, 스콧 메스쿠디 등이 참여했고, 티모시 샬라메와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이 나온다. 이 정도 화려한 라인업이면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나 킬링타임용 연말 영화가 아닐까 의심이 들지만 천만의 말씀. 여러모로 화끈한 영화가 ‘돈 룩 업’이다.
‘돈 룩 업’은 천문학 대학원생인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가 새로운 혜성을 최초 발견하고 그의 담당 교수인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혜성의 궤도를 계산해보다 그 혜성이 100% 확률로 지구와 충돌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확히는 6개월 14일 후에 지름 6~10킬로미터에 달하는 크기의 혜성이 태평양으로 떨어지고, 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억 배에 달하는 파괴력으로 지구를 파괴하고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다. 이 최악의 상황을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에게 브리핑하게 된다. 그런데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 주변인들의 반응이 요상하다. 일단 기다리며 상황을 보자고 한다?
영화 속 대통령과 대통령의 아들이자 비서실장인 제이슨(조나 힐) 등 주변인들에게 중요한 건 6개월 뒤 혜성 충돌이 아니라 3주 뒤 있을 중간선거와 대통령이 임명한 자격 미달의 대법관 후보에 대한 언론의 집중포화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놀랍지만 그렇다. 이들에게 6개월 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100% 기정사실은 믿고 싶지 않은, 믿기 힘든 과장된 일일 뿐이다. 심지어 혜성 충돌을 발견한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가 하버드나 프린스턴 같은 일류대가 아님에 의심과 조롱의 눈초리를 보내고, 허무맹랑한 종말론자나 과대망상자와 같은 부류로 엮기까지 한다.
이렇게 된 이상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가 기댈 곳은 언론밖에 없다. 그런데 요상하다. 어찌어찌 <뉴욕 헤럴드>의 도움을 받아 가장 인기 있다는 프로그램 <데일리 립>에 출연하게 됐는데, 하이라이트는 세계적인 스타인 라일리 비나(아리아나 그란데)와 DJ 첼로(키드 커디) 커플의 결별과 즉석 영상통화에서 이뤄진 청혼에 맞춰져 있다. 혜성 충돌을 알리는 민디와 디비아스키에게 진행자들은 ‘우리 전처 집까지 피해가 갈까요?’ 같은 한없이 가벼운 반응만 보인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디비아스키가 이 답답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스튜디오를 뛰쳐나가지만, 그마저도 인터넷 밈으로 사용될 뿐 누구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주지 않는다. 다 죽는다는데 말이다!
SNL 작가 출신이자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빅 쇼트’와 정치인 딕 체니를 풍자한 ‘바이스’를 연출한 애덤 맥케이 감독은 심각하고 어려운 주제를 날카롭지만 위트 있게 풀어내는 그의 장기를 ‘돈 룩 업’에서 유감없이 풀어놓는다. 지구 멸망마저 정치적으로 유리한지 아닌지를 재고 따지는 정치권, 대중의 흥미를 최우선으로 치는 한심한 언론계,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톱스타 커플의 결별과 재결합에만 귀를 기울이는 대중 등 모두가 지극히 어이없고 멍청하게 그려지는데, 또 한편으로 굉장히 현실적인 묘사라 계속 낄낄거리며 웃으면서도 웃음 끝에 한숨이 절로 비어져 나오게 된다.
아, 여기에 경제계가 빠질 수 없다. 여차저차 정치적 계산으로 혜성 폭파 프로젝트를 계획했던 미국 대통령은, 최고 레벨의 후원자이자 인류 역대 부자 순위 3위인 대기업 배쉬의 CEO 피터 이셔웰(마크 라이런스)의 한 마디로 한 순간에 쏘아 올렸던 우주선을 되돌린다. 이유는? 혜성 속에 있는 희귀광물들의 가치가 140조 달러에 달하니, 혜성을 폭파하는 대신 잘게 부수어 회수하자는 거다. 인류의 멸망 앞에서 자본주의를 내세우는 기업인의 담대함(!)이 놀랍고, 혜성을 잘게 부수어 광물을 회수하자는 프로젝트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노벨상을 수상한 명성 높은 과학자들을 내세워 가능하다고 최고 권력자를 설득하는 것도 쉽게 받아들여진다. 왜? 대통령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어마어마한 부자니까.
‘돈 룩 업’은 작금의 코로나19 시대에 개봉하여 더욱 뼈아픈 현실을 되짚는 효과를 준다. 코로나19가 위험하다 또는 위험하지 않다,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한다 또는 맞는 게 더 위험하다 등등 이슈가 주어질 때마다 극렬하게 분열된 사회, 그 분열을 봉합하고 현실을 타개하기보다는 분열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각계각층의 반응이 진하게 오버랩되는 작품이거든. 영화 제목인 ‘돈 룩 업’ 또한 제발 닥치고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접근한 하늘의 혜성을 보라는 캠페인 ‘Look Up’에 대응하는 반대파의 슬로건 ‘Don’t Look Up’이다.
139분 러닝타임 동안 벌어지는 대환장파티로 폭소할 수 있지만 동시에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절묘한 풍자 코미디 ‘돈 룩 업’. 과연 현실은 ‘돈 룩 업’보다 나을까? 내 대답은 전혀 아니올시다지만, 그래도 2022년은 조금 나아지는 해가 되길 바라며 아직 ‘돈 룩 업’을 보지 않았다면 추천한다. 새해를 지구 멸망 스토리로 시작하는 발칙함 정도는 있어야 창의적인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이다. 쿠키 영상은 2개이니 놓치지 말 것.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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